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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디 옹그 Mar 02. 2024

신사옥 기획전시《전국대전》서문

2024년 3월 13일 전시 오픈!! 오셔서 예비 작가들을 응원해주세요!

가장자리를 향해 꿈틀대고 있는 미술 


- 글 홍희진(독립 큐레이터)


     당신이 찾아온 이번 전시는 미술인의 외침이다. 동시대의 역사를 보면 지난 1990년대 전지구화를 거쳐 탈서구중심적, 수평적, 비인간적 사고를 지향하며 인문학적 상상력과 함께 개별 개체 존재 그 자체를 탐구하는 중이다. 다양성이 체화되어 체계적 해석보다는 오류가 발생하는 지점이 주목되고 기존의 자연성은 자연스레 미지의 세계로 뒷걸음쳐 앎과 끊임없이 거리를 두고 있다. 균형감은 불균등한 세계를 알아채고 스스로 무게 중심을 가질 때 획득할 수 있다. 동일하게 똑바로 걷기보다 뒤뚱거리거나 종종 넘어지는 어처구니없는 모양새가 생의 강력함을 알리는 창조적인 시대인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지영, 옥정호 두 미술 작가는 ‘아트스페이스 신사옥’을 통해 ‘전시미술’을 하고 있다. 미술의 역사가 세워지는 곳에는 언제나 미술작가가 있다. 큐레이터 중심으로 전시가 부상하는 시대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아티스트큐레이터가 미술의 역사를 썼다. 마치 19세기 후반 귀스타브 쿠르베가 거부당한 기존 체제에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스스로 개인전을 기획한 것처럼, 20세기 초반 마르셀 뒤샹이 레디메이드 개념으로 사물을 ‘선택’해 예술로 분류하는 창의력을 발휘한 것처럼, 20세기 중반 앨런 캐프로가 갤러리를 운영해 자신이 직접 해프닝 예술을 창시한 것처럼, 조지 마키우나스가 플럭서스 선언을 통해 플럭서스 하우스 협동조합을 기획한 것처럼, 20세기 후반 그룹 머테리얼이 뉴욕 거리에서 사회정치적 발언을 수년간 지속해오며 현실을 밝혀온 것처럼 말이다. 미술은 철학의 문제와 같이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과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해방에 공헌하는 문제를 전시대적으로 갖고 있는데 이 영속의 과제에 맞서 두 미술 작가는 미술 본연의 일상적인 문제들을 미술 시스템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형태를 ‘정치미술’, ‘사회비판적 미술’, ‘포스트민중미술’, ‘시스템미술’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만 이번 기획의 경우는 동시대 전시 고유의 속성에 큐레토리얼 스테이트먼트가 강조되는 시대 미술 작가가 소유한 공간에서 전시를 매개로 작가적 시선을 나타내는 ‘전시미술’이라고 정의해본다.  


     아트스페이스 신사옥의 운영자이자 미술작가인 아티스트큐레이터 이지영, 옥정호는 가을과 겨울이라는 두 계절 간 전국의 조형예술과, 동양화, 서양화, 조각과, 사진과 등 미술학과가 있는 대학교의 학부 졸업생들의 전시, 일명 ‘졸전’을 눈으로 대면하고 그 졸업 작품들 가운데 ‘가능성 있는’ 예비작가를 선별한다. 여기서 우리는 ‘가능성 있는’ 작가는 누구이며, ‘가능성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배우고 연마할 수 있는지 미술 그 자체와 미술교육 시스템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을 갖는다. 이 질문은 미술 대학교라는 고등교육체계 안에서 작품성을 판단하는 기준과 미술 작가라는 직업성 형성에 대한 얘기들로 이어진다. 이 얘기를 좀 더 얽혀 풀어내 보자면, 작품을 만들게 하는 주체에 대한 질문이며, 작업이 작품이 되는 순간에 대한 감각이며, 시스템 안 교육이 끝나고 미술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 진지한 예측이고, 지금 하고 있고, 앞으로 추구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결국 예술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얘기이다. 대학교 학부생의 지난 미술 교육 결과물로 내보인 대학교 학부 졸업생들 전시에서 이러한 선별이 가능한지 의문을 앞서 품어 보지만, 이번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 또한 미술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작가 선별 기준들과 동일하게 적용되는 면모를 발견한다. 작품과 작가를 모두 대면 후 초청 방식으로 열과 성을 다해 숱한 고민을 거쳐 ‘엄선된’ 예비작가들로 구성된 전시이다. 이것은 미술 지원시스템에서 놓치고 있는 대상을 발굴하여 미술작가가 정책적 제안을 하는 취지도 아니고, 기회평등 관점에서 자칫 예비 작가들을 무분별하게 포용하며 전시 공간운영자이자 선배 미술인으로서 전시를 열어주려는 선행은 더더욱 아니다. 기획단인 두 미술작가는 특정 전시를 목적에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예술만을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 수 있을 시간이라고 미술학부 생활에서 만든 작품들에 주목한다. 작가생애 초기의 고유성과 가치를 귀히 생각해서 예비 작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미술 언어들을 찾아 드러내 주고 있다. 

 

     이번 전시 《전국대전》은 2022년 아트스페이스 신사옥 설립해와 그 역사를 함께 하면서 《프로젝트 올작(올해의 모든 졸업 전시)》라는 전국 미술대학교 졸업전시 탐방 프로젝트로 시작을 하여 차기년도에 전시형태로 나타나는 아트스페이스 신사옥 기획의 장기 프로그램이다. 첫 해의 1회 《전국대전》은 두 번에 걸쳐 연이어 진행하며 손에 꼽는 예비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는데 1부(2023.2.24.~3.10.)에서는 박진희, 서희림, 이정윤, 위수빈, 정영권 예비작가가 참여했고, 2부(2023.3.17.~3.31.)에서는 구지윤, 김상휘, 김우섭, 김지원, 유문선, 장이륜 예비작가가 참여했다. 역량 있는 젊은 미술인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세계를 드러내주는 플랫폼 역할로서 지난 한국미술의 전시 역사에서 “미술대학, 뭘 가르치나”(공장미술제 2회에서 진행) 등의 논쟁적인 워크숍으로 예술공론장을 펼치며, 대학생, 대학원생, 강사 등 백여 명이 ‘대학연합미술제’ 수준의 대규모 전시에 참여했던 ‘공장미술제’(총 4회, 1999년에 1회 개최)가 있었고, 2008년 이래 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축제로서 현재는 대규모 아트페어 형태로 진행 중인 ‘아시아프’(ASYAAF, 아시아 국적을 가진 대학생 및 35세 이하의 젊은 작가 대상)가 있다. 《전국대전》은 졸업전시 현장에서 만남을 통해 시작되고, 참여 규모면에서 크게 다르지만 젊은 미술인을 응원하고 미술현장과 미술교육 현장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기획의도의 출발에서 그 결을 함께 한다. 


     첫 해의 《전국대전》이 서울 중심의 문화 집중 현상의 문제점을 계기로 ‘서울 외 지역에 발생한 틈들을 작게나마 메우고자’(기획 글에서 발췌) 지역안배를 고려하면서 선별한 예비작가들의 작품들을 특정한 주제 없이 소개하였다면 이번 전시는 좀 다르다. 두 번째 해인 2회 《전국대전》은 작품성과 작가로서의 지속성을 기준으로 초대하였고, 전국 미술대학교 졸업전시를 탐방하는 ‘올작’ 프로젝트 말미에 기획단은 ‘현실유머’라는 주제를 후차적으로 떠올린다. 기획단이 발견한 ‘현실유머’는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일까. 세대교체가 30년 주기를 가지고 있다는 환상 아래 1990년대 초중반을 떠올릴 수 있다. 당시 한국은 정권교체(1993)로 문민정부와 함께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1993), 성수대교붕괴사건(1994), 삼풍백화점붕괴사고(1995), 대구 상인동 가스폭팔 사고(1995) 등 수백 명의 대규모 사상자를 유난히도 수차례 발생시킨 사건·사고의 혼란을 겪었다. 당시 힙합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 <시대유감>은 한 소녀의 편지가 발화되어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도를 폐지시켰다. 이러한 1990년대 풍경에서 세계관이 형성되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어른이 된 우리(기획단 기준)이다. 동시대 예술로 진입하면서 미술을 넘어서 과학, 미술을 넘어서 철학, ‘미술을 넘어서’ 라는 문구로 기존 미술을 정중앙으로 옮겨 고착해두지만 미술은 언제나 가장자리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고, 미술의 자유는 사회에 닿아있지 않은 적이 없다. 때론 침묵으로 함구하고 때론 토설하지만 이 또한 사회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미술인이 바라보는 이 시대의 ‘힙’은 무엇이며 어떠한 감각을 재분배하고 이미지를 생성해낼 수 있을지 시차적 동시성 관점에서 곧 사회로 나올 예비작가들을 살펴볼 수 있다. 2024년에 졸업을 하는 세대가 겪은 4·16 세월호 참사(2014), COVID-19(2019년 이래 진행 중), 10·29 이태원 참사(2022)는 그들을 어떤 예술로 이끌었는지, 말해야하는 사회의 면모와 자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는 어떤 예술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말이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서 젊은이들이 익숙하지 않게 겪는 지리멸렬, 공허로 뒤덮인 세계의 모양새, '나'라는 실존을 찾아가는 암흑, '나'로 묶이지 않는 타자들의 발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너절한 일상, 절멸할 것 같은 사랑, 고뇌의 시작을 여는 독립생활, 감당해야하는 죽음들의 등장 등을 비유나 감각의 언어로 드러낼 수 있다. 들 끊는 피와 젊음의 고뇌에서 표출되는 예술은 비릿하고 정돈 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예비작가들이 선보이는 이번 작품들은 이미지와 형상, 영상 설치물 이상으로 사회 미학이 작동하는 지금 이 시대를 얽혀놓은 응결체이자 표출물이다. 예술의 사회성과 사회의 예술성이 시대의 결을 달리하며 재등장하는 시점이다. 맞서는 자세로 역사를 쌓아온 미술은 기존 질서, 전통, 체제를 넘나들며 저항, 체념, 비판, 침묵의 모습을 띄어오고 있다. 움트는 미술은 젊다. 젊은이들의 미술이 다시 현실을 한국 전역에서 떠들어대고 있다. 미술작가이자 아티스트큐레이터인 이지영, 옥정호는 《전국대전》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미술의 ‘현실유머’ 시대가 도착해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2회 《전국대전》참여 예비 작가 (총 26명) :  강승호 권영재 김민유 김세연 김수빈 김슬아 김지원 김지혜 남지강 노경민 박예원 박정아 박지원 방세현 변다효 서우정 서은별 심지민 안휘민 유슬비 유정 윤사유 이소희 임지수 주상돈 최예나


**아트스페이스 신사옥은 동시대미술작가 이지영 옥정호가 운영하는 전시공간이다.

공간 주소 : 서울 은평구 통일로66길 9 2층 (아래 링크로 세부 참고)

 https://place.map.kakao.com/187193889?referrer=daumsearch_local


***1회《전국대전》관련 뉴스는 한겨레 노형석기자의 글로 보도된 바 있다. (아래 링크로 내용 참고)

https://v.daum.net/v/2023030807052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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