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적막감
어느 날 밤 문득 그림을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사고 싶었지만, 원본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림을 사지 않고 그림 공부만 열심히 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그림을 하나 사야 할 마음이 들었다.
어떤 그림을 살까? 가지고 싶은 그림을 모두 다 사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려면 서울에 있는 아파트 10채는 팔아야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해지며 차선책으로 여긴 아트 포스터로 눈을 돌렸다.
아트 포스터를 고급 인쇄지에 인쇄해서 어울리는 액자에 넣어주는 여러 인터넷 사이트를 구경하다 보니 묘하게 겹치는 그림들이 보인다.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가장 큰 흥행을 이끈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인스타그램에 돌아다니는 카페 사진에 항상 등장하는 마티스의 연필그림, 귀여운 아이를 떠오르게 하는 요시토모 나라의 익살스러운 그림. 묘하게 겹치는 이 그림들을 보면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밝고 생동감이 넘치는 그림을 선택하는 걸까? 하며 추천으로 뜨는 비슷한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래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질리지 않으면서도 방안에 물건들과 조화로울 그런 그림이 뭘까? 하염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이 그림이 나왔다.
데이비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그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은 한 번쯤은 보았을 정도로 어느 정도 익숙한 그림이다. 미국인 화가 데이비드 호퍼가 미국인 내면의 고독감을 그린 그림이라나. 어느 수업 시간에 들은 이야기가 떠오르며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니 사무치게 쓸쓸하다.
분명 함께 있는데 이 쓸쓸하고 적적한 기분은 무엇일까? 거리에는 어둠이 깔려있고, 유일하게 불이 켜진 가게에는 한쌍의 남녀와 고개를 숙인 남자가 바 테이블에 앉아있다. 한쌍의 남녀는 주인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고개를 숙인 그 남자는 거리의 어둠처럼 무거운 침묵만을 유지하는 듯하다. 하루의 끝에서 이들은 왜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웃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이 그림에서 나는 무언가 모를 고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고요함은 꽤나 마음에 드는 평온함이었다.
데이비드 호퍼가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이 그림에서 평온한 고요함을 느낀 나는 이 아트 포스터를 구매했다. 그리고는 액자를 올려둘 선반을 깨끗하게 치웠다. 침대를 마주 보고 있는 선반 위에 이 작품을 올려두고 자기 전에 바라보면 그 순간에도 내가 느꼈던 고요함이 무한하게 확장되어 내 방안에 가득 차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