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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Jan 09. 2021

미친 척하고 365일 동안 일기를 써보았다

과거의 오늘, 혹은 작년 이맘때 무엇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종종 그렇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아 땅굴까지 파고 깊이 우울해지는 날에도 그렇고,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낸 한 달을 보내면서도 '작년 이맘때에도 그랬나? 생각했었고. 수시로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돌아보기 좋아하는 인간이다.


5년째 똑같은 캘린더 앱을 사용하고 있기에 어떤 일을 했는지는 대략 알 수 있지만, 2019년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매일의 감정을 낱낱이 기록해보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면 좋겠다 싶었다. 새해 첫날이 반나절 정도 남은 1월 1일, 부랴부랴 대형서점으로 달려가 데일리로 쓸 수 있는 다이어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녀석을 골라왔다.


이렇게 생긴 다이어리입니다 (출처_라이브워크)


매일 하루의 끝에 2~3분을 들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정~말 귀찮고 힘든 일이었다. 초반에는 오늘 느꼈던 감정 위주로 정성 들여 작성하다가 점점 했던 일 위주로 나열하기 급급한 '완료 목록'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쓰기 싫은 날에는 '<쓰기 싫어>라도 쓰자'라고 다짐했었기에 구멍은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매일 나라는 사람의 기분을 체크하는 일도 병행했다. <정말 나쁨 ~ 정말 좋음>까지 기분을 5개의 레벨로 나누어 빨강, 노랑, 연두, 하늘, 파란색 색연필로 구분해 표시해 주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면 각각의 색상을 카운트해 결산하는 날을 가졌고, 지난달에 비해 어떻게 수치가 변동됐는지도 함께 체크해 봤다.


2019년 11월. 가장 나쁨과 가장 좋음이 없는 비교적 평탄했던 한 달이었다. 


평소 기분의 업다운이 심한 나이기에 호기심 반 치료(?) 목적 반으로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나에게 꽤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꾸준히 체크하다 보니 나를 기쁘게 해주는 행복 버튼은 무엇인지, 어떤 일을 겪어야 기분이 급격이 다운되는지가 패턴화 되어 보였다. 그 양상이 1년 내내 비슷하다 보니 나라는 인간을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다만 4분기에 다다를수록 '가장 나쁨'과 '가장 좋음'은 자취를 감추고 중간의 회색분자들이 점령하게 되었는데, 체크하는 행동에 무뎌진 건지 기준이 흔들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마지막 3개월은 지난달과 비교하는 게 크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비슷하게 측정된 부분이 살짝 아쉽기는 하다. (실제로 기분이 비슷하기도 했고)


글씨가 날아가고 내용도 대충인 거 보니 빨리 끝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내가 얻은 인사이트는 아이러니하게도... '일기는 쓰고 싶을 때 쓰는 게 좋겠다'였다. 평소 메모하고 기록하는 것을 참 좋아하고 열심인 나지만 하루도 빼지 않고 뭔가를 적어나간다는 건 기쁨이 의무가 되는 생각보다 큰 에너지 소모였다. 2021년 다이어리는 4분의 1로 압축된 콤팩트 한 친구로 준비한 이유다.


하지만 기분을 체크하는 작업에서는 큰 소득이 있었기에 올해는 365일이 한 번에 보이는 연간 달력에 기분을 체크해볼까 한다. 매달의 패턴을 한 번에 볼 수 있으니 주차별로 기분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새해가 열흘 정도 지난 지금은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의 색연필이 칠해지고 있다.



나 혼자만 조용하게 진행해 온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작은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5년 동안 매일 서로 다른 질문에 대답하는 문답 일기도 병행하고 있어서 일기에만 집중하지 못해 아쉽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지금 나이 때가 그리워지는 시간이 온다면 그때만큼은 진가를 발휘하는 일기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해에는 작게나마 무언가를 산출하고 싶은 분들, 가장 젊은 시절인 지금의 기록을 남겨보고 싶은 분들, 무엇보다 스스로를 단련하고 일기를 쓰는 습관을 만들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매일이 아니더라도, 길게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여유 있게 나의 하루를 기록해 보시기를 추천한다. 한 해가 끝날 즈음엔 작지만 큰 의미가 남을 테니.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글쓰기 모임

'쓰담'과 함께하는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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