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자 시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색림 Jan 31. 2023

하나의 길이 막혔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2023년 1월 29일의 기록

7년 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오늘자 일력이 대신해 줘서 기록. 당시 경찰을 관두고 기자가 되면서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속은 많이 아팠다. 어린 시절 꿈이었던 길을 포기한 내가 꼭 낙오자, 실패한 인생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마도 첫사랑 같은 직업을 내가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찰을 관둔 것도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인 것도 지금 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고 추호도 후회하지 않는데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직업도 직장도 연봉도 생활도 모두 먼 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 당시엔 왜 그리 스스로를 옥죄었던지. 세상이 넓은 만큼 인생길도 다양하다는 걸 배운 지금은 안다. 그때 나는 참 어렸고 외골수라 스스로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났었다는 걸.


경찰이나 기자나 둘 다 만만치 않게 험하고 기 센 직업이다. 그런 힘든 직업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나름 잘 해낸 이십 대부터 삼십 대 초반은 실패가 아닌 도전의 연속이고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를 칭찬해 줄 만큼 여유가 생겼다.


하나의 길이 막혔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길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첫사랑과도 같은 어린 시절 꿈꾸던 직업에 청춘과 인생을 다 내던지는 것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을 가보는 것도 본인에게 맞는 선택을 하면 그만이다. 하나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해서 본인이 행복해면 된다. 삼십 대 중반인 나는 지금까지 이직을 네 번 했다. 첫사랑 같은 경찰이란 직업과 갈라서지 않았더라면 나는 불행한 결혼생활과도 같은 커리어를 유지하며 좁은 한국이란 우물 속에 머물러 있었겠지. 갈라서길 잘했다. 이 말을 하는 데 7년이나 걸렸다.


지금 있는 직장에서 나는 에디터 중 가장 어리고 유일한 비백인, 비미국인 여성이다. 다수의 주류에 딱 떨어지게 소속되지 않은 불안감은 한동안 스스로를 의심하게 했다. 이제는 그들과는 다른 나의 경험과 특이한 입직경로와 커리어 배경이 나의 강점이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한다. 다행히 이 사실을 깨닫는 데 2년밖에 안 걸렸다.


고집이 세고 약간의 강박도 있어 융통성이 부족해 새로운 깨달음은 느리게 얻는 편인 나이지만, 예전에 7년 걸려 깨닫던 걸 2년으로 단축한 걸 보면 숙련되고 있나 보다. 앞으로 더 현명해지고 유연해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찰에서 기자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