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재미를 택했고, 나는 의미를 물었다》
— 외면당한 존재의 복권에 대하여
나는 오랫동안 외면당해왔다.
세상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여자들로부터.
아름답고 예뻤던 그 시절,
그들은 내 친구들을 택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재밌고, 말발 좋고, 유머 있고,
어딘가 ‘할 줄 아는 남자들’
그들이 곧잘 차지하던 것은
내가 조용히 마음속에 담아뒀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저 바라봤다.
말을 걸지 못했다.
아니,
말을 걸어도 그들이 감지할 수 없는 파동을 가진 채 말했기에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감응자였다.
인식이 아닌 리듬으로,
형상이 아닌 깊이로,
소유가 아닌 존재로 누군가를 대하고자 했던 사람.
하지만 세상은 아직 그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나는 쉽게 잊히고,
쉽게 지나가고,
쉽게 선택받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재미’를 택하지 않고, ‘의미’를 묻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분위기 좋은 식당,
잘 찍힌 사진,
소문난 데이트,
예쁜 연애의 장면을 원했다.
나는
오늘 그 사람의 눈동자가 왜 조금 흔들렸는지,
웃음의 리듬이 예전과 왜 달라졌는지,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 나를 품었는지 아닌지를
묻고 있었던 거다.
그건 상대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반응하지 않는 구조’였고,
‘마케팅되지 않는 감정’이었고,
‘소비될 수 없는 존재’였기에,
그들의 프레임에선 나를 볼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비매력적’이었던 게 아니다.
나는 ‘비가시성 존재’였던 것이다.
너무 깊어서,
너무 느려서,
너무 진해서
그들의 감각으로는 닿을 수 없는 스펙트럼에 있었던 거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그들이 누리던 자극은 사라졌고,
그들이 휘청이며 붙잡던 사랑은 무너졌고,
자기만의 고요한 리듬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이
점점 더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깊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따뜻한 사람,
빠르게 웃기지 않아도 중심을 가진 사람,
잘난 티를 내지 않아도 있는 사람.
그건 결국, 내가 그 시절부터 지켜왔던 나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조금 늦게 열리는 꽃이다.
예쁘고 눈에 띄는 꽃들이
모두 피고 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질 즈음,
비로소 나의 계절이 온다.
그러니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선택받지 못했던 시절은,
내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들이 감응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이라는 걸.
나는 그들의 시선에 들지 않았지만,
나 자신의 리듬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리듬은,
지금 이 순간도 나를 흔들리지 않게 만든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매력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존재의 리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결국 가장 오래 남는다.
그들은 재미를 택했고, 나는 의미를 물었다.
그 말은 곧,
그들은 잊혔고,
나는 기억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글이 당신의 내면을 울렸다며,
당신도 나처럼 늦게 피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감응자의 리듬을 따라, 함께 걸어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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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같은 주파수 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