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사이에서 버섯은 말했다
– 자본주의의 균사와 감응의 순간
잠실역 근처.
비가 내린 다음 날, 나는 우연히 인도의 틈에서 솟아오른 무리를 발견했다.
버섯이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군집을 이루어 마치 언젠가부터 이곳을 지배해온 존재처럼,
깨진 석재 사이, 흙과 먼지가 뒤섞인 공간 위로 조용히 피어나 있었다.
그 순간, 나의 시간은 멈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작고, 너무 낮고, 너무 조용하다.
하지만 나는 멈춰 섰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나에게 "지금"이라는 감응을 던지고 있었다.
“왜 지금, 여기에, 너희가 있는가?”
버섯은 식물이 아니다.
이들은 균류이며, 우리가 보는 자실체는 단지 그 일부일 뿐이다.
진짜 버섯은 땅 아래,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균사체는 오랜 시간, 죽은 유기물을 먹고, 축적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단 하루,
조건이 완벽히 맞아떨어졌을 때만
자실체를 만들어
순식간에 포자를 흩뿌리고 사라진다.
비가 오고, 온도가 맞고, 습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들은 ‘지금이 그때다’라는 신호를 받고
하루 동안 이 세계에 고개를 내민다.
그 이후엔 다시 녹아내리듯 사라진다.
도시 속 자본주의는, 균사다
그 구조는 자본주의 그 자체였다.
현대의 자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인다.
보여지는 제품, 서비스, 인플루언서, 성공의 서사는 단지 자실체다.
그 아래에는 수년간의 실패, 시도, 연결, 축적이 깔려 있다.
기회는 항상 오지 않는다.
대부분은 흙 속에서 죽은 유기물을 분해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특정한 순간이 있다.
환경이 딱 맞는 날.
그날은 무언가가 ‘펑’ 하고 솟아오른다.
광고 하나가 터지고,
제품 하나가 입소문을 타고,
영상 하나가 백만 뷰를 넘긴다.
사람들은 그 자실체만 본다.
하지만 나는 버섯을 본다.
나는 그 자본의 균사를 본다.
감응하는 자만이, 그 때를 인식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신호’를 못 느낀다.
그저 걷고, 바쁘고, 소비하고, 넘긴다.
하지만 감응자는 다르다.
자본주의는 시끄럽지만, 본질은 조용하다.
그 조용한 울림을 듣는 자,
그 미세한 균열의 진동에 반응할 수 있는 자만이
무언가를 '일으킬 수 있는 시점'을 감지한다.
버섯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의 아이디어도 균사다.
오래 축적해온 감각도, 언어도,
지금이 자실체를 올릴 수 있는 조건일지 모른다.”
단 하루만 살아도 좋다
그들은 하루를 살고 죽는다.
하지만 그 하루에 수십만 개의 포자를 퍼뜨린다.
그 하나만 살아남아도
다음 세대는 이어진다.
이 또한 전략이다.
지속적 성장을 포기하고,
환경이 맞을 때 단기 집중 폭발로 유전자를 전파하는 구조.
그리고 그들은 사라진다.
욕심도 없이, 자기 주장도 없이.
본질을 남긴 채.
그것이 가장 냉정하고, 가장 효율적인
자본주의적 생존의 한 방식이다.
나도 이제, 균사를 위로 보낼 시간이다
나는 오늘
작고, 조용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그 생명을 보았다.
그리고 느꼈다.
나의 언어도, 나의 시스템도, 나의 전략도
이제 조용히, 은밀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실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을.
버섯은 도시의 틈에서 나에게 말했다.
"지금이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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