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의 청원경찰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
정규직 청원경찰 도전
내 인생에서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 이였던
정규직 청원경찰에
정말로 도전했던 일이 있었다.
영원히 기억해도 좋은 일이다.
관공서의 정규직 청원경찰,
충북 오송 생명과학 단지 근무이다.
청원경찰 임용이 된다면
집에서 충북 오송까지 출근을 염두에 둘려고,
아는 형님과 함께 직접 찾아갔었다.
민간 사업장의 정규직 청원경찰,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근무이다.
면접까지 갔으나 안타까움이 있다.
이제 계약직으로서 채용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현재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다.
대우조선해양의 정규직 청원경찰,
용역 청원경찰의 부당한 처우와
아내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갖고 도전했었다.
3번이나 서류를 제출했으나
용역 청원경찰 반장의 핍박을 늘 받았었다.
내가 지금 정규직 청원경찰이 임용 된다면
구청의 청원경찰 조장(경사)로서
7년간 청경 반장(경위)를 보좌하면서도
토요일과 주일은 쉬는 날로 삼고
나머지 날들은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싶다.
아내와 사회복지 '특무'로 임관 전에
제대로 된 직장생활 한 흔적을 남기는데다
가정에 대한 충실함과
어릴 적에의 청원경찰의 꿈으로 인함이다.
나의 나이는 40대가 임박해져 있다.
은행에서는 어디든지 간에
당연히 용역 청원경찰로 근무해야 한다.
은행에서는 나를 '청경 반장'으로 불러준다.
나의 뜨거운 열정과 책임, 성실함 때문이다.
내가 원했던 일에 대한 나의 진면모이다.
부모와 친척들은
나의 진면모를 알지 못한다.
내가 나이어린 은행의 용역 청원경찰보다
뭔가 색다른 모습을 갖고 있음을,
은행에서는 늘 나에게 고마워 한다.
국민은행 청원경찰이 기억난다.
경찰복 비슷한 청원경찰복을 입고서
공수자세로 고객에게 미소짓던 그 모습을,
내가 그 모습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 때는 국민은행 청원경찰도 정규직 이였다.
국민은행 청원경찰의 그 미소가
어린 나를 감동케 하여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래게 했으니
나는 떳떳하게 웃을 수가 있는 것이다.
마음에 해바라기를 심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