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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Aug 25. 2022

계약 만료가 다가온다

조직의 결정에 따른다


과기정통부에서 근무한 지 1년 하고도 4개월째. 이제 5개월 차가 되면 계약이 종료된다. 이전에 행안부에서 받아놓은 자리 연장은 승인되었다고 언급했었다. 이제 남은 건 해당 업무를 하는 사람에 대한 연장 여부이다. 그들에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인사체계지만 일반적이진 않다. 정부 조직이 사람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법과 행정 시스템으로 동작하고 있으니 그러려니 한다.


어제 과장님이 단둘이 면담을 요청하셨고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갈지 대충 감이 와서 나름 준비는 하고 있었다. 첫 이야기부터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그랬다. 성격 이야기와 하는 행동, 보고 과정에 대해 아쉬운 점들을 말씀하셨다. 그러려니 했다. 이윽고 딜이 훅 들어온다.

지금 계약 공고문에 있는 내용 중에 2가지 사항은 업무가 사라졌고 본인 요구 수준에 평소 미치지 못하였으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약. 만약 연장하고 싶다고 하면 난 더 많은 일을 시킬 예정이다. 만약 하겠다면 지금같이 해서는 안 된다고.


솔직히 난 어이가 없었다. 일이 우선인 분이다. 난 계약 공고문에 있는 직무를 다 수행했고 사고를 친 건 없었다. 더 많은 일을 주는 것은 개인 역량 향상 측면에서 도전해 볼 만한 일이지만 이건 강요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계약직인데 그렇다고 연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2년도 못할 거고 최대해봤자 앞으로 3년 더 할 수 있다. 그 기간까지 배려를 해주시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못할 거 같으면 그만두라는 말로 들렸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같이 일을 더 하고 싶은데(그렇지 않더라도) 그래줄 수 있느냐. 일이 늘어가는 건 이후에 차차해도 되지 않나.

1년 남짓한 공직 사회 첫 입문자인 내가 기존 공무원을 능가하는 성과를 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니 계속 하루하루가 걸리 적 거린다. 마치 신발에 별거 아닌 돌이 들어가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나중에 보면 돌이 왔다 갔다 하며 살갗이 다 헤지듯 별거 아닌 게 아닌 게 되어버렸다.


환영받지도 못했고(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런 인맥도 없는 상태에서 홀로 물어가며 어찌어찌 일들을 해냈다. 그 와중에 도와주신 고마운 동료가 있었기에 나름 버티며 지금껏 해왔다. 내가 바란 건 효율성인데 말로는 효율성을 외치면서 절차, 근거에 결국 아무것도 할 게 없던 적이 많다. 그렇게 하나씩 무기력이 쌓여갔고 작은 의욕에 불을 붙이려는 올해 초 모든 게 망가져버렸다.

더 이상 직무를 붙잡는 게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당장 내일 수입과 언제 이루어질지 모를 이직이 발목을 잡는다. 무엇보다 여자친구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렇다고 이거 하나 때문에 삶을 망가뜨리고 싶진 않다. 붙들고 있는다고 해결이 되는 건 없다. 어차피 될 일은 될 거고 안될 일은 안되는 거다. 무엇보다 진지하게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게 나을듯싶다.


하루 종일 뭘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점심도 건너뛰었다가 저녁에 여자친구를 만나 굴 국밥 한 그릇 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뜨끈한 국밥으로 속을 채우니 마음이 좀 괜찮아졌다. 그러면서 툭툭 가슴을 치는 생각, 패배자라는 외침이 자꾸 들려 그 소리를 멀리하느라 대화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여자친구도 말이 없었고 집에 내려주기 직전, 내게 말을 했다.


'오빠 마음 가는 대로 해'


순간 울컥했지만 차마 내색할 수 없었다. 그러다 표정이 이상했는지 '왜 째려보냐'한다. 난 째려보는 게 아니라고 했다. 얼마 전 여자친구가 코로나에 걸려 지금까지 잔기침을 해대는데 잘 지켜주지도 못하고 마음이 너무 혼란스럽다. 인생은 길흉화복이 반복된다는데 길한 일이 언제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게도 좋은 날이 올까. 밤이 두렵다. 아침이면 모든 게 끝나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또다시 1년을 쉬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지난 1년 공백 기간이 후회된다는 건 아니다. 그 기간 동안 내적 평화를 얻었었다. 그래서 지금 자리까지 있었던 거고. 다만 이번에는 그리 오래 갖고 싶진 않다. 완벽한 직장을 찾을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성장할 수 있고 서로 믿어주는 그런 동료들과 같이 근무하고 싶다. 아직 대책은 없지만 마음이라도 추스려야겠다. 


그래야 내일 또 살아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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