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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호 Sep 30. 2024

보더콜리 집사가 되다

집으로 돌아갈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2023년 10월 초, 보더콜리를 키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그는 내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행동지도사 책도 구매했다. 이제 못 무른다. 무료하지만 편안했던 나의 일상을 끝장내버린 녀석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즉흥적이었다. 모든 만남은 '인(因)과 연(緣)'이라고 했던가. 막내로 인해서 키우게 되었지만, 지금은 아내가 더 좋아하고 머니도 장난 아니고 몸도 피곤하고 집안 곳곳이 성한 곳이 없지만 집으로 돌아갈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이 좋다. 대한민국의 모든 견주들을 존경하게 됐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뭐랄까? 따뜻한 경험이랄까? 그를 키우기 전과 후의 나는 조금 달라진 듯하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보더콜리라는 녀석과 함께하는 동안의 일상을 기록하기로 했다.


 사실 어릴 때 키운 '셰퍼드' 말고는 아는 견종이 거의 없다. 어린 시절 초등학생 정도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아버지께서는 대략 일 년 반정도 개 장사를 잠깐 하셨었고 돈이 되는 '도사'견을 많이 키웠다. '아키라'라는 일본 개도 있었던 거 같다. 지금 찾아보니 정확한 견종 이름은 '아키타'다. 도사견이 당시 오십 마리 정도 되었으니 꽤 크게 했던 거 같다. 그 당시 주사도 직접 놓고 그랬다. 사료값이 만만치 않아 근처 라면 공장에서 라면 뿌스러기를 받아 큰 무쇠 솥에 사료와 함께 죽을 끊여 먹였던 기억이 난다. 암튼 부모님께서는 구멍가게부터 옷장사, 개장사, 안 해본 것이 거의 없으셨던 거 같다. 그 시절은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잠시 삼천포로 이야기가 빠졌는데, 개 이야기를 하려니 그 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보더콜리를 입양한 것은 작년(2023년) 10월 초의 일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막내가 일 년 전부터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강아지를 사주기로 했다. 그 당시 막내는 '골든 리트리버'라는 견종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분양받을 수 있는 방법을 검색했다. 팻샵에서 분양받는 것은 좀 꺼려졌다. 안 좋은 글들이 많아서 그랬던 거 같다. 그렇다고 일반 개인이 분양하는 곳도 수소문해 보았지만 마땅치 않았다. 한두 달 지난 강아지는 이미 분양이 완료된 곳이 많았다. 이곳저곳을 알아보던 중, 양평의 '대형견 아울렛'을 알게 되었고 구경이나 한번 가보자고 정한 것이 시초였다. 방문일에 영업하는지 확인 후 아내와 막내에게 가보자고 이야기했다. 막내는 너무 좋은지 이날만을 기다렸다.


 당일이 되자 둘째도 함께했다. 평소에 둘째도 관심이 있었는지 함께 가자고 했다. 그렇게 양평으로 네비를 찍고 길을 잡았다. 중간에 길이 막혀 2시간 정도 걸렸지만, 도착하자마자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친절하게 마중 나와 안내해 주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많이 보던 녀석이 보였다. 골든 리트리버였다. 옆에는 까마고 하얀색 털을 가진 처음 보는 성견도 보였다. 이 넘이 바로 보더콜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보더콜리를 키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골든 리트리버를 가까이 본 것은 처음이었고 실제 거대했다. 과장이지만 너무 커 보였다. 당시 '너무 큰데!'라고 아내에게 놀라며 말했다. 보편적인 진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경험을 통해서 보다 많은 공감을 할 수 있다는 측이다. 단순히 보고 듣는 것과 경험해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생각보다 커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자 리트리버 강아지 여섯 마리 정도가 우리에 모여있었다. 직원분이 그중 한 마리를 골라 보여주며 설명해 주었다. 막내는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 다칠까 조심스럽게 만져도 보았다. 성견 크기 때문에 막내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했지만 섭섭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여기서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혹시나 해서 다른 견종을 이야기한 것이다. 아~ 왜 그랬을까? 직원분은 주변을 돌며 여러 가지 견종을 보여주었다. 뭐라 뭐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지만 체면치레상 고개만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하면서... 마지막에 리트리버보다는 작다고 하며 보더콜리를 설명해 주었다. '보더콜리?' 입구에서 본 까마고 하얀 녀석이 바로 보더콜리였다. 그렇게 직원분을 따라서 건물 뒤로 돌아가니, 보더콜리로 보이는 강아지 다섯 마리가 모여있었다. 몇 마리 꺼내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었다. 막내 눈을 보니 전보다도 반짝였고 말도 많았다. 아내도 리트리버 볼 때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애가 더 이쁜 거 같네!'라고 한마디 했다. 사실 아파트에서 대형견을 키우는 것이 부담스러워 망설여졌는데 리트리버보다 작다는 말에 조금 혹한 거 같다. 일단 오늘은 구경만 하고 좀 더 고민해 보자고 아내가 말했다. 그렇게 집으로 다시 가려는 분위기였는데... 막내 눈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마음이 약해졌고 이번 아니면 못 기를 거 같아 아내와 상의 후 입양하기로 했다. 사실 관련 비용 모두 내가 부담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이때까지도 머니가 이렇게 많이 들지 생각을 못했다. 역시 경험의 위대함을 다시 느꼈다.


 막내에게는 입양하면 돌이킬 수 없고 책임 있게 키울 수 있겠냐고 다시 한번 다짐을 받았다. 막내와 아내는 마음에 드는 보더콜리를 재잘대며 열심히도 골랐다. 털이 뽀송뽀송하게 풍성한 녀석을 선택했다. 직원분이 알겠다며 잠시 안쪽에 계시면 처리해 드리겠다고 했고 잠시 후 커다란 종이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안에는 조금 전에 선택받은 보더콜리 강아지가 떨고 있었다. 막내와 둘째는 강아지를 안고 좋아했다. 아내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직원분에게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사료 및 기타 필요한 물품을 이것저것 얻어 집으로 왔다. 돌아오는 동안 얼마나 낑낑 데던지 중간에 잠시 차를 세우고 박스에서 꺼내 아내와 막내가 번갈아가면서 안고 왔다. 막내는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은 표정으로 하루종일 강아지와 함께 했다. 잘 때도...


예상은 했으나 그렇게 아내와 나의 보더콜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참! 이름은 시루다. 둘째가 입양일에 차 안에서 갑자기 시루떡이 생각나서 지었다고 한다. 음식 이름으로 지어야 오래 산다고 한다. 시루떡에서 '떡'을 떼고 시루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름 : 시루(Siru)
견종 : 보더콜리
성별 : 수컷
출생 : 2023년 7월 30일
입양 : 2023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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