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엔터테인먼트 사를 도망쳐 나와 스타트업에 입사를 했고, 6개월 만에 퇴사 후 T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그리고 8개월 뒤, 대기업으로 다시 이직을 하여 지금의 제가 됩니다.
엔터테인먼트(3대 기획사 중 하나) → 스타트업(5인 미만 사업장) → T 회사(400명 규모, 현재 유니콘 기업) → 대기업
대기업으로 이직하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기 앞서, 스타트업에서 T 회사로 이직하게 된 사유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스타트업 근무 시절로 다시 돌아가 보죠.
여느 날과 같이 기업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날, 대표님께서 사이트 하나를 공유해 주셨습니다. ‘디지털 노마드 in 제주'. 넥스트챌린지라는 글로벌 엑셀러레이터 재단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인데, 제주도에서 약 2주간 거주하며 본인의 업무를 포함한 엑셀러레이팅 멘토링, 로컬 프로그램, 네트워킹 모두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 인터넷과 업무에 필요한 각종 기기, 작업 공간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유목민. 들어본 적 있지만, 그것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존재. 합격만 하면 흔쾌히 2주간 보내주겠다는 대표님의 이야기에 바로 지원을 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보다, 합법적으로(?) 제주도에서 2주간 일할 수 있다는 설렘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슬프게도, 디지털 노마드 체험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류 전형과 면접 전형을 합격해야 했죠. 이 브런치북 1~4편에서 공유드린 제 인생 이야기를 포트폴리오로 담아 전달하니 서류 합격 문자를 받을 수 있었고, <변종의 늑대> 작가이자 넥스트챌린지 대표이신 김영록님과의 면접에서는 그저 ‘누구보다 잘 놀 자신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면접을 보고 며칠 뒤, 제대로 놀겠다는 진심이 통했는지 약 1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참가자로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 in 제주’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추억과 경험들은 나중에 상세하게 다루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연히 참가하게 된 이 프로그램이 제가 다음으로 가야 할 곳이 어디일지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는 부분입니다. 엑셀러레이팅 멘토링에 감명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다른 참가자로부터 인생의 명언을 들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미얀마 친구가 영어로 랩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뿐입니다. 미얀마 친구의 속사포 같은 랩이 제 귀에 때려 박히는 모습을 보니, 문득 세상 참 넓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세상을 좁게 보고 살아왔다고 느껴졌습니다. 유학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요. 영어를 배우고, 세계로 나가면 지금과 같이 평소에는 보지 못할 순간들을 포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두 번째는 디지털 노마드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디지털 노마드 in 제주'는 제목 그대로 디지털 유목민을 위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참가자 중에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글을 쓰는 웹 소설 작가님, 미니멀 리스트와 채식주의자 인생을 살며 다양한 코칭을 진행하는 여성분, 스타트업 이사님 등 다양한 분들이 계셨습니다. 이분들은 누구보다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인생을 살아오고 계셨습니다. 중요한 건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죠. 멋있어 보였습니다. 저도 노트북 하나만 들고 다니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었습니다. 덥고, 춥고, 습하고, 날씨 좋은 카페에서 타자기를 두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게 제가 살아온 인생을 공유하고, 그들의 인생을 경청하면서요. 그래서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디지털 노마드 in 제주'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다음 내가 가야 할 곳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었고, 이에 대한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어, 글로벌, 그리고 디지털 노마드. 디지털 노마드가 되면 자연스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업무할 수 있으니, 글로벌에 대한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와 디지털 노마드는 다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존재죠. 저는 국내가 아닌 해외를 돌아다니며 근무하는 글로벌 디지털 노마드가 꿈이었기에, 영어는 필수였습니다. 자, 이제 목표가 정해졌습니다. 디지털 노마드 생활이 가능한 글로벌 기업을 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다시 돌아와서, 저는 우선 글로벌 기업에 가야겠다는 목표 하나로 T 회사에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합격을 하게 됩니다. T 회사는 전 세계를 고객으로 두고 있는, 농·축·수산물 무역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입니다. 업무의 대다수도 영어로 진행되었고, 구성원의 출신 또한 다양했습니다. 마케팅팀에는 프랑스인도 있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영어 실력이 급상승했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일정 단계의 수준은 향상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왜 떠나게 되었냐고요?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링크드인에서 해외에서 근무가 가능한 ‘하이브리드 워크 2.0’이 진행된다는 기업의 보도자료를 발견하게 됩니다. 시차 4시간 이내 국가면 어디든지 가서 최대 3개월간 근무를 할 수 있는 제도. 제가 목표로 삼던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가능한 기업이었습니다.
기업 직무도 저와 찰떡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Web3, NFT, Blockchain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T 회사 마케팅 팀장님께서 저를 이 세계로 입문시켜주셨죠. 해당 세계를 이해하고자,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쏟을 만큼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Web3가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하이브리드 워크 2.0’을 발표한 대기업이 글로벌 NFT 플랫폼을 전문으로 하는 법인에서 인재를 채용 중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글로벌 NFT 법인, Global Marketing 직무, 해외 근무 가능한 근무 제도. 퍼즐이 맞춰져 하나의 그림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서류 전형을 시작으로, 1차 면접과 2차 면접까지. 최종 합격 메일을 받기까지는 약 4개월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다시 회사를 떠나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게 됩니다. 2년 전 만에도 5인 미만 사업장 스타트업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2배가량의 월급을 받으며 근무하고 있습니다. 목표로 삼았던 글로벌, 디지털 노마드까지 모두 달성하게 되죠.
짧고도 긴 2년 간 있었던 입사와 퇴사,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하단과 같은 두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중요한 건 단 한 가지의 목표입니다. 일단 목표를 세우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면, 그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결국 그곳으로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달성해야만 하는 이유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저는 ‘글로벌 기업에 가야겠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야겠다’는 목표에만 집중을 했습니다. 즉, 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에 흔들리지 않고, 돼야만 하는 한 가지 이유에 삶을 집중했습니다. 하면 되기 때문이죠.
두 번째, 10년 뒤 목표보다 중요한 것은 눈 앞에 보이는 다음 목표입니다. 스타트업에 다닐 때만 해도, ‘디지털 노마드 in 제주' 프로그램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습니다. T 회사가 글로벌 기업인지도, L 대기업이 ‘하이브리드 워크’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도 몰랐죠. 그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니, 그다음 목표가 생기게 되었을 뿐입니다. 디지털 노마드 프로그램을 참가하고 나서야 글로벌 기업에 가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글로벌 기업 T에서 마케팅 팀장님과 만난 뒤 다음 행선지가 명확해졌습니다. 그렇게 또 이직이라는 목표가 생기게 되어, 대기업에 입사를 하게 되죠.
여기까지 제 이야기를 들으신 분이라면, 의구심을 가지실 수도 있습니다. “또 새로운 목표랍시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거 아니야? 이직을 자주하면 받아주는 회사도 없을텐데 어떻게 하려고?”. 저는 언급하지 않은 곳까지 8곳의 기업을 다녔는데요. 지금의 회사가 제 이상향에 가장 부합하는 곳입니다. 이직해야 할 동기가 현재로서는 전혀 없습니다. 최고의 회사에서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거니와, 해외 근무를 포함한 풀재택이 보장된 회사입니다. 최고의 복지를 자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회사가 저를 해고하거나 갑자기 자아 실현의 욕구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 이상은, 이 곳을 떠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2023년 5월, 저는 한 달간 필리핀 세부에서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하게 되었고, 무사히 대한민국으로 귀국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제 20대 목표는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운동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KOTRA에서 인턴도 해보고, 5명 밖에 없는 스타트업에도 다녀봤으며, 유니콘 상장을 눈 앞에 둔 회사를 뛰쳐나와 대기업에 이직까지 했습니다. 그것이 크고 작던, 결국 원하는 목표를 다 이루면서 말이죠.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정독해주신 분이라면, 제가 결코 똑똑하거나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으실겁니다. 그저 목표 세우는 것을 좋아하고,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을 지닌 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아실테죠. 그렇다면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여러분도 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목표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을 간 것만으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아직 '하면 된다'는 기분을 느껴보지 못하신 분들이라면, 작은 목표를 세워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어냈을 때의 짜릿함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이 기분을 이미 아시는 분들이라면, 지금까지 한 제 이야기가 공감가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는 함께, 더 높은 목표로 향해 가보시죠.
다시 돌아와서, 저는 한 달간의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 버스를 타고 한시간이 넘게 달리던 와중, 불빛들이 가득한 도로와 건물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문득 다음 해야 할 목표가 불현듯 떠오르게 됩니다. 마치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그게 무엇이냐고요? 답은 이 곳에 있습니다. 지금 바로 제 글 1편으로 돌아가서 제목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저의 인생을 들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인생을 응원해주세요. 저도 여러분의 인생을 응원하겠습니다.
“절벽 끝으로 오라"
“할 수 없어요. 두려워요.”
“절벽 끝으로 오라”
“할 수 없어요. 떨어질거에요.”
“절벽 끝으로 오라”
그래서 나는 갔고
그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었다
나는 날아올랐다
- 크리스토퍼 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