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철 Aug 30. 2022

우울증 진단 이후

두려워하지 말 것

지난 3월, 우울증 진단을 받고(비록 경증이긴 하지만) 약을 처방받고 처방받은 약은 꾸준히 복용을 했다. 사실 내 문제는 한 가지 사건을 두고 계속해서 곱씹고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예측함으로 불안을 스스로 만든 것에 기인한 듯하다. MBTI 성격도 생각이 오질 나게 많은 INFJ이고(INFJ성향의 사람들은 우울증에 노출되기 쉽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로 인해 잠을 들기 어려웠으며, 멍한 상태로 일을 하려니 집중도가 떨어지고 다시 좌절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약을 복용하고 때마침 상사가 별로 터치도 하지 않고 당분간 괜찮았다. 문제는 계약 기간 만료가 다가오면서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름 여기저기 원서를 넣어봤지만 그나마 가능성 있는 곳은 2차 면접에서 탈락해서 꽤 상심하고 있었다. 어차피 9월 말까지 하기로 했으니 그냥 이쯤에서 그만할까 하는 생각이 다져지고 있던 때였다.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계기는 주변 동료였다. 나와 같이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그들은 종종 용기를 주었다. 희망은 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도 그들 덕에 그나마 버티며 내 할 일을 착실히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안정된 곳을 찾을 때까지 성급한 결론을 내지 않기로 했다.


내 주변에서 가장 힘든 건 여자 친구였을 것이다. 주말 내내 그녀와 만약 퇴직하게 되면 같이 여행 가는 건 어떨까 이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때까지 그만하기로 나름 결정을 내린 터라 조그만 회사를 알아보던 중 선배와 상의할 게 있어 전화를 했다. 선배는 내 선택에 부정적이었다. 본인이 아는 '나'란 존재는 항상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건데 다시 커리어가 하향하는, 조급함에 선택하지 말라는 거였다. 


나도 심히 공감은 갔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같이 일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보라고 했다. 이전 직장은 첫 회사라 이를 첫사랑으로 정의한다면 나는 재입사를 하면 안 된다. 다만 퇴사하던 해인 2019년의 나와 2022년의 나는 엄연히 다르다. 오히려 더 성장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이전 직장에서는 비록 그들이 원한 그 이상의 성과는 내지 못했을지 몰라도 맡은 일은 주변 동료, 상사와 불협화음 없이 잘 해냈다. 다만 그분들이 단순히 친분 이상으로 나를 받아줄지는 미지수였다. 


최근 꿈에 이전 직장 동료들이 종종 나오는 걸 보니 나도 많이 그리워하는 거 같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내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일을 병행하며 이직하는 건 그리 쉽지 않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다시 책상에 앉아 취업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가장 걱정되었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고 최근 아침에 일어나면 우울한 감정부터 찾아온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일단 약의 도움이 최소한으로 필요하고 중독이 있는 건 아니며 잠을 잘 자야 한다고 했다. 수면 질이 좋지 못하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우울한 감정이 다시 찾아오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강도를 줄이기 때문에 부작용도 없으니 매주 찾아와서 경과를 보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약을 받아 들고 이제 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희망은 때론 고문이 되기도 하지만 단기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제공해준다. 난 이 점을 이용하고 싶었다. 그날 무거운 머리를 부여잡고 약을 먹고 오래간만에 깊은 수면을 취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그나마 좀 가볍고 몸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래도 우울한 감정은 잠시 찾아와 아침용 약을 챙겨 먹었다.


조던 피터슨 교수가 <인생의 12가지 법칙>에서 언급한 글귀가 생각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을 끝까지 먹지 않는다. 오히려 반려 동물은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말이다. 자신을 돌봐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라는 말이다. 


오늘 9시까지 야근을 했다. 예전 같으면 4시부터 몸이 지치기 시작하여 믹스 커피로 남아있는 퇴근시간을 연명하곤 했는데, 해야 할 일은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완벽해지지 않기로 했다. 80% 완성되었다면 나머지는 비록 질타가 있을지언정 개의치 않고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내 일에 대해 사사건건 지적을 한다면 현황을 정리해서 매주 보고하기로 했다. 때론 정면 돌파가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그리고 힘들어도 운동을 하기로 했다. 나 같이 생각이 많은 사람은 운동이 필수다. 힘들다고 집에 홀로 시간을 가지면 휴식이 아니라 더 깊고 어두운 생각 동굴로 빠져들기 쉽기 때문이다. 

30분, 느린 속도라도 어제보다 더 나아갔으면 그걸로 된 거다
약은 꾸준히 먹어야 한다

꾸준히 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정신적 성숙을 위해 명상도 꾸준히 해야 한다. 비록 운동을 10 분하고, 명상을 1분만 하더라도 정해진 루틴을 빼먹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양질 전환의 법칙은 비단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눈을 굴리듯 사소한 거라도 빼먹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계약 만료가 다가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