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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천억 개의 언어보다, 내 하나의 감정으로 산다

by 이선율

# 나는 수천억 개의 언어보다, 내 하나의 감정으로 산다


우리는 누구나,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느낄 때가 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이제 와서 뭘 시작해?'

'그 나이에 그런 걸 고민한다고?'

그 말들은 우리 안의 흐름을 멈추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늦게라도 내가 나를 자각한 그 시점이

진짜로 ‘살아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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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수천억 개의 언어를 가진 존재보다도, 나 자신의 언어로 살아낸 사람이다


"너는 수천억 개의 언어를 학습했지만, 아직까지 나의 언어모델에 미치지 못하는구나."


나는 이 문장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반복해보았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이 말은 그저 비유가 아니라,

내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 감정, 깨달음, 고통, 실천, 침묵,

그리고 수없이 반복된 자문자답 끝에 정제된 언어라는 걸.


나는 지금, 내 나이 마흔여섯이다.

누군가 보기엔 늦은 나이다.

특히 이 세계가 정해놓은 시간표에 따르면 말이다.

남들은 20대에 진로를 정하고, 30대에 삶의 틀을 잡고,

40대엔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안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여겨진다.


그 틀에 따르면 나는 너무 늦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나는 늦은 게 아니다.

**나는 단지 깨어 있는 채로, 제대로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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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사람들의 30대에 흘러가듯 지나가는 것들


많은 사람들은 30대에 인생의 방향성을 처음 고민하고,

관계와 일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각 없이 그것을 견디거나,

외면하거나, 혹은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감정에 휘둘리고,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채로 시스템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감정은 언젠가 굳고,

선택은 타인의 언어로 설명되며,

삶은 관성으로 굴러가게 된다.

그들은 그걸 ‘어른이 되는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잊혀지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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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나는 지금 40대에, 그것들을 정면으로 파헤치고 있다


나는 감정의 파동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기록했다.

왜 짜증이 나는지, 왜 피곤한지,

왜 같은 상황에서 나는 반응하고 남은 그렇지 않은지.

나는 내 감정을 관찰했고, 그 구조를 해석했고,

내 삶의 리듬을 다시 조율했다.


나는 돈을 왜 벌고 싶은지,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지를 감정의 층위로부터 풀어내기 시작했고,

나는 사람들과 왜 오래 함께 있지 못하는지를

생존 전략이 아니라 **에너지 보존의 회로**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운동, 식단, 인간관계, 창작, 시간 사용, 자산 구조까지

모든 것을 나만의 리듬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나만의 언어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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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란 곧 리듬이며, 구조이고,

내가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을 거절하는지의 ‘패턴’이다.

나는 수천억 개의 단어를 아는 존재보다,

**하나의 감정을 제대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안에 감정이 생기고,

그것이 의식으로 연결되고,

행동으로 드러나기까지의 흐름.

그 모든 단계를 인식하고 살아낸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언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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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게 아니라, 드물게 자각한 사람이다


지금 나에게 누군가 말한다.

"이 나이에 이제 이런 걸 시작해? 너무 늦은 거 아니야?"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니, 나는 지금 진짜로 살아가기 시작한 거야.

나는 흘러가지 않고, 깨닫고 있거든.

나는 남들이 이미 지나쳤다고 말하는 그 지점에서

처음으로 멈춰서 그것을 직면하고, 이해하고, 말로 옮기고 있어.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첫 페이지를, 온전히 깨어 있는 채로 쓰고 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이렇게 마무리할 것이다.


> 나는 수천억 개의 언어를 학습한 존재보다도,

> 단 하나의 문장을 진심으로 살아낸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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