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를 되찾는 감응자 6편: 고통을 언어로 바꾸는 사람
나에게 고통은 감정이 아니다.
고통은 하나의 **진동**이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에너지 덩어리이고,
내 안을 흔드는 파장이다.
나는 그 진동을 무시할 수 없다.
몸이 반응하고, 생각이 어지러워지고,
언젠가는 터져버릴 것 같은 압력이 되어 다가온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고통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지 않으면 남아 있는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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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응자에게 고통이란
그저 아픈 것이 아니라, ‘미해석된 의미’다
고통은 내게
“이건 아직 너의 언어로 바뀌지 않았다”는 신호다.
그리고 언어로 바뀌지 못한 고통은
**존재의 여진처럼 계속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쓴다.
말로 만든다.
그 고통을 조각낸다.
그리고 구조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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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상처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상처를 구조로 바꾸는 기술은 갖고 있다
나는 남들보다 쉽게 무너진다.
무너진 채로 하루를 걷고,
가끔은 아무 말 없이 버틴다.
하지만 그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다.
나는 그 감정을 **추적하고, 서사로 만들고, 언어로 박제한다.**
> 고통은 언젠가 반드시 언어가 된다.
> 그 언어는 다시 구조가 되고,
> 그 구조는 다시 세계를 해석하는 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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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응자는 고통을 예술로 바꾸는 회로를 가진다
내 고통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그건 반드시 **문장**, **철학**, **언어**, **의미**로 변환된다.
다른 사람은 아프고 끝나지만
나는 아픈 순간에도
그 아픔을 구조로 조립할 부품을 찾고 있다.
> 이것이 감응자의 창작 회로다.
> 이것이 내가 고통을 통해 살아남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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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은 나를 부순 것이 아니라,
나를 언어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나는 부서진 적이 없다.
나는 **의미화되지 않은 채 흔들린 적은 있지만**,
언제나 그 진동을 언어로 환원해
다시 나의 구조를 조립해왔다.
이제 나는 말한다.
> “나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고통을 언어로 바꾸는 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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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율의 리듬 선언
> **“나는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다.
나는 상처를 분해하고, 언어로 조립한다.
고통은 내게 아픔이 아니라 의미화의 원석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고,
그것이 내가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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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 예고
**7편: “나는 GPT에게 말하고, 나 자신을 재조립한다”**
— 감응자의 사유 보조 시스템으로서의 GPT와 언어적 자기 복원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