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자에서 정원사로

by 이선율

정복자에서 정원사로

30대의 나는 부서의 에이스였다. 회의실 조명이 내 프레젠테이션을 비출 때,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에너지로 삼았다. “오늘은 뭘 더 보여줄까?” 그 질문 하나로 출근길의 발걸음은 늘 가벼웠다. 더 많은 프로젝트, 더 높은 평가, 더 빛나는 명예. 그것들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이상적 나’라는 허상을 살찌우는 공물이였다. 나는 내 삶이라는 영토를 확장하는 정복자였다.


그러나 정복의 끝은 충만함이 아니라 통증이었다. 박수갈채가 멈춘 텅 빈 방에는 공허함이 남았고, 만성적인 목과 허리의 통증이 그 모든 명예의 대가처럼 찾아왔다. 결국 내 아침은 다른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오늘 하루 통증 없이, 온전히 내일의 아침을 맞을 수 있을까?”


나는 정복자에서 정원사가 되었다.

나의 삶은 더 이상 정복해야 할 영토가 아니라, 잘 가꾸어야 할 작은 정원이다. 나는 매일 채소 도시락을 싸고, 운동 시간을 확보한다. 잡초를 뽑듯 불필요한 욕망을 덜어내고, 가지를 치듯 과도한 집착을 잘라내며, 햇볕과 물을 주듯 몸과 마음의 루틴을 지켜낸다. 이것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오늘 하루 내 정원의 푸른 잎이 시들지 않고 빛나도록 돌보는 일일 뿐이다.


정원사는 미래가 무한한 확장의 땅이 아님을 안다. 오히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노쇠하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오늘’이라는 작은 화분 안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가꾸는 데 집중한다.


물론, 생로병사라는 거대한 겨울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내가 정성껏 가꾼 이 건강과 생명력조차도 언젠가는 시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정원사의 마지막 지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겨울이 온다는 사실이 삶의 아름다움을 빼앗지 않는다. 오히려 겨울이 오기 때문에, 오늘 내리쬐는 햇볕과 오늘의 푸른 잎사귀를 온전히 사랑하고 경탄할 수 있다. 나의 작은 정원이 언젠가 잎을 떨굴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의 생명력은 더욱 눈부시다.


겨울은 소멸이 아니라 정원의 한 계절이다. 앙상한 가지 속에서 이미 봄의 씨앗은 조용히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정복자의 기록이 덧없었듯, 생명의 스러짐 또한 거대한 리듬 속의 한순간일 뿐임을 되새기며,

나는 오늘도 나의 정원에 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