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성의 교차

현대적 출가자

by 이선율

절집 안에서 종종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 여신도가 스님을 은밀히 유혹해 성적 관계를 맺는다는, 조심스럽게 은폐되는 사건들이다. 이것은 단순한 스캔들을 넘어선다. 스님은 욕망을 버린 자, 금욕을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금기의 벽을 넘어서는 행위는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넘지 말라’는 절대적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사건 자체에 의미를 둔다. 바로 이 아슬아슬한 긴장과 쾌감 때문에, 이런 일은 생각보다 흔히 발생한다.


이 현상의 기저에는 복잡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얽혀 있다. 금기는 본질적으로 욕망의 심장을 자극한다. 하지 말라는 명령은, 오히려 그것을 하지 못해 안달하게 만든다. 스님이 금욕의 상징인 만큼, 그 단단한 벽을 허무는 순간은 가장 강렬한 쾌감을 선사한다. 금욕적인 존재를 흔들고 무너뜨렸다는 사실 자체가 강력한 권력감을 주는 것이다. ‘그조차 무너뜨린 나’라는 승리감은 단순한 성적 만족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러한 욕망은 상대를 향한 순수한 끌림이라기보다, 자기 안의 깊은 공허를 메우려는 투사에 가깝다. 스님은 공동체가 존중하는 정신적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다. 그와 육체적으로 합일함으로써 ‘나는 그 고결함을 내 안에 품었다’는 영적인 합일의 착각을 경험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거부할 존재를 무너뜨림으로써, 비로소 자기 존재가 확인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결핍이 클수록, 욕망은 더 성스럽고 순수한 대상을 향하게 된다.


실제로 기도와 명상 속에서 느끼는 황홀경은, 뇌의 보상 체계에서 성적 절정과 유사한 경로를 따른다고 한다. 영적 황홀과 성적 황홀은 종종 그 경계가 모호해지며 서로 교차한다. 어쩌면 여신도의 유혹은 성적 행위로 위장된, 영적 합일에 대한 가장 강렬한 갈망일지도 모른다.


현대적 출가자는 이 현상을 단순히 도덕적 타락으로 보지 않는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가장 성스러운 것을 향할 때 그 힘이 극대화된다. 금기는 욕망을 억압하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 정교하게 빚어내는 거울인 셈이다.


따라서 스님을 향한 유혹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숙한 구조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욕망과 성스러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교차하며, 인간은 그 위태로운 경계 위에서 끝없이 흔들린다.


진정한 출가자의 길은 욕망을 없애는 길이 아니다. 욕망과 금기의 메커니즘을 직시하고, 그 뒤얽힘을 꿰뚫어 보며, 흔들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길이다. 욕망은 억눌릴 때 추하게 왜곡되지만, 그 본질을 똑바로 직시할 때는 투명해진다. 현대적 출가자는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거친 파도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세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