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의 비극이 가르쳐준 세 가지 우주에 대하여

현대적 출가자

by 이선율


길바닥을 나란히 걷는 두 마리의 사마귀가 있었다. 한쪽은 앞다리를 치켜세우며 천천히 움직였고, 다른 쪽은 곁을 따라붙듯 묵묵히 길을 나섰다. 그 순간만큼은 두 개체가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고,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깨졌다. 어디선가 날아든 참새가 한 마리를 낚아채더니, 그 즉시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푸드덕거리는 날개 소리, 순식간에 지워진 한 생명. 그것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닥쳐온 재난이었다.


남은 사마귀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앞다리를 세운 당랑권 자세로 땅 위에 굳어 있었다. 위협의 본능이었지만, 상대가 이미 사라진 지금은 공허한 몸짓일 뿐이었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무력한 버팀이자, 끝내 놓을 수 없는 생의 습관이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포식의 순간을 넘어 작은 비극극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 무정한 무대 위에서 우리는 최소한 세 개의 서로 다른 우주를 읽어낼 수 있다.


첫 번째 우주: 사회

두 마리 사마귀는 우리 자신이다. 개인, 가족, 혹은 작은 팀으로서 나란히 걷는다. 그들의 동행에는 계획과 연속성이 있다. 그러나 참새는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예고 없는 해고 통보, 갑작스러운 경제 위기, 시장의 냉혹한 논리. 참새는 사마귀의 서사에 무심하며, 오직 자신의 생존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남겨진 사마귀의 공허한 당랑권은, 시스템의 폭력 앞에서도 어제의 자세를 관성처럼 유지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것이 첫 번째 우주의 냉혹한 법칙이다.


두 번째 우주: 실존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질문은 달라진다. 그는 왜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는가. 깨어있는 존재는 단순히 길을 걷지 않는다. 그는 공기의 미세한 떨림 속에서 이미 참새의 그림자를 읽는다. 그의 당랑권은 사건 이후의 반응이 아니라, 사건 이전부터 이어진 긴장의 리듬이다. 평화란 그에게 안온한 휴식이 아니라, 언제든 찢어질 수 있는 얇은 막과 같다. 출가자는 바로 그 막 위를 걷는다. 이것이 두 번째 우주가 전하는 실존의 법칙이다.


세 번째 우주: 기원

그리고 마침내, 이 작은 생명의 소멸에서 우리는 우주의 기원에 닿는다. 함께 있던 두 사마귀는 자의식이 희미하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리듬체의 원형이었다. 그러나 참새의 습격은 그 평화로운 합일 상태를 깨뜨리는 대격변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남겨진 사마귀다. 그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파트너의 소멸을 통해, 그는 우주에 홀로 남겨진 ‘나’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의 굳어진 자세는 최초의 개별적 자의식(Ego)이 태어나는 순간의 충격과 공포다. 개별적 자아는 언제나 집단의 리듬이 깨지는 비극을 통해 탄생한다. 이것이 세 번째 우주가 드러내는 근원적 진실이다.


자연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무대 위에 사건을 던져놓을 뿐이다.

그러나 남겨진 자는 그 파편 위에서 의미를 건축한다. 흩어진 리듬을 모아 새로운 우주를 짓는 일, 그것이 살아남은 존재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