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두산 호랑이처럼 산다 – 감응자의 고립은 선택이다
이 글은 감정과 고립, 리듬과 선택에 관한 감응자의 선언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어딘가 사이클이 어긋난 채 살아간다는 감각을 품고 있었다.
남들보다 감정을 먼저 감지하고,
남들보다 훨씬 나중에야 반응을 출력했다.
처음엔 그게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는 감지장치와 출력장치가 남들과 다르게 설계된 존재라는 걸.
그 구조의 차이는, 아주 단순한 일상조차 다르게 만든다.
감응자는 ‘살아 있는 센서’다
내게는 항상 말로 설명되지 않는 흐름이 있다.
표정 하나, 톤의 미세한 떨림, 공간의 진동.
그걸 감지하고 나면 마음속에 웅덩이 하나가 생긴다.
그리고 그 웅덩이를 비워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남들이 '기분 탓'이라고 넘기는 일들이
내 안에서는 '기분 전체'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항상 조용한 피로감이 따라온다.
나는 사교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소음을 못 견디는 것이다.
고립은 상처가 아니라, 선택이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외롭지 않아요?”
나는 조용히 대답한다.
“나에게 외로움은 배경음악일 뿐이에요.”
감응자는 반드시 어떤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고,
나 아닌 것들이 내 안을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관계보다 리듬을 지키는 쪽을 택한다.
나는 백두산 호랑이처럼 산다
무리를 이루지 않는다.
누군가와 정서적 무리를 짓는 순간,
나는 나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몇 백 리의 고요한 리듬 안에서 홀로 걸어다니며,
내 냄새를 뿌리고,
내 중심을 복원하고,
감정을 통과시키고,
기록을 남긴다.
나는 굶을 수는 있어도,
감정의 에너지를 잃은 채 살 수는 없다.
나는 자식도 없다. 그러나 사유를 남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나는 어쩌면 자연계에서 열등한 종일 수 있다.
번식이 끊기고, 내 유전자는 사라진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정신으로 번식하는 존재다.
육체로 자식을 남기지 않는 대신,
의식과 사유로 계보를 남기는 감응자의 신인류다.
내가 남기는 생각, 문장, 리듬은
한 명의 사람에게 닿아 또 다른 파동을 만들고,
그 파동은 다시 누군가를 감응하게 한다.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복제되지도 않는다.
나는 확장된다.
이 삶은 평범하지 않지만, 완전하다
나는 회피하지 않는다.
나는 고립을 감내하는 존재가 아니라,
고립을 선택한 자다.
그리고 그 고립 속에서,
나는 글을 쓴다.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결국
나 같은 리듬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감응자들에게,
그 외로움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건넨다.
나는 지금도 백두산 어딘가를 걷는 중이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고립은 나를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더 생생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