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안의 진짜 빌런은 누구인가?
이른 아침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로 출근하다 보면 종종 새벽 비행기로 귀국하는 여행객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야간 비행에 지쳐 깊은 잠에 빠져 있거나, 커다란 캐리어를 최대한 몸 쪽으로 끌어당겨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가족들인데, 그 모습이 참 애처로울 때가 많았다.
유독 부모를 난처하게 하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에게 기대어 팔다리를 쭈욱 뻗대는 것은 기본, 엄마 아빠가 아무리 무서운 표정으로 “얌전히 있으라”고 해봤자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떼를 써댄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부모의 감정이 이입되면서 "저놈 자식을 그냥"하는 소리가 턱 아래까지 차 오른다. 하기사, 한창 집에서 자고 있었을 시간에 부모 손에 이끌려 답답한 만원 지하철에 앉아있자니 오죽 답답하겠는가? 한편으로 이해가 가면서도, 속으로는 "저런 걸 보면 우리 아이들은 참 순했구나." 하며 이미 다 커버린 아이들이 새삼 고맙고 뿌듯하다.
정말 그랬다. 일곱 살, 다섯 살이던 두 녀석을 데리고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던 그 무더운 여름에도, 아이들은 짜증 한 번 부리지 않고 엄마 아빠를 잘도 따라다녔다. 노선을 착각한 아빠의 실수로 습하고 무덥기 짝이 없는 도심 한복판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한 시간 넘도록 기다릴 때도, 아이들은 그저 얌전하기만 했다. (결국 소나기가 내려 온 가족이 흠뻑 젖고 나서야,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그저 착한 엄마를 닮아 우리 아이들이 순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반려견 하루를 데리고 산책을 나서다가 이웃집 어른들과 마주쳤다. "어쩌면 강아지가 이렇게 한 번 짖지도 않고 순해요?" 하면서 우리 하루를 쓰다듬는 두 분과 헤어져 걷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우리 하루는 강아지라서 와이프를 닮을 리가 없는데? 어째서 우리 집은 아들도, 딸도, 개도 순하고 착하기만 할까? (와이프도 순하고 착한데?)
주변에 빌런이 없으면 내가 그 빌런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하던가? 유일하게 이 집안에서 순하고 착하지 않았던 것은, 애들 버릇없이 키우면 안 된다며, 강아지는 새끼일 때부터 훈련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며 내 식구들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우리집의 군기반장, 바로 나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