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우리는 왜 변화에 저항하는가
내가 다니는 직장은 소위 안정적이다. ‘안정적’이라는 말은, 나이가 들어도 정년까지 일할 수 있으며, 본인이 원하면 끝까지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회사에는 나이가 많은 선배들이 많다. 내 나이가 마흔 중반을 넘었음에도, 부서에서 끝에서 두 번째로 젊은 편이라는 사실만 봐도 조직의 연령 구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IT 신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젊은 감각을 유지하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라’, ‘서로 열린 마음으로 논의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렇게 연령대가 높은 조직에서 과연 젊은 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새로운 기술과 사업 전략을 논의하는 과정이 과연 원활할까?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연륜이 쌓인 선배들과 신기술 및 신사업 전략을 논의하는 과정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선배들은 마치 무림의 고수가 ‘화경(化境)’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행동한다. 자신이 이미 어떤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믿으며,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논의라기보다는 연설에 가깝고, 논리보다는 태도를 중시한다. 본인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미리 선을 긋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며, “안 봐도 다 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이것은 협업 과정에서 치명적이다. 하루에도 적게는 3~4시간씩 이런 일장연설을 듣다 보면, 이곳이 새로운 개념을 탐구하는 자리인지,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40분 넘게 훈시를 듣는 자리인지 헷갈릴 정도다. 논의란 본래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최적의 답을 찾는 과정이어야 하지만, 여기에는 ‘정’만 있고 ‘반’과 ‘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조직은 브랜드만 신기술 선도 기업일 뿐, 실제로는 서너 발 늦은 ‘고문관’처럼 움직인다.
역사를 돌아보면,
기성세대는 늘 변화에 저항해 왔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이들은 이를 ‘악마의 발언’이라며 공격했다.
산업혁명 당시에는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처럼 기성세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보이며, 아무리 타당한 주장이라도 귀를 닫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기성세대는 왜 변화에 저항할까?
확증 편향(Cognitive Bias)과 인지 부조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기존 신념과 새로운 정보가 충돌할 때 느끼는 불편함이 강해진다. 이는 마치 자신의 삶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은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심리적 불편함을 방어하기 위해, 기성세대는 새로운 정보를 거부하고 기존의 신념만을 강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생존 본능과 안전 지대(Comfort Zone Effect)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적응할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감소한다. 새로운 환경은 공포로 다가오며, 이를 방어하기 위해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게 된다. 이는 동물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사자들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만, 늙은 사자들은 변화에 저항하다가 결국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과 방식이 등장할 때, 젊은 세대는 이를 기회로 보지만, 기성세대는 이를 위협으로 느낀다.
사회적 지위와 권위 유지 욕구 기성세대는 자신이 오랜 경험을 통해 높은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느낀다. 조직 내에서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가 강하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악순환을 막을 수 있을까?
나이의 증가가 지식의 증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연령이 아닌 ‘정보 습득 능력’이 중요하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기성세대는 젊은 동료에게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이 특별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착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나이가 들수록 ‘꼰대’가 되기 쉽다. 상대와 동등한 눈높이에서 논의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의견 전달을 간결하게, 20초 이내로 정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핵심 없이 서두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젊은 세대에게 고통을 준다. 논의 과정에서 말이 길어지면 변화 대응 속도가 느려지고, 새로운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핵심을 20초 안에 정리하여 전달하는 습관’을 들이면 논의가 훨씬 생산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결국, 기성세대가 변화에 저항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익’보다 ‘자신의 유리한 상황을 최대한 길게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기심을 내려놓고, 열린 자세로 변화에 적응할 때 조직과 사회의 혁신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