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경식은 윤새의 짧고 굵은 과거사를 듣고 불필요한 말을 얹지 않았다. 다만 월성회와 관련된 이야기는 일체 꺼내지 않을 테니 안경원에 머무르기만 하라고 말했다. 단순한 호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로서는 그 칠성이라는 존재들을 최대한 시야 안에 모아 두고 살피는 것이 안전할 테니까. 윤새로서는 경식의 뜻을 지나치게 거슬렀을 때 그가 줄 곤란이 걱정스러워 군말 않고 안경원에 남기로 결정했다. 영원히 감추고 살아야 할 줄만 알았던 능력을 편히 드러낼 수 있는 자가 은근히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큰 문제는 없었다. 윤새는 경식에게서 가게 장부 쓰는 방법을 배웠다. 솔직히 몇 가지 규칙 말고는 배울 것도 없었다. 외상은 명단에 기재된 믿을 만한 손님에게만 달아 준다. 아주 믿지 못할 거렁뱅이만 아니라면 여러 차례에 나누어서 값을 치르는 것도 가능하다. 장부에 기입해야 할 항목은 판매한 안경이나 안경집의 품명, 가격, 그리고 물건값 지불 여부. 시력에 대한 상담을 원하거나 안경에 이상이 생겨 찾아오는 경우는 경식이나 진운이 담당했기에 문제 없었다. 하는 일 없이 봉급만 축내는 기분이 영 찝찝하다는 것 빼고는. 빚지고는 못 사는 윤새가 진열대 근처를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고 명원이 다가왔다.
“언니, 안 해도 돼요.”
퍼뜩 고개를 드는 윤새에게 명원이 살갑게 웃어 보였다. 명원은 윤새가 안경원에 남기로 결정한 날 자진해서 안경원을 구경시켜 주겠다며 나선 아이였다. 윤새와 방을 나누어 쓰는 동거인이기도 했다. 입꼬리가 다정히 올라가면 오른쪽만 쏙 패이는 보조개가 귀여워 윤새는 조심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남몰래 그에게 정을 붙이고 있었다. 열여덟이라는 나이 때문에 난생 처음 얻은 동생처럼 느껴진 탓도 있다. 명원이 대답 없이 진열대에서 한 발짝 물러나기만 하는 윤새를 보며 다시 웃었다.
“저도 언니랑 같아요. 겉으로 보았을 때는 안경원 여급인데 사실상 하는 일은 없거든요. 경식 아저씨가 커서 안경원 차리고 싶은 게 아니면 방해만 되니까 돕지 마라고 하셨어요. 비밀결사가 얼굴 비추어서 좋을 거 하나 없다면서.”
명원은 윤새가 정리해 볼까 싶어 절반쯤 열어 놓은 진열대를 다시 밀어 닫으며 덧붙였다. 갈색 머리칼이 햇빛에 반사되어 금색으로 반짝였다. 윤새는 명원을 보자마자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유독 밝은 머리색에 대해 물었었다. 그는 물어볼 줄 알았다는 듯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일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정 일이 하고 싶으면 시력 측정은 어떠세요. 제가 언니 시력 먼저 봐 드릴까요? 재미가 쏠쏠해요.”
윤새는 자신의 오른쪽 눈에 나무 주걱을 가져다 대는 명원의 손을 부드럽게 밀어내었다. 명원은 아쉬운 얼굴로 주걱을 벽에 박힌 못에 다시 걸어 놓았다. 그때 웬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안경원 안으로 자연스럽게 총총 들어왔다. 명원은 제자리에 서서 눈만 끔벅이고 있는 윤새 대신 개를 쓰다듬고 안아 주었다.
“용맹이에요, 용맹이. 장터를 돌아다니던 앤데 강우진이 밥도 주고 목욕도 시켜 주거든요. 자, 용맹아. 새로 들어온 언니에게 인― 으우웁.”
용맹이는 망부석처럼 서 있는 윤새보다는 명원의 얼굴에서 무슨 맛이 나는지에 큰 관심이 있어 보였다. 명원은 자신의 얼굴을 잔뜩 핥아 놓고 다시 안경원을 나가 어디론가 달려가는 용맹이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윤새는 그런 그에게 조용히 안경닦개를 내밀었다.
“야, 최명원. 윤새 누나 그만 좀 건드려.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된 분한테 이 무슨 실례냐?”
저 멀리서 우진이 쌀 두 말이 실린 수레를 끌고 오고 있었다. 곱슬거리는 검정 머리칼이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의 곁에서는 방금 뛰쳐나갔던 용맹이가 꼬리를 흔들며 신나게 걸어오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우진의 다리를 보아 꽤나 멀리서부터 걸어온 듯했다. 윤새는 급히 밖으로 나와 수레를 뒤에서 밀었다.
“언니는 괜찮다는데 왜 강우진 네가 난리야.”
명원은 어느새 아까 윤새에게 보여 주던 살가운 미소는 지운 채 딱딱한 얼굴로 우진을 보며 대꾸했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묵직한 쌀 포대를 내리는 우진은 쌩 지나치고 윤새를 거들어 수레를 끌었다. 윤새는 우진이 조금이라도 덜 움직일 수 있도록 안경원과 최대한 가깝게 수레를 세웠다. 우진이 쌀 포대를 창고에 던져 놓고 나오며 명원에게 말했다.
“괜찮기는 무슨. 혼자 신나서 귀찮게 했으면서. 내가 우리 용맹이한테 다 들었다.”
“용맹이가?”
명원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용맹이는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그저 좋다고 달려가 발치에서 뒹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어찌 미소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진도 웃으며 마지막 쌀 포대를 수레에서 내렸다. 힘이 빠졌는지 휘청거리는 그를 윤새가 잡아 주었다. 십년감수한 우진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무겁다. 이렇게 무겁게 가져왔는데 두 주도 못 버티고 거덜나는 게 말이 됩니까?”
“자기가 제일 많이 먹으면서.”
명원이 덤덤하게 흘리듯 말했다. 우진이 억울한 눈빛으로 쏘아보았으나 명원은 미동도 없이 창고 문을 닫고 안경원으로 들어갔다. 윤새는 다소 불편한 마음으로 텅 비어 이리저리 흔들리는 수레를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었다. 어쩌면 경식은 이런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윤새에게 안경원에서 지내라고 권한 것일지도 몰랐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정을 진즉에 파악한 것이다. 잘못 걸린 걸까. 지금이라도 나가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일까. 그는 암울한 생각을 하며 바닥에서 뒹구는 용맹이를 끌어올리는 우진을 쳐다보았다.
"최명원 쟤는 나한테만 저래요."
우진이 툴툴거리며 안경원에 용맹이를 넣고 왔다. 안에 있는 명원이 들으라고 한 말이었겠으나 정작 명원은 용맹이의 애교를 구경하느라 바빴다. 우진이 몸을 숙여 수레 손잡이에 허리를 걸었다. 걸어왔던 방향으로 다시 수레를 끌고 가는 그를 보고 윤새가 급히 따라가 뒤에서 밀며 거들었다.
“또 뭐 가지러 가야 해?”
“수레 돌려주러요. 저 혼자서 갈 수 있어요. 들어가서 쉬세요.”
“같이 가자. 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마음 불편해서 그래.”
탈탈 굴러가는 수레 소리를 들으며 윤새는 사진관에서 쫓겨난 날을 떠올렸다. 그날도 이렇게 하늘은 티없이 맑았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끌고 있었다. 더위는 지금보다 훨씬 심했지만. 그러고 보니 경식과 진운이 보이지 않은 지 며칠 되었다. 윤새는 그 둘의 행방에 대해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었다. 명원 때문에 정말로 심통이 난 건지 묵묵히 앞장서 걸어가고 있는 우진은 평소보다 말수가 훨씬 적었다. 윤새는 이참에 필요한 정보를 캐 보기로 했다.
“여기 사람들도 다 내 능력을 알고 있지?”
우진의 어깨가 움찔 올라갔다 금방 내려갔다.
“네.”
“내가 월성회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네.”
“아저씨, 그러니까 사장님이랑은 얼마나 알고 지냈어?”
“글쎄요, 이제 삼 년 되었나.......”
“너는 바로 가입한다고 했겠구나.”
“네.......”
“이렇게 넙죽넙죽 다 대답해도 괜찮은 거야?”
“사장님께서 누나한테는 숨기지 말고 대답하고 싶은 만큼 대답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야 더 빨리 가까워지고 소중해진다면서.”
사장님이 그 말까지 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윤새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꿀떡 삼켰다.
“너무 속 보인다.”
“왜요, 나쁜 마음은 아니니까 괜찮잖아요. 저도 식구 늘어서 좋은데. 누나 오기 전까지는 제가 막내였거든요. 누나 절대 나가면 안 돼요.”
우진이 뒤를 돌아보고 이를 보이며 씨익 웃었다. 윤새는 달리 해 줄 말이 없어 하늘을 보는 척 시선을 피했다. 둘은 장터의 끝에 닿을 때까지 말없이 수레를 끌었다. 누군가 크게 부르는 소리에 윤새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우진아! 아이고야, 고생했다.”
“아주머니, 왜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거기 서 계세요.”
마음이 급해진 듯 빨라진 우진의 걸음에 윤새도 덩달아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억척스러운 인상의 여자가 주먹에 한가득 무언가를 쥐고 서 있었다. 옷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었고 손은 마디가 불거져 투박했지만 머리만큼은 윤기가 흐르고 반질반질했다. 밑으로 동그랗게 묶어서 머리가 똑 떨어지는 단발인지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장발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찌 되었든 마주치면 꽤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인상의 여자가 동그랗게 주먹을 쥔 채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둥그런 얼굴에 활짝 핀 미소는 둘이 가까워질수록 커져 반달 모양이 되었다. 윤새는 왜인지 낯간지러워 우진의 등 뒤로 은근슬쩍 얼굴을 숨겼다.
“이거 남겨 놓은 약과다. 명원이랑 영원이랑 나누어 먹어, 혼자 다 먹지 말고.”
여자가 동그랗게 쥐었던 주먹을 펼치자 떼깔 고운 약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구한 날 진열대에서 나오던 약과의 출처가 드디어 밝혀졌다. 뒤에 서서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는 윤새와 여자의 시선이 맞닿았다. 여자는 목을 쭉 늘리고 우진의 어깨 너머로 윤새를 살폈다.
“이건 못 보던 얼굴인데?”
“안경원 신참 누나예요. 저 이제 막내 아니에요.”
“네 나이가 제일 어린데 그래도 막내지, 이놈아. 이제 열여덟인 놈이 무슨.”
“아, 아니에요. 나이 순서가 아니라 들어온 순서로 정해야지요.”
"약과나 꽉 쥐고 있어. 떨굴라."
우진은 잔뜩 억울한 얼굴로 반박해 보았지만 별 수 없이 여자가 손에 쑤셔 넣는 약과를 받아들었다. 그는 윤새를 돌아보며 ‘고정희 선생님’이라고 작게 다급히 속삭였다. 여자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평민에 가까웠는데 제법 예의를 차린 호칭이었다. 정희가 우진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쪽은 몇 살이에요? 이름은 뭐고? 그쪽이란 말이 조금 딱딱해도 이해해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너 몇 살이냐는 건 조금 그렇잖아.”
“저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른이시니까.”
“그래? 나는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와서 너 너 들먹거리는 게 제일 싫었는데.”
“윤새라고 부르시면 돼요. 혹시 저는 어떻게.......”
“아주머니라 불러요.”
“예?”
“이제 아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돼. 우진이 저놈이랑 수레 끌고 오느라 고생했어요. 쌀 가격이 자꾸 오르니 걱정이야, 그렇죠? 그런데 우진아, 너는 왜 애가 키가 안 크니. 사장님이 쌀값 비싸다고 밥 줄였어?”
“저희 이제 가 볼게요. 수레 빌려 주셔서 감사해요. 약과도 잘 먹을게요. 안녕히 계세요!”
우진이 윤새의 등을 떠밀며 속사포로 외쳤다. 윤새도 그의 장단에 맞추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정희에게서 충분히 멀어지자 우진이 입을 열었다.
“시장 바로 뒷골목에 사는 분이세요. 남편분은 멀리 장사 나가시고요. 초면에 좀 과격하시기는 한데 좋은 분이에요. 저희가 쌀 사러 갈 때마다 수레 빌려 주시거든요. 아시겠지만 안경원에는 수레 둘 곳이 없어서.”
“약과를 명원이랑 영원이랑 나누어 먹으라고 하시던데.”
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에 쥔 약과의 개수를 세었다.
“맞아요, 그런데 저는 단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남겨요.”
“영원이가 누구야?”
“여섯 개. 딱이다.”
우진은 품에서 잘 개어진 흰 손수건을 꺼내 펼쳤다. 그 안에는 또 다른 흰 손수건이 고이 접혀 있었다. 그는 쭈그려 앉아 허벅다리 위에 손에 쥔 약과 여섯 개를 차곡차곡 올리고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감쌌다. 그리고 약과가 든 손수건을 다시 처음 펼친 손수건으로 감쌌다. 윤새는 대답을 기다리며 그 복잡한 과정을 쳐다보았다.
“영원 누나가 최명원 언니예요.”
우진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고민하더니 덧붙였다.
"최영원 동생이 최명원. 영원 명원.”
“이해했어.”
“아직 보신 적은 없을 거예요. 일주일 전에 미리 작전에 나가 있었.......”
우진이 합 소리를 내며 손바닥으로 입을 때리듯 막았다. 윤새는 자신도 모르게 바람 빠진 웃음을 픽 뱉었다.
“걱정하지 마. 그 정도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 알아내.”
우진은 눈에 띄게 풀이 죽은 채로 조용히 앞장서서 걸었다. 실수로 알아낼 정도의 정보를 줄 바에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말겠다는 결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윤새는 굳게 다물린 그의 입을 보고 낮게 웃었다.
“알아낼 생각도 없어, 정말이야.”
“.......”
“돕지도 못할지언정 발목 잡지는 않을게.”
우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의아한 얼굴로 함께 멈춘 윤새와 눈을 맞추며 그는 천천히 말했다.
“안경원에 남아 주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게는 큰 도움이에요. 그런 생각은 마세요.”
'이야, 넌 참 마음이 맑다.'
윤새는 그렇게 속으로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