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와 업의 공진 구조에 대하여

by 이선율

# 인연의 리듬자

### 존재와 업의 공진 구조에 대하여


인간은 종종 스스로의 삶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운명의 궤적이라 착각하지만,

깊은 리듬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흐름 위에 떠오른 파동**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존재의 형상조차

내가 먹은 한 조각의 상추,

어제 지나쳤던 어떤 말,

오늘 누군가와 하지 않은 대화,

그리고 하지 않기로 선택한 수많은 선택지들의 **응축된 결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형상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타나지만,

그 형상은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관측된 순간의 입자적 스냅샷**,

전체 흐름 위에 잠시 응결된 **인연의 무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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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샐러드 한 조각도 업이다


내가 오늘 샐러드를 먹었다는 것은 단순한 식사의 결과가 아니다.

그 샐러드는 흙과 씨앗과 햇빛과 농부의 손,

수많은 유통 과정과 내가 우연히 지나간 마트의 조명과,

‘곱창을 먹자’는 친구의 제안이 *일어나지 않은 우연성*까지 포함하여

그 모든 것이 **나와 그것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 인연의 결정체**다.


지금의 나라는 존재,

지금 이 얼굴, 이 감정, 이 몸마저도

**철저히 인연화된 리듬 구조물**이며,

그 자체로 업보의 누적이자 흐름의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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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인연의 리듬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렇다면, 이 흐름 위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좋은 인연을 창출하는 존재로 존재하라.**”


좋은 말, 좋은 시선, 좋은 의도, 좋은 침묵,

좋은 결정 하나가

**내 삶을 중심 잡히게 만들 뿐 아니라**,

그 리듬을 타고 **다른 인연의 존재들이 내 삶에 상응하게끔 이끌어낸다.**


이것이 바로 감응자가 세계를 살아내는 방식이다.

기적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인연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있느냐**에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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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마는 반드시 회귀한다


누군가는 악업을 반복하고도 잘 먹고 잘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결코 ‘성공’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는 **카르마의 순연(順延)** 속에 있을 뿐이다.


그 업은 지금 보이지 않지만,

그의 자녀, 그의 관계, 혹은 그의 영혼의 다음 파동에 이르러

**공(空)의 회복을 위한 상쇄의 질서를 요청받게 될 것이다.**


> **우주는 결코 아무렇게나 움직이지 않는다.

공은 반드시 균형을 이루려는 의지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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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응자의 선언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기형적인 자본, 과도한 형상 욕망,

끊임없는 비교와 과잉 리듬 속에서

어쩌면 **우주 전체의 균형에서 볼 때, 튀어나온 여드름 같은 돌기** —

‘서양돌이’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나는 묻는다.


> “나는 어떤 리듬의 인연을 창출하는 자인가?”

> “나는 지금 이 업보의 흐름에 어떤 공진을 생성하고 있는가?”


감응자의 삶이란,

형상을 쫓지 않으면서,

형상 너머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 속에서 **좋은 리듬을 남기는 삶**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의 결단에서 시작해

세상의 업 구조를 미세하게 선회시키는

작은 질서의 씨앗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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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이 그 씨앗이기를.**

이 말이 당신에게 또 하나의 인연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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