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해답을 찾아내기까지>- 페르소나 3

by 번뇌즉보리


게임,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살면서 가장 인상 깊게 즐긴 것 앞에다가 '인생'이라는 접두사를 흔히 붙이곤 합니다. 인생 영화, 인생 앨범 같은 식으로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있어 '인생 게임'이란 어떤 것인가요? 오락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늦든 빠르든 제법 신중한 사고를 거쳐 이뤄질 것 같습니다.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는 대부분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플레이한 어떤 게임이건 최소한의 재미는 보장되어 있었겠죠. 그러니 인생 게임을 고르자고 하면 일차원적인 쾌락보다도 좀 더 깊은 측면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이를테면 플레이 속 특별한 순간이나 게임과 얽힌 추억일 수도 있고, 인생을 관통할 만큼의 사유나 계기를 게임을 통해 받은 경험 등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 경우는 단순한 전자오락의 성격을 넘어서 좀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또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게임의 조건입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배틀그라운드나 리그 오브 레전드도 물론 재밌고 즐겁습니다만, 그 게임들은 끄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느끼곤 합니다. 뛰어난 플레이를 펼친 여운도 채 몇 시간을 가지 않더라고요. 제 서툰 표현으로 이야기하자면 휘발적 재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거기서 비롯되는 도파민 등이 게임의 가장 큰 본질 중 하나이며 무수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운이 오래 남는 게임이 그렇지 않은 게임들보다 더 낫다는 소리를 하고 싶다거나, 혹은 휘발적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이 좋지 못하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닙니다. 사람과 성향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것이 게임의 우열을 나눌 수 있는 잣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저처럼 잡다한 생각이 많은 사람은 거기에 걸맞도록 사유의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게임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겠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저의 인생 게임, 즉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게임을 꼽자면 <페르소나 3>입니다.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좋아하고 늘 깊게 고찰하고자 하는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게 된 데에는 페르소나 3의 영향이 정말 컸습니다. 1996년, ATLUS 창사 10주년을 기념하며 출시된 <여신이문록 페르소나>는 시리즈화되어 넘버링 발매를 이어갔습니다. 1999년과 2000년에 출시한 <페르소나 2>를 지나 페르소나 시리즈의 10주년ATLUS 창사 20주년을 맞이하는 2006년, 페르소나 3는 세상에 나왔습니다. 여러모로 10이라는 숫자와 참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게임입니다. 제가 이 게임을 접한 건 2015년이었으니, 이 게임을 리뷰하는 이 순간도 첫 만남으로부터 10년이네요. 그리고 제가 리뷰하게 된 10번째 작품입니다. 이런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열 번째 리뷰 작품을 무엇으로 할지 제법 고민을 하고 있었으며, 한 달 전부터 페르소나 3를 다루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사소한 일을 기념할 줄 알면 작게나마 동기부여가 되는 법이니까요.


하루하루 흘러가는 게임 속 달력


페르소나 3는 제 인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도 '인생 게임'이지만,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주인공을 조작하여 그의 삶을 살아가는 형태의 플레이 방식을 취하고 있는, 그야말로 인생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공부를 할지 친구를 만날지, 혹은 다른 것들을 할지 정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몫입니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하루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어떤 행동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꼭 복잡하게 접근할 필요도 없거니와 모든 플레이어가 머리를 싸맨 채 하는 게임은 아닙니다만, 이 게임의 매력에 빠진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주어진 시간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작게나마 고민해 봤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한정되어 있는 건 하루 24시간만이 아닙니다. 크게 보면 인생 자체가 한정되어 있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고, 세상 모든 일에 끝이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에도 필연적으로 끝이 있으니까요. ATLUS는 페르소나 3 속 세계를 통해 이 부분을 짚어냈습니다. 거기서 나아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그들 나름의 해답을 전했습니다. 그 치열하고 애절한 마음의 호소가 수많은 게이머들의 심금을 울렸기에 페르소나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시리즈가 될 수 있었던 것이겠죠. 그렇다면 늘 하던 것처럼 페르소나 3의 내적 이야기를 하기 전에 외적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도산 위기의 ATLUS, 사생결단의 각오



진 여신전생(좌), 진 여신전생 데빌 서머너(우)


오늘날에는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다음으로 명작 JRPG 시리즈를 꼽으라면 쉽게 페르소나 시리즈가 거론되곤 합니다. 90년대에도 <진 여신전생> 본가 시리즈와 <데빌 서머너> 시리즈의 흥행으로 '3대 JRPG'에 당당히 꼽혔으니 ATLUS는 이 장르에 있어 기라성 같은 회사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광의 시기들이 무색하게도 2000년대 초 ATLUS는 회사의 방향성을 걱정하고, 나아가 도산 직전까지 내몰리며 큰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게임을 소비하는 고객 대상층이 점점 다양해짐에 따라 하드코어한 난이도와 매니악한 성향을 추구하던 여신전생 시리즈는 신규 팬의 유입이 어려운, 요즘 말로 팬덤이 고여가는 시리즈가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게임 그래픽과 연출이 발달하며 3D 폴리곤을 위시로 비주얼적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게임 산업의 흐름 속에서, 도트 그래픽 바탕의 1인칭 던전 크롤러 시스템을 고수하는 여신전생 시리즈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희망찬 2000년대에 걸맞게 점점 밝고 가벼워지는 시대 분위기와 상반되도록 어둡고 음침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 또한 당시로서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지금에서야 이것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확립되고 어마어마한 팬덤을 거느리게 되었지만, 이 시기에는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세기말의 음울한 기조에서 벗어나 도래한 새천년 속에서 ATLUS와 여신전생 시리즈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어떻게 시리즈를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깊었습니다. 진 여신전생 1편과 2편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물이며, 2편에서 주인공이 기독교의 유일신 야훼(YHVH)를 살해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섬기는 신을 처단하였으니 더 다룰 내용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ATLUS는 <진 여신전생 3> 기획에 있어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예 본가 진 여신전생 시리즈를 더 만들지 않고 <진 여신전생 if>나 <진 여신전생 데빌 서머너> 시리즈를 앞세운 외전작들을 계속 발매해 나가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고자 했을 정도입니다. 90년대 중후반부터 어찌어찌 시작된 진 여신전생 3편의 기획 회의는 온갖 내용이 나오고, 또 엎어졌습니다. 그러는 와중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세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주요 제작진, 오카다 코지 프로듀서와 마스코 츠카사 작곡가가 ATLUS를 떠났습니다. 남은 하나의 기둥인 원화가 카네코 카즈마는 건재했지만 상황이 나쁜 건 여전했습니다.


결국 큰 결단 끝에 발매된 <진 여신전생 3 녹턴>은 기존 시리즈의 분위기를 크게 쇄신하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우선 제작진에 <데빌 서머너 소울 해커즈>를 훌륭하게 이끌었던 디렉터 하시노 카츠라, 아트의 소에지마 시게노리, 음악의 메구로 쇼지가 다시 합을 맞췄습니다. 컴퓨터를 통한 악마 소환이라는 SF적 요소는 거의 사라졌으며,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도쿄는 완전히 황폐화되어 그 형체를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인간은 없고 오직 악마와 사념체만이 바글거리는 세계, 주인공마저 악마라는 파격적인 설정, 카네코 카즈마의 아트워크를 바탕으로 구현된 차갑고 무기질적인 3D 그래픽 등 매니악한 요소가 가득한 게임이었습니다.


시스템적 측면에서도 이후 ATLUS의 상징이 되는 프레스 턴 시스템을 처음 도입하여 턴제 전투 시스템의 긍정적인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물론 시리즈가 본래 갖고 있던 강점이었던 다크 판타지의 느낌, 개성 넘치는 악마들과 그 상호작용 등의 요소는 더욱 발전시켰고요. 게임이 실패한다면 '이건 녹턴이라는 부제를 가진 외전작이다'라고 발뺌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ATLUS의 도전은 성공하여 다시금 JRPG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진 여신전생 3의 코어 팬덤이 아직도 두텁다는 걸 생각하면 이 게임의 아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진 여신전생 데빌 칠드런(좌), 디지털 데빌 사가 아바탈 튜너(우)


하지만 그 성공에도 불구하고 ATLUS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포켓몬을 벤치마킹하여 저연령층에게 어필하는 것으로 사업 확장을 하고자 했던 <진 여신전생 데빌 칠드런> 시리즈는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습니다.(한국 팬들에게는 <데블파이터>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익숙한 작품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녹턴 이후 발매된 <디지털 데빌 사가 아바탈 튜너>는 일본 내에서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러한 실패는 뼈가 시리도록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ATLUS는 진 여신전생 3보다도 많은 개발비와 노력을 들여 개발했던 아바탈 튜너가 실패함에 따라 개발 인력을 축소하고 맙니다. 이러한 악재들이 쌓이고 쌓여 창사 20주년인 2006년을 앞둔 ATLUS는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여신이문록 페르소나와 그 후속작 페르소나 2


이때 ATLUS가 눈을 돌린 것은 페르소나 시리즈였습니다. 진 여신전생 if로부터 파생된 이 시리즈는 고교생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도시의 파괴, 아포칼립스 ATLUS 특유의 전개를 채택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ATLUS 특유의 섬뜩한 감성을 갖고 있는 게임이긴 했으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친구들과 난관을 헤쳐나가는 주브나일적 요소를 품고 있었죠. 때문에 잘만 하면 가볍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여 라이트한 유저층을 팬으로 유입시키며, 다양한 모에 요소로 서브컬처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ATLUS는 이 시리즈를 활용하여 회사의 사활을 건 게임을 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마저도 실패한다면 회사 문을 닫을 각오를 하고서 말입니다.


JRPG의 새 지평을 열다



도산을 코앞에 둔 채 개발한 페르소나 3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물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이런 악조건 속에서는 결과 또한 좋지 못하기 마련입니다만,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자신도 가늠하지 못한 힘이 솟아나는 경우가 있다고들 합니다. 이처럼 세상에 나온 페르소나 3는 JRPG라는 장르에 있어 신선한 충격이었고 새로운 바람이었습니다. ATLUS는 자신들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적절하게 가리는 방식으로 페르소나 3의 게임성을 최대한 끌어올렸습니다. 이것을 그래픽과 사운드, 시스템 세 가지 부분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타일리쉬하고 세련된 그래픽- '페르소나 느낌'의 시작


우선은 그래픽을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결국 게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그래픽이며, 캐릭터 바탕의 내러티브가 주요 흐름인 JRPG에 있어서는 특히나 매력적인 캐릭터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비주얼적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유저들의 가장 기초적인 허들을 넘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카네코 카즈마(좌), 소에지마 시게노리(우)


페르소나 3의 캐릭터 디자인을 포함하는 아트 디렉팅 전체를 총괄한 것은 소에지마 시게노리입니다. <진 여신전생 데빌 서머너>(1995) 시절부터 게임 제작에 참여해 온 디자이너인 소에지마 시게노리는 상사 카네코 카즈마의 뒤를 이어 ATLUS 게임의 비주얼을 책임지게 됐습니다. 그의 스승이자 상사 카네코 카즈마는 사진 속 생김새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굉장히 개성 강하고 이질적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2025년 현재까지도 사용되는 ATLUS 게임의 악마 디자인을 확립한 전설적인 일러스트레이터지만, 디자인에 대중성이 었었느냐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마니아를 만들고 코어 팬덤을 형성시킬 수 있는 독자적 세계관을 그려낼 수는 있었으나 그것이 라이트 유저들에게 어필될 만큼 좋은 접근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카네코 카즈마 본인이 미국 문화나 영화, 패션에 흥미가 깊었던 만큼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대중들의 센스와 맞닿아 있지는 않았던 것이죠. <데빌 서머너 소울 해커즈>의 선례를 바탕으로 캐릭터 게임적 면모를 강화하려 한 페르소나 3는 소에지마 시게노리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수많은 오타쿠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카네코 카즈마의 일러스트(좌), 소에지마 시게노리의 페르소나 3 캐릭터 디자인(우)


소에지마 시게노리는 카네코 카즈마 밑에서 일하며 솜씨를 갈고닦았습니다. 페르소나 3의 캐릭터 원화에서 카네코 카즈마의 채색 방법과 같은 무기질적이고 메탈릭한 느낌이 드는 이유도 바로 밑에서 배웠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후 소에지마는 <페르소나 4>를 거쳐 <페르소나 5>에서는 카네코의 색채가 완전히 빠진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아직 과도기적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건조한, 쉽게 풀이하자면 물 빠진 듯하고 생명력 옅은 이 그림이야말로 페르소나 3에 딱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후술하겠지만 게임 자체가 지니고 있는 미스테리어스하고 음울한 분위기 속에 캐릭터들이 잘 녹아들 수 있었던 건 절묘한 디자인을 해낸 소에지마의 공이 큽니다. 날렵한 선과 색채, 개성 있는 패션 등 기존 ATLUS의 캐릭터 디자인에다 독특한 머리카락 색이나 이목구비의 강조를 비롯한 서브컬처적 터치를 거친 페르소나 3의 캐릭터들은 수많은 팬들을 페르소나의 세계로 끌어들였습니다.



3D 폴리곤 그래픽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주인공의 상징색인 푸른색을 바탕으로 한 스타일리쉬한 UI 디자인은 당시로서는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무미건조한 스테이터스 창으로 대표되는 JRPG의 양식에서 벗어나 보는 맛이 있는 UI를 그려낸 것은 세월을 거쳐 <페르소나 5>에서 만개하여 UI만으로도 각종 찬사를 받아내기에 이르렀습니다.



3D 폴리곤 그래픽이 부족한 만큼 전투에서도 화려한 액션이나 스킬 연출 등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부분을 보완한 것은 인게임에서 소환수처럼 활용되는 페르소나의 다양성과 리볼버 탄창이 돌아가는 듯한 UI, 그리고 일러스트 컷신이었습니다. 적에게 치명적인 스킬을 사용할 때 확률적으로 '빠직' 하는 효과음과 함께 캐릭터의 눈을 클로즈업한 컷신이 표시되는데,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이 역시 제작비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전투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서브컬처 오타쿠들의 감성에 제대로 먹혀들었습니다. 이 연출은 이후 페르소나 시리즈의 시그니처가 되어 4편과 5편에서도 쭉쭉 이어지게 됩니다. 전투의 핵심인 총공격 시스템도 일러스트 컷신을 떼고 본다면 게임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가벼운 연출이지만, 만화적 컷 분배와 닮은 일러스트 컷신의 활용으로 유저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한편 부족한 부분을 가려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제작비를 비롯하여 각종 어려운 상황에 놓인 상태로 개발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점도 있습니다. 우선 게임 내에서 주인공 일행이 맞서는 정체불명의 적, 쉐도우들의 디자인이 대부분 팔레트 스왑이라는 것입니다. 게임 시간 상으로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특수한 개체를 제외하고는 다 같은 양식의 디자인 안에서 색깔만 바꾸고 있기 때문에, 페르소나 3의 후반부 전투가 지루해지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주인공이 사용하는 페르소나 역시 몇 개의 전용 디자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진 여신전생 3에서 활용되었던 3D 그래픽을 재사용했습니다. 물론 유입된 팬들은 이런 부분을 알 턱이 없으니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알고 본다면 당시 ATLUS의 위태롭고 절박한 상황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픽 부분의 가장 큰 단점은 색만 바꿔 가며 계속 같은 구조가 반복되는 메인 던전, 타르타로스일 것입니다. 페르소나 3가 명색이 RPG임에도 '던전 탐험이 제일 재미없는 게임', '수면제' 소리를 듣는 이유는 역시 팔레트 스왑만 하는 던전을 200층 넘게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름 다른 느낌을 내 보겠다고 구역을 나눠 배경 그래픽을 다르게 하긴 했지만, '쉐도우들을 쓰러뜨리거나 피하며 플로어 어딘가에 있는 계단을 찾아 다음 층으로 간다'는 단순 반복적 구조에 변함이 없었기에 이마저도 무색했습니다. 이 지루함에 대한 비판을 크게 의식해서 페르소나 4부터는 던전별 개성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역시나 페르소나 5에서 탐색하는 메인 던전인 팰리스는 뛰어난 시각적 요소와 퍼즐, 전투를 복합적으로 즐길 수 있는 완전체가 되었습니다.



기존의 틀을 깬 OST


https://youtu.be/XxNAwZ-A88w?si=L_v_dyz_T9CqabeF


페르소나 3의 오프닝, <Brun My Dread>입니다. 미니멀한 비트 위 얹히는 몽환적인 보컬이 인상적인 명곡입니다. 훗날 <페르소나 3 리로드>의 디렉터를 맡게 되는 코모리 요시히로가 학창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며 방에서 '혼자 조용히 싸울 결의를 다져나가는' 감정을 담아낸 이 오프닝은 페르소나 3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곡의 성공이 현재 ATLUS 게임의 오프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보컬 곡과 2D 애니메이션 사용이라는 전통은 이때부터 확립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물론 시기상으로는 디지털 데빌 사가 2가 먼저였습니다)


훗날 PSP로 이식된 페르소나 1이나 페르소나 2, 본가 작품 중 하나인 소울 해커즈의 3DS 이식에서도 기존 오프닝을 밀어내고 애니메이션과 보컬 오프닝을 사용했습니다. 그 바탕에는 역시 페르소나 3의 음악적 성공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곡가 메구로 쇼지는 자신의 입으로 페르소나 3의 OST가 퓨처 팝을 지향한다고 밝혔습니다. RPG 게임 OST로는 생소한 장르였지만 그 미래적이고 캐주얼한 분위기가 고등학교 배경 어반 판타지인 페르소나 3와 좋은 시너지를 보였습니다.


음악이야 이렇게 훌륭하지만 오프닝에 쓰인 2D 애니메이션만 떼놓고 본다면 작화든 프레임이든 좋다고 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이것 역시 당시 ATLUS의 어려운 상황 때문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많이 사용한 게임임에도 애니메이션 퀄리티가 아쉽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단점입니디만 적어도 이 오프닝에서만큼은 음악과 무드, 연출을 통해 그 단점을 완벽히 가려냈습니다. 무채색과 원색의 강렬한 대비, 도형과 텍스트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연출은 지금 봐도 세련됐습니다.


https://youtu.be/S0GgBcNKK5g?si=xviSYE_kf7omihoK


특히나 이례적인 건 전투에도 보컬 곡을 도입하였으며, 그것도 힙합 무드의 곡이라는 것입니다. 페르소나 3의 상징적인 OST, <Mass Destruction>입니다. 이제까지의 JRPG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보적인 전투 BGM은 페르소나3가 가진 캐주얼한 느낌을 극대화시켰습니다. 게임 속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고등학생이며, 일상 생활과 이계에서 괴물을 쓰러뜨리는 일을 병행합니다. 이능을 바탕으로 괴물과 싸워나간다는 비현실적 전개 속에서 이 게임이 추구하는 모던함과 캐주얼함에서 멀어지지 않게끔 분위기를 고정하는 것이 Mass Destruction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들의 싸움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삶과는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장치 또한 이 곡입니다.


학교를 가거나 자기계발을 하는 일상 파트의 곡에서는 카와무라 유미의 보컬이 주로 사용되었고, Lotus Juice의 랩이 주가 되는 것은 전투 BGM들입니다. 부드럽고 세련된 팝 음악에서 랩의 사용 유무를 통해 힙합이 가진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색채를 더하여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구분지었습니다. 스캣과 랩이라는 스킬풀한 보컬이 갖는 화려함과 곡 자체의 빠른 BPM이 곡의 제목인 Mass Destruction의 이미지와 상통하며 JRPG 역사상 손에 꼽을 수 있는 전투 음악이 되었습니다.


외에도 훌륭한 곡들이 잔뜩 포진해 있는 페르소나 3의 BGM은 그 자체로 마스터피스인 하나의 음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TLUS가 원래 음악을 잘 만드는 게임 회사이긴 했지만, 페르소나 3의 음악적 성공은 이후 시리즈에서도 계승되어 '페르소나스러운' 음악적 색채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부족한 제작비 중 얼마만큼을 OST에 투자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얼마가 되었든 그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평상시의 BGM은 반복되는 플레이 속의 지루함을 덜어 주고, 클라이맥스에서 사용된 특별한 BGM은 유저의 시각과 청각을 모두 사로잡는 명장면을 연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다루지는 않을 것이지만 최종 보스 전투 음악이나 엔딩 곡은 이 게임을 평가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아직까지도 회자될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적재적소에 알맞게 사용된 수준 높은 BGM은 유저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경험을 넘어 페르소나 3라는 게임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장치 중 하나로 기능했습니다.



혁신,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로 남은 시스템


앞서 말했다시피 페르소나 3는 신규 팬 유입을 위해 라이트 유저를 겨냥하고 제작한 게임입니다. 따라서 난이도 있고 매니악했던 기존 ATLUS 게임의 접근법에서 변주를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ATLUS는 자신들의 게임을 구성하던 전통적인 방법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통해 페르소나 3라는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페르소나 3의 원 모어 시스템(좌), 진 여신전생 3 녹턴의 프레스 턴 시스템(우)


우선 RPG 게임의 핵심인 전투 시스템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ATLUS는 진 여신전생 3 녹턴에서 프레스 턴이라는 혁신적인 턴제 전투 시스템을 도입하였습니다. 이는 기초적인 상성만이 존재하던 기존 ATLUS 게임의 전투에 엄청난 디테일을 더했습니다. 파티원의 수만큼 턴이 주어지며, 약점을 공격하는 것으로 행동 횟수를 늘리거나 공격을 무효화당하는 것으로 턴을 빼앗기는 방식은 타 RPG 게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독보적인 매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내 턴을 늘리고 상대방의 턴을 줄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현재까지도 오직 진 여신전생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수싸움입니다. 그러나 ATLUS는 큰 호평을 받았던 프레스 턴 시스템을 페르소나 3에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페르소나 3의 전투는 프레스 턴 시스템을 간소화한 듯한 원 모어 시스템을 바탕으로 진행되며, 이것은 적의 약점을 공격할 경우 말 그대로 공격자가 한 번 더 움직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약점을 공격당한 적은 다운 상태에 빠지며, 다음 자기 차례에 움직일 수 없습니다. 모든 적이 다운 상태가 되면 사용할 수 있는 총공격 커맨드를 통해 강력한 대미지를 줘서 전투를 마무리하는 흐름입니다. 약점을 공격한 뒤 총공격으로 마무리한다는 간단한 골자를 바탕으로 라이트 유저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전투 시스템을 만들어냈습니다.


요즘에서야 페르소나 시리즈의 원 모어 시스템은 프레스 턴 시스템의 열화 버전이라고 하는 팬들이 종종 보이지만, 어떻게든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했던 ATLUS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가는 선택입니다. 온전한 프레스 턴 시스템이 아닐지라도 반사나 흡수 등 ATLUS 특유의 내성 시스템은 건재했으며, 동료를 컨트롤할 수 없고 대략적인 지시만 할 수 있는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주인공의 무기 다양화나 스킬 카드, 믹스레이드 등 파고들기 요소가 마냥 없는 건 또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은 결국 색깔과 약점만 다른 적들과 이 단순한 시스템 위에서 주구장창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타르타로스 또한 색깔만 바뀔 뿐 같은 구조의 반복이니 페르소나 3가 전투와 던전 탐색 부분에서 지루하다는 평을 듣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페르소나 3의 전투와 던전 탐색 콘텐츠는 일장일단이 명확하여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다른 파트의 매력이 너무나 출중하였기에, 페르소나 3는 전투가 지루하다는 RPG 게임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도 흥행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그 다른 파트라는 것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한 서사와, 그것이 유저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커뮤 시스템입니다. 플레이어는 타르타로스를 탐색하지 않는 시간 동안 스테이터스를 올리는 것과 더불어 커뮤를 진행하여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다가갑니다. '쌓은 인연이 힘이 될 것이다'라는 게임 속 캐릭터의 말처럼, 커뮤를 진행하는 것을 통해 더 강한 페르소나를 만들 수 있게 되고 끝내 강력한 페르소나의 합체 제한이 풀리게 됩니다. 프로듀서 하시노 카츠라는 이 커뮤 시스템이 기존 ATLUS 게임에 존재해왔던 '악마 회화'의 계승이라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습니다. 악마 회화는 텍스트를 통해 유저에게 새로운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ATLUS 게임의 상징이었습니다. 악마 회화를 통해 새로운 악마를 동료로 들이거나, 아이템을 받을 수도 있으며 혹은 상황이 나빠져 곤란한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


커뮤 시스템은 기존 악마 회화 특유의 소위 '매운 맛'을 많이 덜어내고 페르소나 3의 강점인 캐릭터와 서사를 어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훌륭하게 디자인됐습니다. 플레이어에 따라 필요 없다고 느낄 수도 있는 조연 캐릭터들과의 교류에, 페르소나의 성장이라는 게임 시스템적 어드밴티지를 통해 반강제적으로 끌어들이며 훌륭한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그 매력에 사로잡히게끔 만들었습니다. 특히나 이 커뮤 시스템은 게임의 클라이맥스와도 이어지므로, 정말 그간 쌓아온 인연의 결실이 자신의 힘이 된다는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일종의 캐릭터 게임, 더 나아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같은 느낌이 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것 역시 라이트 유저를 사로잡기 위한 ATLUS의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커뮤 시스템은 훌륭하게 시리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4편과 5편에서도 메인 콘텐츠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4편과 5편의 커뮤 캐릭터들은 3편의 커뮤 캐릭터들만큼 개성적이지 않으므로 역시나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누군가와 교류하며 성장한다'는 느낌은 3편에서 가장 생생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페르소나 3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편 페르소나 3는 ATLUS 게임으로서는 이례적으로 2D 애니메이션이 많이 삽입되었습니다. 서브컬처 오타쿠나 라이트 유저들을 겨냥하여 대중적으로 친숙한 애니메이션 삽입을 선택했다는 것도 물론 당연한 사실입니다만, 그보다도 본질적인 까닭은 역시 제작비 문제입니다. 3D 폴리곤 기술이 부족하여 만족스러운 퀄리티의 컷신을 내놓을 수 없으니 2D 애니메이션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2D 애니메이션마저도 제작비가 충분하지 않아 미묘한 퀄리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삽입 애니메이션들이 페르소나 3의 세계관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내는 데 성공했으므로, 그것을 발판 삼아 여전히 페르소나 시리즈는 애니메이션 삽입을 시리즈의 전통으로 삼아 고수하고 있습니다. 5편의 뛰어난 애니메이션 퀄리티에 비하면 초라하게까지 느껴지는 3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자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애니메이션 사용과 더불어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제작비가 부족한 상황임에도 성우에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는 것입니다. 기존 ATLUS 게임에 대부분 보이스가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시다 아키라, 미도리카와 히카루, 나카이 카즈야와 같은 뛰어난 성우들을 기용하여 캐릭터들에 깊이를 더하고 그 매력을 배가시켰습니다. 이 파격적 성우 기용 역시 페르소나 3의 서브컬처적 성공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ATLUS 게임을 리뷰하면서도 늘 하는 말이지만, 역시 ATLUS는 자신들이 못 하는 부분은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잘 할 수 있는 부분에서 200퍼센트를 다하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페르소나 3의 작품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최애 게임 회사의 최애 게임인 만큼 여러모로 할 말이 많았네요. 모두 페르소나 3라는 게임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필요한 내용들이라 무엇 하나 덜어낼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이해를 바탕으로 페르소나 3를 해석하며 작품 내적인 이야기를 해 봅시다.






강한 스포일러 주의!




삶이라는 문장의 끝이라는 마침표



역시나 페르소나 3에 대한 해석을 하려면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프닝에서부터 메멘토 모리('네가 죽는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라는 라틴어 문장')를 인용하거나, 극초반 주인공의 이름을 결정한 후에도 파를로스가 '시간은 모든 것에 결말을 가져다준다'는 말을 합니다. 게임의 핵심인 '페르소나'를 소환하는 방식은 머리에 권총 형태의 소환기를 갖다댄 뒤 방아쇠를 당기는 행동입니다. 마치 권총 자살을 연상시킵니다. 주인공의 첫 전투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죽음의 화신인 타나토스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방문하는 라멘 가게의 이름 '하가쿠레'는 '무사도란 죽는 것임을 깨달았도다'라는 구절로 유명한 일본의 무사도 서적입니다. 페르소나 3는 이렇게 작품 전체에 죽음에 대한 암시가 쭉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게임을 진행할 수록 은유나 암시를 넘어 점차 선명해지더니, 끝내 주인공과 동료들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에 저항하여 싸우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모여 거대한 염원이 되었고, 그 바람을 이뤄 주기 위해 최종 보스인 닉스 아바타가 현현해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으로 모든 이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공과 동료들은 그 멸망의 사실을 알게 된 뒤 절망하고 분열하기도 하지만 끝내 힘을 합쳐 용감하게 닉스와 맞서게 됩니다. 그러나 닉스는 상상 이상으로 강했고, 모두가 쓰러진 와중 주인공만이 일어서 닉스에게로 향했습니다.



불청객처럼 찾아온, 세상 모두가 원하지 않을 멸망에 맞서 주인공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희생합니다. 게임 스크린샷에서 스킬 '거대한 봉인'의 사용 코스트는 주인공의 HP 최대치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생명을 대가로 닉스를 봉인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연출입니다. 가진 생명을 모두 사용하였으니 주인공은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 없었지만, 쇠약한 몸으로 동료들과 약속한 졸업식인 3월 5일까지 버텼습니다. 닉스가 쓰러지며 그간의 싸움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었던 동료들은 졸업식 도중 모든 기억을 떠올려냅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한 '졸업식 날에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옵니다. 자신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와중 힘이 다한 주인공은 옥상에서 눈을 감으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결말은 수많은 게이머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자신을 가꾸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섀도와 맞서 싸워 온 결과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주인공은 누구보다 편안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봅시다. 뉵스의 손에 멸망하든 옥상 위에서 힘이 다하든 죽는 것은 동일한데 왜 두 죽음이 갖는 성격이 다른 걸까요?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해 봅시다. 왜 주인공은 뉵스가 모든 이에게 죽음을 전하려 할 때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며, '거대한 봉인'의 대가로 찾아온 죽음은 순순히 받아들인 걸까요? 저는 이 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죽음을 마침표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채 완성되지 않은, 문장 중간에 마침표가 찍힌다면 그것은 비문이 됩니다. 완결성을 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만족스럽게 쓰여진 문장 뒤에는 응당 마침표가 찍혀야 합니다. 그것은 문장이 완성되었다는 증명이며 완결성을 부여하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완성된 문장과 다음 문장을 구분짓는 동시에 다음 문장의 시작을 암시하는 장치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만큼 '끝'과 '죽음'을 비유하는 데 있어 글짓기의 방법론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이를 중심 가지로 삼아 페르소나 3의 해석을 해 나갈 예정이니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서도 이 비유를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대개 우리가 죽음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부정적입니다. 죽음은 몹시 두려운 공포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빼앗기는 것이며 남겨진 사람들을 슬픔 속에 빠트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면 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죽음에 직면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 속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을지 우리는 쉽사리 가늠할 수 없습니다. 지켜봐 주는 가족들이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기에 만족스러웠을지, 아니면 죽는 것이 무서워 마음 속으로 떨고 있었을지 얼굴 표정만으로는 도통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매체나 현실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이고, 죽음이 우리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는 죽기 전까지 평생 알 턱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 의미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며, 그것이 있기에 우리 삶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고사나 병사, 요절 등 정말 끔찍하고 슬픈 형태의 죽음도 존재하며, 어쩌면 그것이 평온한 죽음보다도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고사와 요절을 상정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체가 갖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제하고 생각했을 때, 우리에게 죽음이란, 삶이라는 문장에 찍히는 필연적 마침표라 여기는 것이 조금 더 타당합니다.


무엇에든 죽음과 같은 끝이 있다는 불변의 진리는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우리가 재밌게 보는 만화나 소설도 언젠가 끝이 난다는 사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과도 언젠가 헤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 지금 내가 한 몸 바쳐 일하고 있는 일자리에서도 언젠가는 떠나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내쉬고 있는 호흡이 언젠가는 멎는다는 사실. 이 사실들을 단적으로 인지하였을 때 사람은 짓눌립니다. 공포, 절망, 회의, 혹은 그 이외의 것이든 부정적인 무언가가 우리 가슴에 매달려 우리를 무겁게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페르소나 3에 등장하는 동료들 또한 그랬습니다.



그간의 결속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힘을 합쳐서 갖은 난관을 이겨내 온 동료들이지만 필연적으로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동료들은 두려워하고,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주인공 일행 중 가장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친구는 '주인공 탓이 아니냐'며 주인공을 탓하기까지 합니다.(게임 시나리오 상 멸망을 초래하게 된 것은 주인공 일행의 행위 때문이었으므로) 준비되지 않고 원하지도 않은 죽음의 운명을 안 이상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끝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 속에서 괴로워하는 주인공 일행을 위해, 최종 보스이자 죽음의 화신인 닉스 아바타는 나름의 배려를 내보입니다.



그는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고 멸망하는 순간까지, 죽음과 멸망에 대한 사실을 모두의 기억 속에서 없애주겠다는 제안을 건넵니다. '끝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두렵고 괴로운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삶 속에서 크든 작든 우리가 몇 번이고 반복해 온 행동입니다. 이 상황도 죽음이 목전이긴 하지만 그 끔찍한 현실을 잊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를 준 것이니 승낙하더라도 할 말은 없습니다. 인간은 감정에 지배당하는 동물이고, 두려움은 그 감정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원초적인 것이니 말입니다. 승산 없는 싸움에 목숨을 던질 바에야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슬그머니 찾아오는 죽음에 몸을 맡기겠다는 것은 마냥 잘못된 선택이라 할 수 없지만, ATLUS는 그것이 좋지 않은 선택이라는 점을 게임적 표현을 통해 분명히 합니다.



닉스 아바타의 제안을 승낙하면 게임 속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주인공의 윗 학년인 3학년들이 졸업하는 졸업식 날로 향합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뭔가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는 사실조차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은연중에 내뱉는 '맞서 봤자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자신이 그렇게 강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다',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니 맘 편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말은 운명에 맞서지 말고 도망치기로 한 주인공 일행의 선택을 자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임 속 캐릭터들이야 모든 기억을 잊었지만 화면을 보고 있는 플레이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상황의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느끼게 됩니다. 물론 그들이 하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쩐지 답답하고 아쉽습니다.



이제껏 열심히 육성한 캐릭터들로 최종 보스전에 임할 수 없다는, 다분히 게이머적 시각에서 봐도 그렇습니다만 그런 점을 차치하고 생각하더라도 이 결말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결국 주인공 일행은 졸업식이 끝난 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노래방에서 노는 것을 마지막으로 멸망을 맞이하며 게임이 끝납니다. ATLUS가 이것이 배드 엔딩이라고 공언하진 않았으나 모든 유저가 이 결말을 배드 엔딩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ATLUS 게임의 매력이 바로 이런 부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속 세계관을 벗어나는 별도의 언급 없이도 플레이어가 스스로 생각하여 메시지를 찾고 이해하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게임을 연출해낸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게임을 통해 메세지를 전하고자 하는 ATLUS지만, 그 전달 방식은 결코 노골적이지 않으며 강요도 아닙니다. 단지 플레이어 스스로 고찰하기를 유도하여 더 나은 사고로 이어지게끔 만듭니다. 이 결말이 내키지 않는 이유는 상술했던 것처럼 '원하지 않는 부분에 찍힌 마침표'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많고, 더 잘 쓸 수 있음에도 덜컥 마침표가 찍혀버리는 것은 낭패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되돌아가서, 닉스 아바타의 제안을 거부한 우리는 '어떤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과정, 삶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강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동료들


갑작스럽게 난입하는 마침표를 거부한 플레이어는, 원고지의 남은 여백을 자기 스스로 써내려갈 수 있는 의지를 갖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에서부터 힘이 비롯됩니다. 모든 것이 멸망하는 시기는 예고되었지만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은 있었습니다. 함께 싸우기로 한 동료들과 결의를 다지고, 가진 인연을 가꾸고, 자기 자신을 단련하며 남은 시간을 충실히 보내는 주인공의 여정은 게임 속에서 커뮤 시스템과 스테이터스 및 페르소나의 성장으로 표현됐습니다.


무엇이든 끝나고 만다는 것을 알면서도 충실하게 자신 앞에 주어진 삶을 산 주인공과 동료들은 끝내 닉스 아바타와의 결전에 나섭니다. 그리고 기적을 일으킵니다. 절대적인 끝인 죽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공포에 굴하지 않은 주인공은, 닉스 아바타의 손이 아니라 스스로의 손으로 자신의 삶에 당당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닉스를 봉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래방에서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멸망을 맞이하든, 자신을 희생해 닉스를 봉인하든 주인공이 죽는 것은 똑같은데 왜 우리는 전자에서 아쉬움을 느끼고 후자에서는 만족을 넘어 감동을 느끼는 걸까요? 그것은 '언젠가 끝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인간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무수한 '끝'의 연속입니다. 페르소나 3 속의 끝이란 주인공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절대적이고 모든 생명에게 공평한 삶의 종결로 대표되었지만 우리 삶에는 훨씬 더 많은 끝이 있습니다. 상술한 것처럼 만화, 게임, 음악, 연인, 스포츠, 무엇이든 끝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끝이 있으므로 더욱 소중합니다. 만일 그 모든 것들에 끝이 없다면 결국 지리멸렬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결말 없는 만화는 권태감을 일으키고, 끝나지 않는 음악은 귀를 지치게 할 뿐이겠죠. 이 의식에서 한 단계 더 진보하면 하물며 우리의 삶도 그렇다는 사실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도 끝이 있기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알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욱 충실할 수 있고, 즐거운 이 하루도 끝날 것을 알기에 어물쩡 넘기지 않고 온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끝이 없는 삶, 영생을 살 수 있다면 이렇게 열심히 살아갈 이유 또한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뇌하고, 선택하며, 자신이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지고 살아갑니다. 이를테면 시험 기간에 공부를 할 것인지,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를 만날 것인지 고민하는 상황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자신에게 더욱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학업 성취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인연이 더 소중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서 비롯된 책임은 자신이 온전히 짊어집니다. 친구와 시간을 보냈다면 공부가 마음에 걸릴 것이고, 공부를 했다면 친구와의 우정이 아쉬울 것입니다. 어떤 선택이든 정답은 없습니다. 개인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누구든 결국 자기 자신에게 더욱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좇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모아 온 가치가 쌓여 우리가 살아온 삶을 이루게 됩니다. 바로 이 과정이 페르소나 3의 게임 플레이와 닮지 않았나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여럿입니다. 친구나 지인을 만나 커뮤를 올릴 수도 있고, 공부를 하거나 매력을 가꿔 스테이터스를 올릴 수도 있습니다. 밤에는 타르타로스를 탐색하러 가거나, 내일의 컨디션을 위해 쉴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표현한 이 페르소나 3마저도 끝이 존재하는, 한정되어 있는 게임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마치 실제 삶을 살듯 많은 경험과 마주하고, 선택하며 자신의 신념을 관철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레벨을 올려 강한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모든 인연을 진전시켜 올 커뮤 맥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주인공의 스테이터스를 높이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원고지를 무슨 내용으로 채울지는 온전히 플레이어의 몫입니다.


여정의 끝에서 모든 플레이어는 동일하게 예견된 죽음인, 최종 보스 닉스 아바타와 마주합니다. 그리고 닉스를 봉인하며 여정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습니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바탕으로 해서요.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무수한 삶의 형태가 있듯, 페르소나 3 또한 무수한 플레이의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며, 플레이를 되돌아봤을 때 자신이 무엇을 중요시 여겼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삶 또한 그렇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가든 모범 답안이란 것은 없으며, 다만 삶을 되돌아봤을 때 내가 추구해 온 가치가 쌓여 나의 삶이라는 것을 정의하고 있을 것입니다. 즉, 페르소나 3는 그 자체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여기까지 왔다면 페르소나 3의 오프닝 곡 'Burn My Dread'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공포를 불태워 없애버릴 것을 노래하는 이 곡은, 표면적으로 보기엔 권총 자살을 연상시키는 페르소나 소환 방식의 공포를 이겨내겠다는 연출로 느껴집니다. 더해서 페르소나와 얽히며 시작되는 무수한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암시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의 의미를 모두 알고 난 지금, 이 오프닝은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굴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은유입니다. 이것과 연계하여 소개드릴 문장이 있습니다. 제 리뷰에서 종종 등장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행복한 죽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죽음을 겁낸다는 것은 바로 삶을 겁낸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죽는 것에 대한 공포는 인간 속의 살아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끝없는 집ㅈ착을 정당화해주는 것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메르소는 이 의식을 바탕으로 후회 없이 남은 삶을 살아간 끝에 자신의 죽음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Brun My Dread'가 어떤 식으로 해석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 문장을 참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 죽음을 겁낸다는 것은 삶을 겁낸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나아가 끝을 두려워한다는 건 과정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죽음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공포를 온전히 떨쳐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생명으로서 가진 본능적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겁내는 것이 삶을 겁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난 이상, 그것은 우리의 개념 속에 있는 일차원적인 공포가 아닙니다. 죽음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손에 힘을 풀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더욱 가치 있게 쓰고자 노력합니다. 마치 화력 발전처럼, 그 공포를 불태우며 생(生)의 집착에 대한 연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 삶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르소나 3가 전하고자 한 것은 유한하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삶의 가치였습니다. 모든 요소에 필연적인 끝이 존재하는 삶, 그 유한성을 상기시킨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주인공은 한정되어 있는 시간 속에서 충실히 살아간 끝에 모든 생명을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세계를 구하는 것만큼의 대업에 닿을 수 있을지 쉽사리 가늠할 수야 없습니다만,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다 보면 분명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ATLUS는 게임 전반에 걸쳐 주인공에게 깃들어 있던 죽음이라는 대조적 개념으로부터 끝내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강조해냈습니다. 그 대비가 빚어내는 조화야말로 페르소나 3의 매력입니다.



생명의 해답: 죽음에서부터 삶으로, 끝에서부터 시작으로



페르소나 3 본편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란 이제껏 이야기한, 유한하기에 소중한 삶의 가치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주 훌륭하지만 ATLUS는 페르소나 3의 확장판인 FES를 발매하며 그 의식 또한 확장시켰습니다. 추가 시나리오인 에피소드 아이기스는 주인공이 사망한 이후 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남겨진 아이기스와 동료들은 주인공에 대한 미련으로 인해 3월 31일에 갇혀 내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반복되는 시간에 갇힌 채 주인공의 흔적을 좇은 동료들은 주인공의 죽음에 대한 진상과 마주합니다. 끝내 그의 죽음을 이해하여, 모두들 자연스럽게 미련을 버리고 내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 에피소드 아이기스의 시나리오입니다. 인상적인 결말을 남긴 게임이니만큼 모두가 원하는 후일담 콘텐츠로서의 성격 또한 훌륭하지만, 저는 이 에피소드 아이기스를 통해 비로소 페르소나 3라는 게임을 완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페르소나 3 본편의 시나리오 속에서, 감정 없는 로봇이었던 아이기스는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인간성을 갖게 됩니다. 입력된 명령을 위해 움직이는 기계를 넘어 인간에 다가가는 아이기스를 지켜보는 것또한 페르소나 3 본편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이야기의 끝무렵에 아이기스는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정의하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 모습은 가히 한 명의 인간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인간적이었기에 주인공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죽음 이후 그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아이기스는 조금씩 인간성을 상실하며, 사진 속 독백에서 말하듯 생명이 없는 기계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기계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꿈을 꿀 수 없습니다. 기계는 작동을 하는 것이지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성과 더불어 정체성마저 상실해가던 와중 아이기스는 동료들과 힘을 모아 주인공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뒤쫓게 됩니다.



마침내 모든 진실과 마주한 끝에 아이기스와 동료들은 주인공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갔던 인간성 또한 되찾은 아이기스는, 이고르로부터 '생명의 답'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이고르는 생전 주인공의 여정을 보좌한 존재였습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생명과 맞바꿔 닉스를 봉인하기로 다짐했을 때, 이고르는 똑같이 주인공이 '생명의 답'에 도달하였다고 칭찬했습니다. 주인공의 선례로 보았을 때 '생명의 답'이란 자신의 삶을 굳건히 관철한 끝에 도달하는 최후, 다시 말해 죽음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동료들은 아이기스 또한 주인공처럼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으로 알아듣고 혼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기스가 도달한 생명의 답이란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미련을 떨쳐내고 나아간 4월 1일, 죽은 줄로만 보였던 아이기스는 눈을 뜹니다. 사고 회로가 모두 꺼져 있는 상태였음에도 인간처럼 '꿈을 꿨다'고 말합니다. 아이기스는 잃었던 인간성을 수복한 것을 넘어, 사고 회로를 통해 생각을 연산하지 않아도 사유할 수 있는 인간에 맞닿은 것입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자신이 느낀 생명의 답을 전합니다. '이별이 가르쳐주는 건 생명의 소중함'이며, '살아가는 기쁨을 가르쳐주는 건 자신을 생각해 주는 누군가'라는 말을 통해 아이기스의 성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죽음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배웠고, 곁에 남은 동료들과 갈등하고 화해한 끝에 살아가는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기쁨을 만끽하며 계속 살아가는 것또한 생명의 답이라는 것입니다. 생전의 주인공이 마주한 생명의 답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지만 어느 한 쪽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과 삶, 두 가지 모두가 생명의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생명을 가진 유(有)의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무(無)로 돌아가는 여정 속에서 생명의 답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유한한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관철하고 만족스러운 마침표를 찍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아이기스는 상실감과 미련으로 인해 눈을 뜨고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의미 없는 삶이라는 무(無)의 상황에서 계속 살아갈 의지를 찾아내는 유(有)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생명의 답을 찾아냈습니다. 유에서 무로, 무에서 유로 순환하는 두 가지 흐름이 모두 생명의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생명의 답을 찾았기에 눈을 감을 수 있었으며, 아이기스는 생명의 답을 찾았기에 계속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결말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ATLUS가 내보인 해답입니다.



계속 살아간다는 해답에 도달한 아이기스는, 예정되어 있던 연구소로의 이송을 취소하고 계속 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기계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 결말과 함께 흐르는 엔딩곡 'Brand New Days'는 '당신이 가르쳐 준 이 소중한 삶을 살아나가겠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입니다. 본편의 엔딩곡인 '너의 기억'과 이어지면서도, 주인공을 추모하는 성격이 강한 너의 기억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다가올 새로운 나날들을 맞이하겠다는 희망찬 노랫말이 페르소나 3의 진정한 완결을 암시합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간단합니다. 모든 끝이 있기에 모든 시작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한 곡이 끝나야 플레이리스트의 다음 곡으로 넘어갈 수 있으며, 한 드라마가 끝나야 다음 시즌이든 후속작이든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 3의 본편은 그 끝을 향해 가는 과정과 끝 그 자체를 묘사하는 데 충실했다면, 에피소드 아이기스는 그 끝에서 비롯되는 시작을 아름답게 그려냈습니다.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끝을 딛고 삶이라는 새로운 시작 앞에 선 아이기스처럼, 게임의 플레이어도 그간 몰입했던 페르소나 3라는 게임의 결말을 딛고 새로운 나날들을 맞이할 것입니다. 게임 자체가 삶에 대한 은유였던 만큼 플레이어는 그 마지막까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ATLUS가 스스로에게 던진 메시지



이제껏 페르소나 3라는 게임을 열심히 해석했습니다. 페르소나 3가 전하는 메시지는 삶의 진리나 다름없습니다. 그 진리는 도산 위기였던 당시의 ATLUS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넘어 어쩌면 도산을 앞두고 있던 ATLUS가 스스로에게 되뇌이던 자기암시였을지도 모릅니다. 게임 회사에게 있어 도산이란 죽음이나 다름없습니다. 계속되는 실적 악화로 도산이라는 죽음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한 순간, 그 절망과 공포감은 너무나도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ATLUS 역시 거기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드리운 자신들의 끝을 인지하고 용감히 맞서며 페르소나 3를 개발해냈습니다. 그들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게임은 세상에 통했고, 결국 회사를 다시 일으켜세울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서도 끝까지 맞서 싸운 주인공을 그리며 ATLUS는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좀 더 생각을 넓혀 봅시다. 게임 속에서 그려지는 종말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민들, 죽음의 운명을 듣고 나서 절망하는 동료들, 그러나 결국 결의를 다지고 힘을 합쳐 싸우는 시나리오 등, 일련의 모든 내용이 도산이 목전이었던 ATLUS의 자아 성찰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 속 무기력증 환자들을 묘사하며 이들처럼 의지를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하고, 모든 것이 끝난다는 공포에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캐릭터들을 그리며 개발에 몰두했을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산 끝에 후회 없이 자신의 삶을 완결시킨 주인공을 그릴 무렵에는 ATLSU 역시 모든 좌절과 공포를 딛고 일어서 어떠한 결말이든 받아들일 준비를 하며 페르소나 3의 개발을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페르소나 3의 작품 세계가 현실 ATLUS가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투영한 것이라고는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도된 것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게임을 통해 회사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공포를 시인하고 역경을 딛은 끝에 세상을 구해내는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처럼, ATLUS 또한 도산에 대한 두려움을 시인하며 딛고 일어서서 기적처럼 페르소나 3를 흥행시켰습니다. 창작물을 만드는 동안 창작자는 의식적 성장을 이뤄내는 동시에 그 창작을 통해 자신을 구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리뷰를 하고 보니 페르소나 3가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이 리뷰를 통해 제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 게임을 되돌아보고, 삶에 대해서 진정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페르소나 3가 오마주한 작품들



리뷰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페르소나 3에 영향을 준 작품들을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ATLUS의 간판 시리즈인 진 여신전생부터가 <데빌맨>을 비롯하여 <바이올런스 잭> 등 나가이 고의 작품 세계를 오마주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합니다. 그렇게 출발한 진 여신전생 시리즈는 이제 JRPG에 있어 기라성 같은 프랜차이즈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마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들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립하는 일은 ATLUS의 전매특허입니다. 이제 페르소나 시리즈 또한 진 여신전생 시리즈를 뛰어넘는 JRPG의 상징적인 프랜차이즈가 되었습니다만, 그 흥행의 신호탄이었던 페르소나 3에는 죠죠의 기묘한 모험과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페르소나 3는 개발 기간이 촉박하고 여건도 안 좋았습니다. 더군다나 기존 팬덤은 물론이요 신규 팬들까지 사로잡기 위하여 흥행과 연결되는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겹겹이 쌓인 악조건 하에서는 온전한 창작을 하기보다 무언가를 벤치마킹하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많은 플롯을 따온 이유는 에반게리온이 어마어마한 신드롬을 일으킨 히트작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많은 오타쿠들이 에반게리온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며, 그 길을 따라가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짐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다 에반게리온과는 신기하게도 '부족한 제작비와 열악한 상황'이라는 전제 또한 흡사합니다. 그것을 캐릭터성과 연출, 음악과 편집으로 메꿔냈다는 것도 닮아 있습니다. 이제 <죠죠의 기묘한 모험>부터 차근차근 살펴봅시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페르소나 시리즈 자체는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향수를 짙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3부부터 등장하는 영체인 스탠드와 페르소나 의 묘사가 흡사합니다. 물론 페르소나 시리즈가 <진 여신전생 if>로부터 계승되었으며, 거기서 등장하는 가디언 시스템이 페르소나 시리즈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도 설득력 충분한 주장입니다. 다만 3편에 들어서 타로 카드의 아르카나를 더욱 핵심적인 요소로 사용했다는 점(중요 인물들의 대사, 매 보름달마다 등장하는 아르카나의 적들, 커뮤 시스템 등)에서 타로 카드와 스탠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게임의 최중요 요소인 페르소나와 타로 카드를 죠죠에서 따온 한편, 게임의 시나리오 플롯과 배경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강하게 오마주했습니다. 아예 통째로 이식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쉐도 타임 속에서 관의 형태로 상징화되는 시민들은 에반게리온 속에서 형태를 잃고 LCL로 환원되는 사람들을 연상시킵니다. 주인공 일행의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조연 인물들을 이야기에서 배제함에 있어 흡사한 방식을 채택한 것입니다. 이 개성적인 연출은 세계관의 개성과 잔혹성을 묘사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매 보름달마다 내습하는 대형 쉐도우는 에반게리온 속 사도 습격과 흡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적대적 존재와 맞서 싸울 힘을 가진 특별한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라는 것또한 에반게리온과 닮아 있습니다. 역시나 라이트 팬덤과 오타쿠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ATLUS는 데빌 서머너 시리즈를 제외하면 늘 청소년 주인공을 고집해 오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의 첫 전투에서 일어나는 폭주도 에반게리온의 영향입니다. 초호기의 폭주는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주인공의 잠재력을 기대하며 에반게리온을 계속해서 시청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페르소나 3의 주인공 또한 첫 전투에서 페르소나인 타나토스가 폭주하여 잔혹하고 거침없는 연출을 선보였습니다. 요즘 모바일 게임은 흔히들 튜토리얼에서 최강 캐릭터들을 맛보기로 사용하게 해 주고 본 게임으로 들어가더군요. 그 '맛보기'를 통해 게임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끔 만들고 그 캐릭터들을 플레이할 수 있을 때까지 게임을 계속하게 만듭니다. 타나토스도 그런 장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감정을 서툰 한편 주인공을 지키고자 하는 단발머리 소녀'는 명백히 아야나미 레이의 캐릭터성입니다. 캐릭터가 히트한 만큼 수많은 오마주 캐릭터가 존재하지만, 페르소나 3의 아이기스는 그 중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에 서투르고 행동도 차가운 기계 소녀지만 점차 마음을 열어 인간성을 찾아간다는 점, 주인공을 지키기 위하여 몸을 던진다는 점과 더불어 단발과 백색의 수트라는 이미지까지 많은 것을 빌려왔습니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둘의 캐릭터성은 완전히 달라지지만 말입니다.




'주인공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는 신비롭고 쿨한 소년'의 캐릭터성은 대부분 나기사 카오루에서 파생되어 서브컬처로 퍼져나갔습니다. 페르소나 3에서는 모치즈키 료지가 그 캐릭터성을 차용했습니다. 나기사 카오루와 에반게리온의 주인공 이카리 신지가 같은 영혼의 그릇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과 유사하게, 페르소나 3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당한 사고로 인해 13번째 섀도인 데스를 자신 안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 데스가 주인공과 함께 성장하여 모치즈키 료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카오루가 신지에게 접근했던 것과 비슷하게 료지는 매력적인 전학생으로 등장하여 주인공 일행과 순식간에 친해집니다. 하지만 '멸망을 고하러 온 사도'라는 자신의 본분을 기억해낸 뒤 주인공 일행에게 자기 자신을 죽여줄 것을 간청합니다. 이 역시 카오루의 정체, 그리고 최후와 매우 유사합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라이트 팬덤을 사로잡기 위하여 ATLUS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벤치마킹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반게리온은 2025년 현재까지도 새로운 팬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을 정도로 시대를 불문하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에반게리온 역시 안노 히데아키가 좋아하는 작품들의 클리셰를 잔뜩 가져와 범벅을 해 놓은 작품입니다만,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끝에 이제는 에반게리온이 하나의 클리셰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 클리셰에 편승하여 고공 행진을 시작한 페르소나 시리즈 또한 이제는 JRPG의 클래식이 되어 수많은 주브나일 RPG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고 있으면, 이 창작의 순환과 계승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물론 한 명의 오타쿠 팬으로서 웃음 또한 감출 수가 없습니다.


다크 시티



1998년작 영화 <다크 시티>는 아시는 분보다 모르시는 분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ATLUS는 이렇게 각종 영화에서도 자주 모티브를 차용하는 편입니다. 훗날 다룰 진 여신전생 시리즈에서도 역시나 그렇게 해 왔습니다. 다크 시티는 모두가 잠든 밤 12시에 전혀 다른 형태로 뒤바뀌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 속에서 혼자 깨어난 주인공을 그리고 있습니다. 페르소나 3를 플레이해 보신 분이라면 이 개념이 몹시 친숙할 것입니다. 게임 속 주인공과 동료들의 활동 무대인 쉐도 타임은 다크 시티를 오마주한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인지하지 못하는 숨겨진 시간 속에서 괴현상인 섀도와 마주한다는 것, 그 시간이 밤 12시인 것과 더불어 그것을 묘사하는 시각적 이미지에 있어서도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페르소나 3는 여러 작품에서 상당히 많은 요소를 가져와 잘 버무려 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일명 '오마주 범벅'의 대선배라고 할 수 있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또한 '오리지널리티가 없는 오마주 투성이'가 아니라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넘어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는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페르소나 3 역시 죠죠나 에반게리온의 아류작 취급이 아닌, 페르소나 3라는 독립적 개성을 지닌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여러 작품으로부터 인상적인 부분이나 흥행에 기여할 만한 요소를 가져오는 것은 창작에 있어 당연한 일입니다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작품으로 도약하느냐는 창작자의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가져오는 것으로 그친다면 표절작이라고만 느껴질 것입니다. 가져온 요소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창조해내는 것은 응당의 도리이며 원본 작품에 대한 예의입니다. 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긍정적인 오마주를 바탕으로 새로운 클래식이 태어나고, 그것이 또다른 창작물의 초석이 된다는 점은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성격을 지닌 최근 작품으로는 돌풍의 주역 <체인소 맨>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오마주와 표절의 경계라는 복잡한 논제를 여기서 다룰 순 없지만, 적어도 지금껏 언급한 작품들은 모두 긍정적인 오마주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무리하며: 직시하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힘



아, 정말 길었습니다! 우선 이 말부터 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페르소나 3 리뷰도 마무리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9월 말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거의 한두 달이라는 긴 기간 동안 작성한 리뷰이며, 위의 내용만 세더라도 대략 2만 자를 넘는 긴 글이었습니다. 지금 이 느낌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다리던 택배가 이제야 도착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생각해 보면 페르소나 3 역시 1년이라는 긴 시간을 살아가는 방대한 내용을 담은 게임인 만큼, 저 역시 할 말도 많고 추억도 많았기에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간 이런저런 일도 많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바빠지면서 심신이 지쳐 글쓰기 창을 켜 두고도 몇 문장 뽑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싫었습니다. 목에 뭔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고요. 저는 이런 식으로 '제가 기대하는 저 자신'과 '실제의 저 자신'에서 괴리를 느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계속 무거워지기만 하다 보니 아예 땅을 뚫고 들어가버렸습니다. 할 말은 많은데 마음은 무거우니 오래 걸리는 것도 지금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가볍게 글을 쓰겠다'는 다짐과는 다르게 한 문장 한 문장 정말 쥐어짜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고된 작문이었으나, 이번에도 중반을 기점으로 혈이 뚫렸습니다. 그건 글을 쓰면서 떠올린 페르소나 3의 추억으로부터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괴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든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게임 속 캐릭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한정된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그 유한성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끝이 없는 것은 없으니까요. 이렇게 좋아하는 내용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추억에서부터 비롯된 힘도 또 고된 일상의 풍파 속에서 휘발되듯 사라지겠죠.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페르소나 3를 따라 걸으며 이번에도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이제서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저 역시 2024년은 <페르소나 3 리로드>를 플레이하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리뷰에서는 의도적으로 리로드에 대한 이야기를 배제했습니다. 리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가득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것보다도 제가 페르소나 3에서 느꼈던 메시지와 그 감동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제가 리로드에서 느낀 부정적인 감상은 대개 게임 외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것들이었습니다. 가격이나 DLC 정책, 매우 부족한 오리지널 요소, 거기에 더해 2024년의 그래픽으로 2006년에 만들어진 세계를 플레이하고 있자니 미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경우는 리메이크판의 장점이 되어야 할 터인데, 어쩐지 리로드에서는 이것이 단점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마 배경이 현대여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2024년의 시각으로 바라보다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시나리오 상의 미흡점이나 설정이 거슬렸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것도 어린 생각이었습니다. 페르소나 3 리로드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페르소나 3의 감동을 다시 한 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6년의 폴리곤 그래픽이 부담스러운 신세대 플레이어들을 위해 발전된 그래픽과 시스템으로 페르소나 3를 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단지 저는 페르소나 3 원본판의 엄청난 팬이었고, 그래서 리메이크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하늘을 뚫고 올라가던 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것을 두고 단점이라 느낀 꼴이었습니다. 거기서 비롯된 부정적 감상이 뻗어나간 끝에 제가 요즘의 페르소나 시리즈에 염증을 느끼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게임성보다도 UI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고, 이제 정식 넘버링의 마지막 출시로부터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신작 소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확장판과 외전작, 리메이크와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IP 확장 및 기존 팬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썩 달갑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저는 페르소나 시리즈를 5편의 어마어마한 혁신으로부터 10년 가까이 정체되어 있는, 매너리즘에 빠진 시리즈라고 느끼기에 이르렀습니다. 페르소나 3의 팬을 자처하면서도 다른 분께서 하신 리로드 리뷰에서 본 '내 추억을 인질로 잡아 장사를 하는 게임'이라는 문장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도 여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제 생각이 많이 어리숙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른이 되며 생긴 저의 잣대로 제가 사랑했던 작품을 섣불리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페르소나 3 자체가 품은 내용은 변한 것 하나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헤어진 연인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지만, 변한 건 게임보다도 제 쪽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게임을 그저 재미있는 게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BM(비즈니스 모델)이니 프랜차이즈 사업이니 하며 잡다한 시각에서 궁리하게 되었으니까요. 리뷰어로서 최소한의 전문성을 지니고 싶다는 생각에 다양한 부분을 고려하고 있는 건 맞지만 페르소나 3에 있어서는 제가 너무 편협했습니다. 그만큼 좋아하는 게임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게임을 진지하게 리뷰하는 동안 똑바로 마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절실히 느꼈습니다. 페르소나 3는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훌륭한 게임이고, 여기서 받은 감동을 바탕으로 살아나갈 힘을 얻을 수 있겠다고요. 제가 좋아하는 여느 작품들처럼 말입니다.



이제 정말로 이 글을 마무리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리뷰를 쓸 때마다 마무리 글을 쓰는 게 제일 즐거운 순간이었다는 것을 지금 상기했습니다. 그것은 결실이 코앞이라는 기쁨과 더불어 페르소나 3처럼 끝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올려다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다른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저는 좋아하는 것을 솔직히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매우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이제껏 한 페르소나 3에 얽힌 자기 고백이 이 악습관을 떨쳐내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바탕으로 단점까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좋은 팬이며, 또 좋은 리뷰어가 될 수 있겠죠.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페르소나 3가 전한 메시지처럼, 가지고 계신 시간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충실히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추구한 삶의 가치를 발판으로 삼는다면 여러분들 또한 게임의 주인공들과 같이 각자의 생명의 해답에 도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페르소나 3를 사랑하시고, 삶의 여정을 걸어나가는 모든 분들께 저는 이 글로나마 든든한 동료가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빠른 시일 내에 또 다른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결말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시길 바랍니다! (v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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