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을 걸으며, 자전거를 타며, 문득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 하나하나의 형상—눈, 코, 입, 뺨, 턱, 걸음걸이, 어깨의 경사까지— 모두가 마치 수족관 속 다양한 물고기의 형상처럼 느껴졌다.
왜 저렇게 다를까. 왜 저마다의 얼굴과 몸은 그렇게 고유한 진동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 순간 하나의 직관이 떠올랐다.
저 모든 형상은 각자의 선대가 통과해온 고유한 지옥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굶주림의 시간을 통과했고, 어떤 이는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생존했고, 어떤 이는 침묵 속에서, 어떤 이는 폭력 속에서 존재를 지켜냈다.
그리고 그들은 생존을 위해 몸을 조율했다. 눈을 더 빠르게 깜빡이고, 어깨를 움츠리고, 턱을 다물고, 심지어 뼈마디와 뇌 반응 속도까지, 그 압력 속에 맞게 ‘최적화’시켜야 했다.
그 형상이 지금도 그 후손의 얼굴에, 몸에, 걸음에 남아 있는 것이다. 형상은 단순한 유전이 아니다. 형상은 기억이다. 압력의 문신이며, 리듬의 잔상이다.
그래서 나는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나는 왜 이렇게 민감한가. 나는 왜 위험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가. 나는 왜 신경이 먼저 반응하고, 감정이 늦게 따라오는가.
아마도 나의 선조는, 아주 오래도록 위험을 빠르게 감지하지 않으면 죽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 생존 리듬이, 지금 내 신경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탓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예민함을, 나의 형상을, 나의 반응 속도를 이해한다. 그건 단지 나의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통과한 파동이 내 몸에서 계속 울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그 파동을 듣는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형상들의 다양성 앞에서, 나는 존재가 얼마나 다층적이고, 얼마나 오래된 기억의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느낀다.
나는 내 몸을 통해 선조의 환경을 듣고, 다른 이의 얼굴을 통해 그의 세계를 본다.
이것이 감응자의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