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말아요
12
진실 30.
부당함이야말로 삶의 합리다. 너의 계획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게 조롱하고 짓밟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이란 곳이다.
암만 그래도 대체 어떻게.
응급실로 이송되는 와중에도 나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송주의 맥박은 점점 가늘고 빨라졌고, 피부는 조금씩 차가워졌어요. 나의 숨도 덩달아 점점 가늘어졌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전부 내 탓이다. 보란 듯이 고난을 도발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바람에,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부당함을 받아들이라고? 그런 게 대체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야. 말 그대로, 부당하잖아. 부당한 거야. 이치에 맞지 않는 거잖아. 이런 식이면 대체 무얼 믿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거야. 인간이 믿고 디딜 곳 없이는 숨쉬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 그러면서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정말 악취미야. 아, 정말로 또 내 탓이다. 자꾸만 가벼운 듯이 죽음이란 걸 입에 올려대서. 죽음이란 게 마치 달콤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지껄여대서. 절대 그런 게 아니야. 목숨이란 건 절대 예술의 도마 위에 올릴 만한 게 아니다. 또 술자리에서 시뻘개진 얼굴로 언급할 정도로 텅 빈 단어도 아냐.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공포 뿐이야. 죽음 앞에서 그저 한없이 두려워하고 그걸 한없이 미워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죽지 말아. 괜찮아, 송주야. 죽지 말아…….
나는 하염없이 흐려지는 시야를 다잡으며 바이탈 신호를 바라봤습니다. 가녀린 맥박이 뛰어오를 때마다 노란 선이 같이 팔딱거렸습니다. 나는 그 노란 선을 응원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만두지 마라. 그만두지 마. 멈추지 말고 위아래로 흔들려야 해. 지그재그로, 저 높이까지 올랐다가 저 아래까지 떨어져야 해. 그러고는 또 오를 거니까. 멈추지 말고. 멈추면 직선이 된다. 멈추면 아무것도 아냐. 직선이 되면 죽어.
직선이 되면 죽어.
죽지 마. 죽지 말아, 송주야.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내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이송되는 동안 송주의 맥박은 여전히 안쪽에 남은 힘으로 세차게 위아래로 흔들렸습니다.
*
그것이 벌써 한 달 전의 일입니다. 송주는 결국 직선이 되었습니다. 영원히. 과출혈로 인한 쇼크. 병원에 도착하고 응급 수술실로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운전자는 당시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는 나를 마주쳤을 때 콧물을 질질 흘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가 너무 급한 업무가 주말까지 이어져서……. 전날부터 쉬지도 못하고 계속 연락 확인하면서 이리저리 오갔거든요……. 그게, 오른쪽을 못 보고 우회전을…….”
그게 정말이든 뭐든간에 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그 사람도 그냥 불쌍하다고 생각되었어요. 진짜 진실은, 송주가 더이상 없다는 것. 나를 한없이 끌어당겨 주던 나의 송주가, 내가 뛰어나오려고 하는 순간 사라졌다는 것. 생명은 가냘프다는 것. 우린 언제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 이제서야 함께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이미 송주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지구에는 불쌍한 생명이 딱 70억 정도 있는데, 그 중 홀로 고고하고 영롱하게, 파릇파릇하게 불타오르던 송주란 불꽃. 그들 모두를 사랑하던 그 꽃은 꺾이고 말았습니다.
장례식에서 나는 송주의 부모님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장기 어딘가가 떨어져나간 것처럼 숨이 넘어갈 듯 소리를 지르는 두 분 앞에서 함부로 슬픈 내색을 표할 수도 없었어요. 나는 그저 두 분 옆에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내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그저 가족과 함께 살았다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어떤 곳에서 봐도 송주의 죽음은 내 책임이다……. 하지만 어머님은 첫째 날 밤 울다 지쳐 잠에 드시더니 깨어나서 내 손을 잡고 한 시간을 가까이 만지작거렸습니다. 나는 앞으로 나의 삶에 한 명분의 역할이 더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날은 병운이 왔습니다. 면도도 하고 그 지저분한 머리도 자르고. 우리는 벌써 두 번째 장례식을 함께하고 있었어요. 병운은 나와 슬픈 눈망울을 한 번 나눈 뒤, 송주의 부모님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키가 큰 남자가 시뻘겋게 부은 눈을 하고 천천히 들어왔습니다. 찬우 씨는 나를 알아보고는 곧바로 끅끅대며 눈물을 참았어요. 나는 천천히 다가가 그 남자를 꼭 안았습니다. 한참을 안고 서 있었어요. 몸의 떨림을 느끼면서 나는 찬우 씨의 방에 대해 떠올렸습니다. 혼자가 되는 껌껌한 방. 그 곳으로 돌아가도 찬우 씨는 괜찮은 걸까. 아마도 송주가 끌어올리고 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세상에 또 어떤 벽이 세워졌는지는 본인만이 알겠지요.
병운과 나는 마주보고 앉아 말없이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던 중 병운의 입에서 잠긴 듯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좀 괜찮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뭐가 괜찮냐는 건지도 우선은 몰랐지만, 그게 뭐가 되었든 괜찮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린 언제나 괜찮지 않았어요. 그건 병운도 마찬가집니다. 괜찮지 않은 사람들끼리, 서로가 괜찮은지를 묻고 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의 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을 대로 생각해버리는 더러운 습관으로. 나는 괜찮지 않다고 말한 뒤, 한참을 그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여전히 송주만 떠올리면 온몸이 찢어지는 것처럼 굳고 숨이 턱 막힙니다. 하지만 나는 매일같이 송주를 떠올립니다. 반짝이고 신비로운 눈망울을 가진 송주.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말했지만 사실 모두를 사랑했던 송주. 나도 자살을 이야기하고, 다빈 씨도 병운도 모두 죽음을 꿈꾸었는데. 내 주변은 온통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죽음투성이에 슬픔만이 가득했는데. 그 사이에서 끝끝내 죽음 한 번 다짐하지 않은 송주만이 죽어버린 것에 대해. 끝까지 모두를 꺼내려고 애를 쓰던 송주만이 저 아래 묻혀버린 것에 대해. 세상이란 것의 비협조성과 거기서 풍겨오는 무자비한 불합리의 냄새에 대해. 나는 여전히 세상을 미치도록 미워하고, 나를 미워하고, 또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미워해서, 너무도 미워해서 하루종일 그들만을 생각해요. 알다시피 사랑해본 적 없는 것들은 미워할 수 없습니다.
이송 중 봤던 송주의 그 바이탈 사인이 한 달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갈 곳을 잃은 듯 오가던 맥박의 사인. 나는 그것을 나의 인생에 얹기로 생각하였습니다. 원래도 나는 이리저리 진동하는 사람이었다만, 이제는 두 명분의 맥박이 나의 경로에 필요해진 셈이에요. 더 크게 흔들려야 합니다. 더 짜릿하게 기뻤다가 아찔하게 떨어져야 해요. 나는 한참을 더 크게 돌아가는 방법을 생각했고, 우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한 번 본 적 있는 지루한 레파토리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아무튼 그것이 나에겐 맞다고 여겨졌습니다.
나는 죽음이 뭔지도 잘 모르고, 그래서 그걸 한없이 미워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송주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존재라는 건 마냥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니까요. 송주가 내게 넘겨준 생각들을, 내가 송주에게 받은 생명을 여기 안쪽에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야말로 정답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송주와 나는 여전히 함께 사는 겁니다. 나는 집을 나서면서 송주의 발걸음을 걷고, 여전히 주말에는 한강변을 달리구요, 또 닥치는 대로 사랑이란 걸 쏟아내 보기로 마음도 먹었습니다. 나는 그저 좀더 힘차고 신나게 살아가야만 하는 겁니다. 그것이 송주와 함께하는 나의 의무이고, 또 그 사랑스런 내 동생을 죽이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퇴사는 내게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박 부장님께 미안한 것만 딱 제외하면요.
다빈 씨와는 야채곱창을 먹으며 소주를 한 잔 마셨습니다. 마지막 편지를 받은 뒤 벌써 두 번째 만남입니다.
“그러니까, 내일 모레 가신다구요?”
“네, 그렇게 됐네요.”
“음, 한동안은 이제 못 뵙겠네요.”
금세 표정이 심각해지는 이 남자가 나는 웃겨 소주를 들이켰습니다.
“다빈 씨는 어떻게 할 거예요? 이제 졸업도 하는데.”
“글쎄요. 저는 건축을 해야겠죠.”
“오, 바로 회사로 가는 거예요?”
“아뇨, 뭘 건축할지는 좀 고민해봐야죠. 선생님 때문에라도 저도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어요.”
“영광이네요.”
“하하,”
다빈 씨는 아이처럼 웃었습니다. 우리는 처음 만날 때보다 확실히 편해진 것 같아요.
“선생님의 변화를 직접 목격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 또 이렇게 떠나시는 것까지. 확실히 이젠 제가 알던 사람처럼 느껴져요.”
“다빈 씨의 역할이 크죠. 늘 고마워요.”
다빈 씨는 그 말을 듣고는 소주를 곧바로 들이켰습니다. 얼굴이 금세 빨개졌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저는 선생님이 어디에 있든 또 그게 언제든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약간의 냉소를 띠며 그를 쳐다봤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파하하 하고 웃으며 고마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고는 조용히 중얼중얼 말했어요.
“믿어요.”
다빈 씨가 들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인천공항의 삼십팔 번 탑승구 앞에 앉아 있습니다. 이제는 송주와 함께 살던 염리동의 대흥로21길 24번지도 없고, 몇 년간을 열심히 다니던 회사도 없구요. 어디를 더 헤매고 언제쯤 돌아올지에 대한 계획도 없어요. 그저 나는 오늘 브라질로 갑니다. 거기서 또 어떤 이상한 일이 나를 휩쓸고 지나갈지, 또 어떤 이야기가 나를 집어삼키려고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휘청거려 볼 생각입니다. 본격적으로 모든 것 사이에서 진동해볼 생각이에요. 한 나라의 생소한 문화와 나의 습관 사이를, 또 어느 술집에서 만날 이름모를 한 남자의 유혹과 안전 사이를, 송주의 생명과 나의 생명 사이를, 귀국과 방랑 사이의 이 가냘픈 마음을 마음껏 진동할 예정입니다. 방황이 끝나면 나라는 연약한 인간도 끝날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이름모를 나라, 이름모를 도시, 이름모를 거리, 이름모를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런 곳에서 나의 이름만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거예요. 이 뒤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야기에 개입하여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린 겁니다. 나는 겁내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게 매력적이거나 강렬한 이야기라면, 참지 못하고 거기에 뛰어들 거예요. 이것이 능동인지 수동인지는 더이상 모르겠습니다. 뒤죽박죽 섞여서 알 수 없는 기괴한 형상의 세상이란 게 눈 앞에 있을 뿐입니다. 부당한 것들은 언제나 나를 좌절하게 해요.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걸 할 겁니다. 고를 수 있는 걸 고를 거예요. 그 선택이 또다른 거대한 수동을 낳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게 내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제 아무래도 좋습니다. 나는 지난번에 돌아왔다고 말했죠. 작별은 언제나 시작과 연결됩니다. 둘은 서로를 먹고 사는 관계니까요. 세상 모든 것들이 서로를 먹고 살아요. 인간에게는 적어도 상대적인 것만 남아 있습니다. 나는 지금 그것들을 전부 삼켜버릴 생각에 가슴이 콩콩 뛰어요. 배가 몹시 고픕니다. 세상을 먹어치우는, 혹은 이야기에게 집어삼켜지는 경로를 이렇게 남겨 두겠습니다. 선생님도 이런 나를 보면 꼭 웃고 계실 걸로 생각돼요. 그렇죠? 나는 송주만이 아니라, 선생님의 맥박도 얹어서 살아가고 있는 거죠? 아니, 세상의 죽어버린 모든 인간을 여기 얹어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거죠? 인간은 개인이 아니라 그 대뇌에 누적되는 거죠?
이 열두 통의 편지가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전부 읽으신다면 나를 애틋하고 장하고 부럽게 보실 겁니다. 나도 선생님을 똑같이 보고 있어요. 나는 그저 욕심 없이, 친절하고 싶은 마음에 이 편지들을 남깁니다. 부디 나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세요.
아, 이제 승무원이 나를 부릅니다.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에요.
흥분을 참을 수가 없어요.
이 전투에서 나를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게 이기는 방향이든, 지는 방향이든.
뭐가 되었든 나는 행운입니다. 아니, 그만큼 또 불행이에요.
이제부터 나는 언제나 취해 있습니다.
안녕.
그리고 안녕.
이야기로 나눴으면 더 좋았을 걸.
2025.06.20
공항에서
선생님께 전달을. 부탁할게.
병운아. 우리 살자. 우리 죽지 말자. 싸워서 이기자.
이기든 지든 뭐라도 하자.
직선이 되면 죽어.
불행 곁에서 사는 사람은 없어.
불행 가까이 진동하는 사람만이 있다.
나는 죽지 않을거야.
모두의 맥박을 얹어서, 최대한으로 일렁이는 높은 파도를 만들자. 엄청나게 돌아가는 구불구불한 길을 개척해내자. 굳이 그러자. 비효율적으로, 그렇게 살자. 그렇게, 누구보다 길게,
살자.
죽지 말아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