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라고 다 믿어서는 안 된다
옷가게에서 바가지를 썼다. 그것도 코펜하겐 한복판, 잘나가는 동네에서 말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처음부터 뭔가 수상했다. 샵 안의 옷들엔 가격표도 없고, 사이즈 표기도 없으며, 브랜드 정보도 불투명했다. 아예 태그조차 없는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유심히 보고 있던 코트에는 옷핀으로 어설프게 종이 태그가 달려 있었는데, 참 이상하게도 주인이 물건을 건네주며 슬쩍 떼어버렸다. 집에 와서 보니 태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코트를 두고 “100% 울 소재”라며, 그에 비해 가격이 아주 괜찮다고 했다. 결국 2,000크로네, 한국 돈으로 약 33만 원을 주고 샀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안감 케어 라벨을 확인해보니, 뚜렷하게 100% 폴리에스테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순간,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바로 즉시 자전거를 타고 다시 샵에 찾아갔다. 하지만 환불은 안 된다며, 바우처만 줄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미 그 여자의 말을 더는 믿을 수 없다고 느낀 나는, 그냥 코트를 들고 나왔다. 오늘 아침, 소비자 보호 센터에 신고는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사실 이 샵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구글 맵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고, 가게 이름도 없으며, 오픈 시간 안내도 붙어 있지 않았다. 신용사회를 자랑하는 덴마크에 살다 보니 (그리고 실제 그걸 체감하며 살았다, 어제까지는...), 무의식 중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안일하게 행동한 게 화근이었다. 말만 믿고 확인도 제대로 안 했고, 영수증을 보니 심지어 말한 금액보다 2만 원을 더 받아 갔다.
참 어이없고 허탈하다. 내가 이렇게 어리숙할 줄이야. 완전 홀린 기분이었다.
사실 그 샵에 가게 된 것은 남편때문이었다. 한 달 전, 남편이 그 샵 쇼윈도에 걸린 가디건을 보더니 “어머니한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별 생각없이 한마디 던졌다. 안그래도 시어머니 선물을 걱정하고 있던 나는 그날 저녁, 시어머니 선물로 그 가디건을 사러 갔다. 하지만 결국 시어머니께서 입어보시고 사이즈도 그렇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셔서, 환불이나 교환을 하러 어제 다시 샵에 갔다가 문제의 코트를 보게 된 것이다.
그 코트 가격도 오락가락했다. 처음에는 1,400크로네라고 하더니, 이전에 산 옷을 그걸로 교환하겠다고 하자 1,900크로네라고 했다. 내가 잘못 들었다고...이때부터 좀 이상했지만 뭔가에 홀린 듯 구매할 결정을 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마지막 영수증에 찍힌걸 보니 가디건 값을 포함해서 총 2,000크로네를 준 것이었다. 완전히 눈 뜨고 당했다.
코트 한 벌 값이니 인생을 뒤흔들 만큼 큰돈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일을 겪고 나니, ‘믿었다가 사기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금액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믿음이 배신당한 데서 오는 감정의 무게가 더 컸다.
어제는 컨디션도 그렇고 이미 버겁던 날이었다. 이 일까지 겹치니 감정이 더 깊이 가라앉았다. 순간적으로 마음속에 “욕심을 버리자”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욕심… 내가 욕심을 부린 걸까? 억울한 감정을 내려놓으라는 뜻일까? 그 샵 주인은 또 얼마나 삶이 고단하면 매번 그런 식으로 속이며 살아야 할까. 그런 그녀를 향한 연민을 가져보라는 뜻이었을까?
33만 원이야 없다고 치면 그만일 수도 있다. 단지, 그런 식으로 속고 난 뒤에 마음을 다잡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소비자 보호 센터에 신고했다. 환불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이 경험을 통해 내가 확실히 배운 것들이 있다.
아무리 덴마크라도, 사람을 무턱대고 믿지 말 것.
샵에서 가격표가 없으면 절대 사지 말 것.
사기 전에 라벨을 꼼꼼히 확인할 것.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 여자가 단 한 번이라도 경고를 받게 된다면, 이 불쾌한 경험이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속으로 되뇐다. 믿음은 소중하지만,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