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을 지나 나답게 서서 일하기
“국문과를 나왔어요”
라고 하면 사람들은 내게 ‘오 글 잘 쓰겠네’라든가 ‘문학소녀였구나’라며 농담이 섞인 말을 건네곤 했다. 아마 스몰톡의 일환으로 가볍게 던진 말들이리라.
난 그걸 알면서도 “아 아니요, 국어국문학과는 국어학과 국문학으로 나눠져 있는데 전 문학은 못해서요. 국어학 수업만 들었어요.” 라면서 나름의 TMI를 언급하며 내 전공의 선택을 설명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나름의 ‘변호’였던 것 같다. 수필이나 소설, 철학처럼 사유를 필요로 하는 세계에선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스스로 낮춰 말하는.
그런 나에 대해서 나름 객관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대학시절엔 왜 늘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이 부러웠었는지. 논리적으로 비평글을 써내는 선배의 시선이 부러웠고, 감수성 가득한 문장으로 상대를 홀리는 문장력을 가진 동기가 부러웠다. 수필 몇 편을 모아 척척 책을 펴내는 친구의 모습도. 나는 언어학에 관심이 있다곤 하지만 그냥 배운 걸 외워서 읊을 뿐인 걸.
나는 졸업 이후 동기들과 교류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소식을 듣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SNS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소위 ‘맞팔’ 상태인 동기도, 추천에 떠서 한 다리만 건너면 들어갈 수 있는 동기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피드에 점철된 그들의 감성과 색깔들. 내가 갖지 못한 자기만의 취향과 문장들이 부러웠다. 생각해보면 난 늘 내가 가진 어떤 걸 바라보기 보다 갖지 못한 무언가에 집중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우연한 새벽, 잠이 오지 않아 오랜만에 들어간 인스타그램에서 동기들의 선배들의 소식을 본다. 싸이월드 시절의 파도타기마냥 홀려서 보다 보니 금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그들의 근황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국문과생의 어떠한 글의 재능 취향같은 건 여전히 멋있었다. 근데 이번엔 이상하게 딱 거기까지다. 부럽기보다 ‘그건 너의 모습이구나 대단해, 난 내 모습이 있지 뭐’ 하며 툭 털어냈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근황 탐색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어? 내가 달라졌나? 가만히 생각해봤다.
엄마가 된 지 21개월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게는 없는 (아마도 남편에게 왔을) 성격도 있고, 반면 나와 쏙 닮은 성격도 있는 게 참 신기하다.
우리 아이는 겁이 많고 신중하다. 새로운 공간에 가서는 적응 시간이 꽤 걸린다. 내심 닮지 않았으면 하는 내 모습이다. 좀 더 겁을 덜 내고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텐데… 싶다가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그게 네 모습이지 뭐, 엄마가 독촉하지 않을게. 너만의 속도로 세상과 환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지해줄게’
아이의 모습을 인정하다 보니 어느샌가 내 모습까지 인정하게 된 것 같다. 국어학‘만’ 좋아하는 나도, 아이디어가 번뜩 솟아나지 않는 나도, 취향이 또렷하기보다는 이것도 저것도 찍먹해보기 좋아하는 나도, 이게 나라는 걸. 남들이 잘하는 모습들이 있듯이 나도 내가 잘하는 모습에 집중하면 된다는 걸.
이 마음으로 복직 8개월차를 넘어서는 요즘 느끼는 건 일을 해내는 과정에서의 정신적 버거움이 많이 줄었다는 거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보다, 지금의 내 모습을 인정하며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서다. 남의 재능을 부러워하던 시절을 지나, 내 속도로 자라는 나를 조용히 응원해보기로 했다.
나이와 연차가 쌓여도 배움이 남아 있다는 건, 생각보다 오래 갈 수 있는 힘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