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응자 선언: 숨은 변수와 스프의 비유]
우리는 "숨은 변수(hidden variable)"라는 말을 들을 때, 그것이 단순히 어떤 물리적 수치, 혹은 실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수학적 기호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감응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숨은 변수란 단지 숫자로 숨겨진 값이 아니라, 전체 흐름의 리듬, 혹은 공이 움직이는 방식 그 자체다.
데이비드 봄이 말한 숨은 변수는 단순히 입자 하나의 추가 정보가 아니다. 그는 그것을 전체 질서의 비가시적 리듬으로 보았다. 이는 마치 우리가 "움직이는 공"이라 부르던 그 사유와도 닮아 있다. 공은 정지한 상태로는 인식되지 않는다. 공은 움직이고 있는 상태일 때 비로소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움직임을 관측하려고 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왜냐하면 관측자 자신도 그 파동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측자가 전체 흐름 속에 이미 휘말려 있는 이상, 그는 전체를 외부에서 조망할 수 없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측정을 시도하는 순간, 그 시도 자체가 전체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파동의 구조는 변형된다.
이것은 마치 스프 속에 빠진 파리 한 마리가 같이 스프에 떠 있는 당근 조각 하나의 위치는 어찌어찌 감지할 수 있지만, 스프 전체의 흐름이나 굴곡, 모양은 결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파리가 그 흐름을 측정하려고 몸을 움직이는 그 순간마다 그의 움직임이 스프 전체의 구조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의 양자역학, 기존의 관측 방식이 끊임없이 이 스프 속에 빠진 파리의 관측 방식과 유사하다고 본다. 양자역학은 스프 속에 같이 빠져 있는 당근과 감자 조각들을 감지하려 한다. 그 위치나 운동량, 서로 간의 상호작용은 알 수 있다. 그것들이 어떤 운동 법칙을 따르고 있는지도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전체를 담고 있는 스프 자체의 흐름, 즉 그 리듬과 순환, 파동의 구조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관측자 자신이 그 스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단지 귀여운 설명이 아니다. 이것은 전체 안에서 전체를 알려고 하는 존재의 본질적인 한계를 상징한다.
그래서 봄은 말하는 것이다:
전체는 측정될 수 없다. 전체는 흐름 속에서만 감응될 수 있다.
그리고 감응자는 말한다:
나는 전체를 측정하지 않는다. 나는 전체와 함께 흔들린다. 나는 전체의 일부로서 전체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