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조카, ‘로아’가 태어난 지 이제 약 20개월이 되었다. 아들만 둘을 낳아 길러주신 어머니와 아버지 앞에 나타난 로아는 존재 그 자체로 가정의 평화와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부모님은 대전에 살고 계시고, 형네 가족은 세종에 있다. 차로 이동하면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기에, 서로 종종 만나 밥을 먹기도 하고, 때로는 부모님께서 로아를 대신 봐주시기도 한다. 반면 나는 홀로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평일에는 일을 해야 하고 주말마다 대전에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가족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실로 제한적이다.
고향에 방문차 내려간다고 한들 매번 로아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아직은 어색한 삼촌과 조카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로아가 나를 알아보는지는 아직도 의문인데, 이는 실제로 만날 때마다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오랜만에 볼 때마다 짓는 그 특유의 ‘긴가민가한 표정’은 항상 나를 웃음 짓게 만든다. 마치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 이 표정은 언제쯤 사라질지 의문이다. 나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마주쳤을 때와 같이, 내 눈만 마주쳐도 웃으면서 신나게 달려와 안기길 바랄 뿐이다.
반면, 매번 드라마틱하게 성장해 있는 조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마치 매일 보는 가족보다는 몇 달에 한 번 보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달라진 나의 모습을 잘 캐치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로아를 만나기 전에는 항상 부모님께 다음과 같이 여쭤보곤 한다. “로아 이제 걸어요?”, “로아 이제 말해요?”.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 나는 매번 로아를 마주하러 간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엄마의 품에 안겨 바라보던 세상이 전부였던 로아가, 어느 순간 스스로 일어나 뒤뚱뒤뚱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로아가 주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어 다닐 때와 서있을 때, 두 가지 선택지로 넓어지게 되었다. 오른손에는 엄마, 왼손에는 할머니의 손을 잡으면서 걷는 로아의 눈은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더욱 바빠졌다.
그 후 몇 달 만에 다시 본 로아는 혼자서도 잘 걷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제는 남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안겨있는 모습이 익숙했던 로아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기도 하면서, 앞으로는 지나다니는 차와 사람들을 주시해야 하는 등 전에는 하지 않던 걱정들도 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로아는 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 성장세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행복감이다.
어느 날, 아장아장 걷고 있는 로아의 모습을 보니 ‘걷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야 로아를 몇 달에 한 번만 보기에 그 변화가 눈에 띄었지만, 그 몇 달 사이 로아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수 백 번, 수 천 번 반복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서 있는 것 자체로도 중심 잡기 힘들었을 것이고, 그 후에는 몇 발자국만 걸어도 다리가 풀려 주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아는 다시 일어나서 걷기를 반복했다. 단지 그뿐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일어나서 걷는 것만으로는 박수받지 못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지만, 항상 더 나은 삶을 살고, 내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걷는 삶,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기도 하며, 더 나은 보수를 받기 위해 이직을 준비하기도 한다. 때로는 좋은 이성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를 꾸미기도 한다. 우리는 길다란 인생에서 나타나는 길고 짧은 퀘스트들을 완수하기 위해, 오늘도 여정을 밟아가고 있다.
다만 어렸을 때와는 다른 점도 있다. 이제는 무언가 도전을 하기 전부터 남의 눈치를 볼 때도 있고, 시작하기 전부터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하기도 한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도전을 비웃는 사람들도 종종 나타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부터 점수가 잘 안 나올까 걱정을 하기도 했고, 이직을 하고자 마음을 굳혔을 때도 부모님과 친구들의 반응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다가오는 병목 현상은 걸음걸이를 늦출 뿐이었고, 남을 위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느낌만 받을 뿐이었다.
로아는 다르다. 로아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못하며),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못한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듯이, 실패하면 다시 시도할 뿐이다. 성공할 때까지. 그리고 항상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둔다. 세상에 자기 자식이 넘어졌다고 해서 꾸짖거나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넘어졌을 때는 격려해 주고, 스스로 일어났을 때는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무엇인들 못하리.
이제 막 20개월이 된 조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로아와 같은 인생을 살리라 다짐했다.
1. 성취하기 위해, 꾸준히 도전하자. 로아는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서 걷게 된 것이 아니다. 매일 일어나고 넘어지기를 반복한 끝에 지금과 같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2. 남의 눈치 보지 말자. 로아는 넘어지는 것에 민망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은 일으켜 세워주거나 몸을 지탱해 달라는 손짓과 행동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다.
3. 실패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로아의 머릿속에는 실패라는 단어와 경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실패할 수 있는 백 가지 이유가 아닌, 성공해야만 하는 한 가지 이유다.
4. 나의 도전을 응원하는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자. 로아에게는 조부모와 부모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응원과 격려를 받고 자란 로아는 결국 세상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혜택을 얻게 되었다.
나는 나의 조카, 로아로부터 인생을 다시 한번 배웠다. 향후 로아가 충분히 크고, 나처럼 주저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너로부터 도전할 수 있는 힘을 배웠으니, 이제는 내가 너에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겠다고. 내가 로아로부터 인생을 배웠듯이, 로아가 나에게로부터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