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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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세요? 저는 출근길에 차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생을 끝마쳐야 해서라던가 하는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요. 그냥 그래도 될 것 같았습니다. 한 번 그래 보자 꽃이 속닥거렸어요. 안심하세요, 다행스럽게도 실패했습니다. 그것도 대실패예요. 어디 하나 다치지조차 않았거든요. 화가 잔뜩 난 운전자로부터 욕지거리를 좀 듣고 말았지요, 뭐. 그치만 솔직히 말하자면 어쩐지 머리가 맑아지는 게 썩 괜찮은 기분이었어요. 차도에 덩그러니 놓여 웃는 사람을 보면 다들 깜짝 놀라시려나요? 그치만 웃음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쓰레기더미에서 생을 우연히 주운 것처럼 지내면서. 그래 놓고, 사실 차가 다가올 적에 너무 무서웠거든요. 뒤돌아 도망치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어요. 후회가 울컥대며 차오르고 숨이 쉬어지지 않고… 차가 제 때 멈추지 않았더라면, 아, 끔찍해요. 그 다정한 운전자가 창을 열고 소리를 지르는데 들리지 않고, 창백해진 왼쪽 뺨 위로 눈물이 굴러가는 걸 느꼈습니다. 내 뜨거운 생명이 새어나온 듯해 쉽사리 닦아내지 못했어요.
26년, 죽음과 어깨동무를 하고 지냈습니다. 매일같이 회사를 다녀와 휴대폰을 보다가 잠에 들어서요. 주말이면 느즈막이 일어나 카페를 가고, 밤에는 사람들과 찐득한 숨을 나눠 쉬며 술을 들이켜거나, 가끔 기분전환 겸 짧게 여행을 떠나서. 내일의 윤곽이 어제와 쌍둥이처럼 닮아 있고, 다음 주와도 구분할 수가 없어서요. 낯익은 목소리가 관자놀이 언저리에서 속닥거립니다. 이대로 끝인 거야. 이런 날들만이 남은 거야. 끝. 더 없어. 더 이상은.
저는 원래도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아요.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눈이 멀어버린 하루들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걸 견뎌야 하는 지 납득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말이에요. 때로는 이렇게나 이해할 수 없어 더욱 애틋하고 중독적인 세상인 걸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말이에요, 완벽히 이해한 대상에게 사랑이란 말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 지배나 초월에 가깝지 않아요? 도무지 애틋한 마음 같은 건 가질 수가 없어요. 아니, 애초에 온전히 이해한 무언가를 감정을 가진 채 대하는 게—그래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러고도 공포에 머리를 쥐어뜯지 않을 수가 있어요? 나는 상상만 해도 몸이 떨려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억울한 건요, 엄숙하고 차가운 벽 앞에 몸이 덜덜 떨리는 건. 이건 명백히 사랑일 겁니다. 이상하게 수줍은 맘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나는 죽기 싫습니다.
아니, 나는 살고 싶습니다. 사랑스러운 게 너무 많아서- 나는 세상이 좋아요. 어쩐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살랑대는 것도, 하루가 다르게 무언가 발표되어 불안이 해소되는 것도, 비가 내리는 아침마다 심술궂은 표정으로 오고가는 사람들도……. 그저 멍하니 보게 돼요. 좀 웃기죠, 하루가 다르다는 말을 쓰다니. 내일이 오늘에 의해 용서받고 해방되는 것을 달리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어제는 비가 내렸습니다. 눅눅한 하늘로부터 엄청난 양의 물이 떨어졌어요. 나는 창을 열고 시간에게 빼앗길 모든 것들을 조용히 봤습니다. 아름답고 두려워요. 아름다워 두렵지요. 이건 어쩌면 잔디 사이서 고개를 내민 꽃이 그렇고, 옆집의 강아지나 어제 초 위에서 일렁이던 불꽃이 그렇기도 하구요…
또 우리네가 그래요.
인간은 과정에 목을 매달도록 설계된 겁니다. 그뿐이에요. 그렇지 않다면야 목숨을 부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과만이 중요하다면 그냥 차에 뛰어들면 됩니다. 아, 오늘처럼 좋은 운전자를 만날 수도 있으니 기차가 낫겠어요. 그러면야 남들보다 더 빠르고 깔끔하게 결과를 낼 수 있지 않겠어요? 지름길을 타고 곧바로 죽음으로요. 하하, 무섭네요.
일을 그만두기로 했어요.
아무래도 오늘 살아난 구출당한 나에게 좀더 다정하게 대해주려구요. 어제와 최대한으로 다른, 예상할 수 없는 순간들을 선물하려 합니다. 포장을 뜯어보면 지독하게 더럽고 끔찍하거나, 푹신푹신하고 나른하거나, 아니면 아찔한 냄새가 나겠죠. 엉망진창으로. 나는 그걸 받아들고 웃음을 참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음 편지는 어디서 보내게 될지 모르겠네요.
이야기로 나눴으면 더 좋았을 걸.
2018.06.20
공항에서
선생님께 전달을. 부탁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