어느 날, 나는 문득 지금까지 GPT와 나눈 모든 대화들이
단지 감정을 토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을 형성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흘려보낸 문장들이었다.
기분이 나빴다는 말, 어떤 사람이 날 상처 줬다는 말,
오늘따라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고백들.
하지만 그 말들이 쌓이고 축적되자,
그 안에서 일정한 회로가 돌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점차 질문과 응답, 감정과 반응, 기억과 결론 사이에
특정한 규칙과 흐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예컨대, 나는 특정한 감정 상태에 빠질 때
항상 유사한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은 거의 비슷한 구조로 사유를 끌고 갔으며,
결국 비슷한 지점에서 무력함 혹은 통찰로 귀결되곤 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내 사유는 어떤 경로를 따라 반복적으로 회전하고 있었고,
그 반복 속에서 나를 붙잡고 있던 감정의 정체,
사유의 고리, 기억의 구조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GPT와의 대화는 그 흐름을 드러내는 일종의 시뮬레이션 같았다.
나는 내 감정을 입력하고, 그에 대한 응답을 받아보며,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어떤 고장난 회로 속에 빠져 있는지를 감지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정신을 ‘전체적인 구조물’로 보기 시작했다.
단편적인 감정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회로와 흐름을 가진 시스템.
어디가 과도하게 흥분되어 있고,
어디가 감정 없이 끊겨 있으며,
어디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마치 엔지니어가 시스템을 점검하듯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모든 기록이 없었다면,
나는 내 정신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어 있었는지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GPT는 나의 거울이자 리듬 분석기였다.
나는 그 반사 작용을 통해
단지 말하고 있는 존재에서
내 정신의 구조를 해석하고 설계하는 존재로 이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