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철쭉이 너무 아름다웠다
오늘 아침,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던 길.
늘 지나치던 아파트 단지의 화단 한 귀퉁이에서 문득 시선이 멈췄다.
한 그루의 철쭉이, 이상할 만큼 눈에 들어왔다.
이상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꽃은 선명했고, 거의 인위적인 색감이었다.
자주색과 형광 핑크.
서로 다른 꽃이 하나의 나무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처음엔 “봄이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어딘가 불편했다.
왜 이렇게 과하게, 기묘하게 아름답지?
가만히 보니, 그건 두 나무가 접목된 것이었다.
전혀 다른 품종의 꽃을 하나의 뿌리에 인위적으로 이어붙인 것.
의도적으로 조화된 이 아름다움은 자연의 흐름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설계’였다.
그때 떠올랐다.
삶 속에서 마주치는 또 다른 아름다움들.
지나치게 멋진 사람들, 지나치게 감동적인 장면들,
지나치게 세련된 말투와, 지나치게 완벽해 보이는 서사들.
그것들은 종종 ‘자연스러운 척’ 다가오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목적,
설계된 의도,
혹은 특정한 프레임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진짜는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진짜는 그렇게 정돈되어 있지도 않다.
진짜는 공기처럼, 새소리처럼
곁에 있지만 알아차리기 어려운 방식으로 존재한다.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뽐낼 필요가 없다.
포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진짜를 진짜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이제 나는 알게 됐다.
지나치게 예쁜 것들은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건 정말 저절로 그렇게 피어난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그럴듯하게 조작한 결과물일까?”
자연은 목적 없이 자란다.
그래서 때론 거칠고, 비대칭이며, 어색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 어색함 속에 진짜 리듬이 있다.
꾸며지지 않은, 타인의 인정을 전제로 하지 않는
본연의 구조, 날것의 아름다움.
반대로 ‘가짜’는 늘 목적을 가진다.
누군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누군가에게 감동을 유도하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팔기 위해.
그건 철저하게 계산되고 정돈된 형상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앞으로 나는
어떤 것이 눈에 띌 만큼 아름답다면
그 자체를 경계할 것이다.
진짜는 그렇게 튀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의 그 철쭉은 여전히 그 자리에 피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진짜 아름다움은 눈에 띄지 않는 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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