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바보여!>- 건X소드

by 번뇌즉보리


건 X 소드 (2005) , 타니구치 고로 감독


새해가 되고 처음 본 작품은 건 X 소드입니다. 언젠가 보겠다며 벼르고 있던 중 최근에 들어서야 감상했네요. 위의 포스터를 비롯해 키 비주얼만 놓고 본다면 당최 무슨 만화인지 감도 안 오리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내용물을 뜯어 보니 굉장히 잘 만들어진 수작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주제 의식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분명하며, 애니메이션 본연의 즐거움 또한 잘 추구하고 있습니다. 타니구치 고로 감독의 차기작인 '코드 기아스 : 반역의 를르슈'(2006)가 엄청나게 히트하며, 그의 대표작으로 각광받습니다만, 본작 건 X 소드 또한 충분히 고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근 몇 년 사이에는 인기 게임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에 등장하며 본의 아닌 재조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게임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는 인기를 얻기 어렵습니다. 본작이 재조명을 받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럼, 간단하게 작품에 대해 살펴봅시다.




https://youtu.be/wL_Adc4pxI4?si=RqoFL124iXNWkZYN


OP 테마 'GUN×SWORD'입니다. 긴박한 멜로디로 시작하여, 매력적인 관악기 사운드로 이어지는 독특한 곡입니다. 달리 가사가 없지만 강렬한 곡을 오프닝 테마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카우보이 비밥'(1998)과의 유사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등장인물들을 주욱 나열하는 식의 연출이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연출을 참 좋아합니다. 어쩐지 설렘이 느껴지니까요. 작중 흐름에 따라 캐릭터가 실루엣에서 본모습으로 변하는 디테일 또한 재밌습니다. 이따금씩 오프닝을 스킵하지 않고 보게 됩니다. 물론 곡 자체도 훌륭합니다. OST를 듣고 있으면 비장미가 가득 느껴집니다.


OP 테마 외에도 훌륭한 OST가 여럿 있습니다. 'El Dorado V'나 '무지개의 저편', 'Dann of THRUSDAY'도 만화를 보는 내내 귀를 즐겁게 해 줬습니다. 매 화마다 분위기가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OST 선정이 센스 있어 함께 즐기기 좋습니다.


어째서 건 X 소드?


작품을 관통하는 라이벌리, 반과 레이


제목인 건 X 스워드는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두 주연 캐릭터가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주인공인 반은 채찍처럼 휘어지는 장검을 무기로 사용하며, 반의 라이벌 레이는 일본도 형상의 총을 사용합니다. 두 캐릭터는 모두 작품의 핵심 요소인 복수에 삶을 바치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참 아이러니합니다.


대상은 하나, 노리는 사람은 둘


건 X 소드는 기본적으로 복수극의 양상을 띠고 있는 작품입니다. 결혼식과 관련된 비극을 겪은 주인공이 복수를 한다는 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2003)을 연상시킵니다. 반과 레이는 둘 다 같은 대상인 '갈고리 손톱의 남자'에게 복수하고자 합니다. 복수 대상은 한 사람인데 복수자는 두 사람입니다. 거기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복수를 결코 양보할 수 없습니다. 가히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두 남자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충돌은 필연적입니다. 누군가가 먼저 복수 대상을 처단한다면 남은 한 쪽은 복수 대상을 잃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둘은 작품 내내 끊임없이 부딪힙니다. 그들의 라이벌리에서 기인해 건 X 소드라는 제목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주류 의견입니다.



하지만 작중에서 '총'과 관련된 캐릭터는 한 사람 더 있습니다. 갈고리 손톱의 남자에게 납치된 오빠를 찾기 위해 주인공 반과 함께 여행하는 소녀, 웬디입니다. 그녀는 단순히 반의 여행 동반자 이상의 캐릭터입니다. 후술할 그녀의 행적과, 지니고 있는 '총'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웬디 또한 충분히 '건 X 소드'에서 '건'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일단은 로봇 만화


주역 로봇, '단 오브 서즈데이'

'무법지대를 배경으로 한 웨스턴 느낌의 복수극'이 실제 작품의 메인 요소이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건 X 소드는 로봇 만화입니다. 주인공부터 그 적대 세력까지 모두 로봇에 탑승해 싸웁니다. 필연적으로 로봇의 디자인과 그 액션이 작품의 감상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디자인과 액션 모두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역 로봇은 건 X 소드만의 개성이 담긴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수족이나 관절이 실제 사람의 것과 닮아 있다는 점, 특정한 무기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그 개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조연 로봇들의 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조연 로봇들은 주로 옛날 로봇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용자물'에 대한 리스펙트라고 할 수 있는 '엘도라 파이브'를 그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해당 캐릭터들의 매력은 직접 작품을 감상하며 즐기셨으면 합니다. 로봇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싫어할 수 없는 연출들이 많습니다.


시놉시스, OST, 비주얼... 이렇게 작품 내용 외적인 요소들에 대해 간단히 훑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으로는 스토리를 포함한 작품 전체의 개인적인 감상을 적고자 합니다.



스포일러 주의!




'바보'의 여행



저는 타로 카드에 크게 흥미가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타로 카드의 아르카나 자체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타로 카드의 아르카나를 '바보'의 여행이라고 해석하는 관점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내용인즉, 0번 아르카나인 바보(The Fool)가 여행을 하며 다양한 세상과 마주한 뒤, 끝내 세계(The World)라는 결실에 도달해 인간적으로 성장한다는 해석입니다. 그 이후 바보는 새로운 시작의 앞에 당당히 섭니다. 이러한 왕도적 서사를 좋아하는 건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건 X 소드는 복수극이지만 대체로 유쾌하고 즐겁습니다. 그건 주인공 반이 바보이기 때문입니다.


엔딩 일러스트만 봐도 느껴지는 그의 바보력


반은 최악의 상황을 겪은 새신랑입니다. 누구보다도 행복해야 할 결혼식 당일, 식장에서 신부인 엘레나가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 건 갈고리 손톱의 남자, 반이 복수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반은 그 사건 이후 쭉 갈고리 손톱의 남자를 쫓고 있으며, 그에게 복수하는 것 이외의 목표 따위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은 냉혹한 복수자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바보에 가깝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가게에 있는 모든 조미료를 달라고 한 뒤 가득 뿌려서 먹고, 비행기나 배 등 자신의 발로 걷는 것이 아닌 이동수단을 무서워하며, 사람 대하는 것도 서투른 청년입니다. 함께 여행하는 소녀 웬디가 없었더라면 어딘가에서 굶어 죽을 것만 같습니다.


복수에 관련된 상황에서는 얼굴 표정이 격해집니다. 타니구치 고로 감독 특유의 표정 묘사 연출입니다.


그런 반에게 있어 갈고리 손톱의 남자에 대한 복수는 유일한 '꿈'이자 목표이며 살아가는 의미입니다. 그 이외의 일에서는 매사 시큰둥하며 미적지근한 반응입니다. 남들 보기 창피한 행동만 하거나, 쉽사리 다른 일에 나서지도 않는 반은 그야말로 바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하지만 그런 바보인 만큼 너무나도 솔직하고 순수합니다. 그 솔직함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는 남을 돕기도 합니다. 그것이 반의 매력입니다. 그 매력이 주변인을 미묘하게 끌어당겨, 결과적으로는 복수를 위한 여행에 동참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작중 등장인물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그 매력에 이끌려 계속 다음 화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반의 이러한 성정을 더욱 부각하기 위해, 작품은 '레이'를 통한 대비를 사용합니다.



주인공의 안티테제, 레이



또다른 복수자, 레이 랑그렌


레이 또한 불행한 남자입니다. 갈고리 손톱의 남자에게 아내인 시노를 잃은 뒤, 오직 복수만을 위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반과 너무나 닮은 상황에 놓여 있지만, 행동하는 건 그와 정반대입니다. 애당초 반의 안티테제로 기획된 것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복수를 위한 여행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고 다니는 식으로 인간미를 보이는 반과 달리, 레이는 오직 복수만을 생각합니다. 레이 또한 복수가 '꿈'이며 목표이고 살아가는 의미입니다. 레이는 그 복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자신의 남동생인 조슈아의 설득조차 제대로 들어 주지도 않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웬디의 말에 꼬박꼬박 흔들리는 반과 달리, 레이는 복수 이외의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반이 바보인 반면 레이는 아주 냉철한 복수자입니다.


반과 레이의 대비되는 점은 이것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반은 검을 사용하고 레이는 총을 사용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항부터 시작해서, 반이 탑승하는 로봇인 '단 오브 서즈데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반면 레이의 '볼케인'은 땅에서 올라온다는 점도 그 중 하나입니다. 반이 검은 턱시도만을 고집하는 단벌신사라면 레이는 하얀 동양풍 복장만을 고집한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레이는 '복수를 위해서라면 사람다움 같은 건 거추장스러울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반 또한 복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지만, 레이의 이런 의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눈치였습니다. 같은 목적을 가진 두 사람, 둘 중 어느 쪽의 성향이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가는 작품이 후반부로 접어들며 나타납니다.



작품의 후반부, 레이가 부정하던 반의 '사람다움'에 이끌린 많은 사람들이 반의 복수를 돕는 동료가 됩니다. 그 동료 일당의 마지막 자리는 레이 본인이 차지하게 됩니다. 삶의 방식에 있어 틀린 것은 없고, 오직 다른 것만이 있을 뿐이니 레이를 비판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이라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은 반의 곁으로 레이마저 이끌리게 되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어떤 목표를 갖고 있든, 그 목표로의 길을 놓아 주는 건 바보 같고 순수한, 사람다운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과 레이, 두 사람 다 혼자서는 복수라는 목표의 끝까지 다가갈 수 없었을 겁니다. 결과와 무관히 과정을 소중하게 대한, 반이 걸은 여로는 끝내 복수라는 목표로 이어지는 다리가 됩니다.



꿈, 그리고 복수



갈고리 손톱의 남자


반과 레이, 두 사람의 아내를 앗아간 갈고리 손톱의 남자는 극악무도한 악당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자신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사과를 할 줄도 알고, 식물과 동물을 사랑하는 노인입니다. 자신이 이끄는 조직에 이름조차 붙이지 않는 건 그의 소박한 면모를 잘 드러냅니다.


그의 목표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꿈인 세계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사상을 자신의 것과 통일하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이 만들 괴로움 없는 세상을 가리켜 '행복한 때'라고 지칭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이상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주인공 세력을 막아서는 갈고리 손톱의 동지 또한 그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진심으로 지지하는 이들입니다.


갈고리 손톱의 남자는 반과 레이의 아내가 희생당한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면서도,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한 것이니 이해해 달라는 태도를 보입니다. 갈고리 손톱의 동지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갈고리 손톱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목숨을 필연적으로 희생할 필요가 있으니, '당신들이 죽이지 않아도 어차피 죽는다'는 말로 반과 레이의 복수 자체를 부정합니다. 특히 상술한 대승적 관점인, '갈고리 손톱의 남자의 꿈이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큰 꿈이니, 복수 같은 작은 꿈은 희생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은 몇 차례에 걸쳐 나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이 잘못됐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작품 최후반부에서 레이는 목숨을 걸고 갈고리 손톱의 사상을 부정합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남의 꿈을 빼앗는 짓'이 잘못됐다고 일갈한 레이는 갈고리 손톱의 남자에게 이지선다를 제안합니다. 목숨을 지킬 것인지, 꿈을 지킬 것인지를 선택하라며 갈고리 손톱의 남자에게 총을 쏩니다. 갈고리 손톱의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그 총알을 튕겨내 목숨을 지킵니다. 이후 레이는 경비병들에게 사살당하지만, 그의 복수는 실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갈고리 손톱의 남자가 튕겨낸 총알은 그의 꿈을 이루는 데 핵심적인 장치의 구동부로 날아가 그 사이에 박혔습니다. 목숨을 지킨 갈고리 손톱의 남자는 그토록 기다리던 꿈의 실현에 발목을 잡힌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꿈(레이의 경우 아내와 소박하게 사는 것)을 존중하지 않은 갈고리 손톱의 남자의 꿈은 레이에 의해 한 번 저지당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꿈인 복수를 이룬 레이는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갑니다. 먼저 죽은 아내의 곁입니다. 꿈을 위해서 자신을 버렸던 레이의 여정은 여기서 막을 내립니다.



건 X 소드에서 건을 담당하는 웬디



갈고리 손톱의 남자에게 본인의 꿈을 위해 남의 꿈을 짓밟는 행동의 대가를 가르친 것은 레이입니다. 일순간 갈고리 손톱의 꿈을 좌절시켜 그를 절망에 빠뜨리는 복수를 한 것도 레이입니다. 물론 갈고리 손톱의 남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직접적인 살해로 복수한 반입니다만, '바보'인 반은 갈고리 손톱을 죽이는 것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작품에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다른 요소를 마무리짓는 역할을 맡은 건 웬디였습니다.



행복밖에 없는 세상 같은 건 잘못됐어. 그걸 누군가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것도 틀렸어. 그건 단지 마음의 폭력이야!

웬디는 갈고리 손톱의 남자에게 납치당한 오빠, 미하엘을 찾아 반과 함께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납치당하기 전 오빠가 준 총 한 자루를 소중히 간직하고서 말입니다. 하지만 미하엘은 갈고리 손톱의 남자의 사상에 심취하여, 마음 깊이 찬동하고 있었습니다. '동지를 부정하는 건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지경이었습니다.


보통 악역의 사상을 부정하는 것 또한 주인공의 몫입니다. 하지만 복수밖에 모르는 바보 반은 그런 것에 신경쓸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갈고리 손톱의 남자의 사상을 부정하는 중역은 웬디가 맡았습니다. '동지'인 갈고리 손톱의 남자와 자신의 사상을 동일시하는 오빠, 미하엘을 막아서며 웬디는 상술한 대사를 읊으며 다그칩니다.


실은 미하엘과 웬디는 여행 도중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웬디에게 미하엘은 '자신은 동지의 사상에 찬동하며, 할 일이 있다'는 이유로 동생과 갈라서겠다는 의사를 보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줬던 총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웬디에게는 '너 자신만의 총을 찾아'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미하엘은 웬디와 함께했던 과거를 버리고, 갈고리 손톱의 남자에게 찬동하는 것으로 '자신만의 총'을 찾았습니다. 실제로 미하엘이 탑승하는 로봇인 '사우다데 오브 선데이'의 외형이 총검 형상이기도 합니다.


'여동생을 지켜 줘야 하는 오빠'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남자로서 설 자리를 찾은 미하엘과 달리, 웬디는 여전히 오빠를 생각합니다. 오빠가 쓰레기통에 버린 총을 다시 찾아 여전히 지니고 다녔습니다. 단 한 발만이 장전된 총, 그마저도 제대로 쏠 수 없던 총입니다. 실제로 웬디는 1화에서 자신을 해코지하는 악당들을 향해 총을 겨누지만, 결국 쏘지 못합니다. 그런 웬디를 반이 구해 주며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화에서, 갈고리 손톱의 사상에 진심으로 찬동하는 오빠를 앞에 두고 웬디는 자신만의 총을 찾습니다.



작품 내내 나왔지만 결코 발사된 적 없는 총, 단 한 발만 장전되어 있는 웬디의 총이 꿰뚫은 곳은 오빠의 팔이었습니다. 26화 내내 시청자와 함께한 '건 X 소드' 중 '건'이 그 의미를 다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은 웬디 자신의 개인적 성장을 의미합니다. 웬디는 오빠의 그늘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는 소녀에서, 오빠를 당당히 막아설 수 있는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총알은 갈고리 손톱의 남자에게 찬동한 나머지 자신을 잊고 있던 미하엘에게 소중한 혈육을 일깨우는 한 발이기도 했습니다.(맞은 후 바로 정신이 되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후 미하엘은 갈고리 손톱의 남자의 본질을 부정한 웬디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솔직하게 시인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다고도 생각한다며, 남매 각자가 선택한 길을 걸을 것을 권유합니다. 그리고는 웬디가 떨어뜨렸던 총을 다시 건네주며 '갖고 있어 줬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이리하여 웬디의 총은, 1화부터 시작되어 작품 전반에 걸쳐 등장하던 '총을 건네 주는 오빠'의 장면과 수미상관의 형태로 결말을 맞습니다.



그렇다면 반의 결말은?



'기동전사 건담'(1979)의 결말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결전을 끝마친 주인공이 '자신에게 돌아갈 곳이 있음'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는 결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돌아갈 곳은 그 사람의 원천이며 굳건한 지지 기반입니다.


좌측 기동전사 건담(1979)


복수를 마친 레이가 돌아간 곳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시노가 있는 곳입니다. 결국 아내와 함께할 수 있게 됐으니 레이는 모든 꿈을 이루었습니다.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의 연속이었지만 말입니다.


반 또한 레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오직 복수를 위해서만 살아가고, 그 이상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갈고리 손톱의 남자를 죽이는 것으로 복수를 끝마친 반은 그 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맙니다. 결국 모든 싸움이 끝난 뒤, 반은 동료들 곁을 떠나 홀연히 어딘가로 자취를 감춥니다. '사람 좋은 바보'인 반은 복수가 끝난 뒤의 삶의 의미, 자신이 돌아갈 곳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레이처럼 자신의 아내를 만나러 갈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늘 하던 것처럼 바보처럼 굴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반은 끝내 자신이 돌아갈 곳을 찾습니다. 좀 바보 같은 방식으로.


해후


작은 소녀였던 웬디가 훌쩍 커서 어른이 될 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 늘 하던 것처럼 굶고 다니던 반은 아무 집에나 먹을 것을 동냥하러 들어옵니다. 우연찮게도 그 집이 웬디의 집이었습니다. 재회에 놀란 반의 품에서 동료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이 떨어지고,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으로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결국 반의 사람 좋은 면모에 이끌려 모인 동료들이 반의 돌아갈 곳이 되었다는 결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 복수자 모두 자신의 꿈을 이뤘지만, 결말은 상이합니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 할 것 없이, 두 사람 모두 만족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반의 경우는 복수였습니다. 삶의 원동력은 무한하지 않고 언젠가 덧없이 사라지는 걸까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복수를 마친 반이 기어이 돌아갈 곳을 찾은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얼마든 돌아갈 곳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새로운 삶의 원천을 찾아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반의 여행을 통해 봤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너무나도 슬픈 인생을 바보처럼 즐기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제 감상은 이상입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시청한 만화였지만 여운이 깊게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2025년 들어 처음 본 만화이기도 하고, 이 글이 처음 쓴 리뷰이기도 합니다만, 그럴 만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타니구치 고로 감독의 얼굴 묘사가 일품입니다.


제가 리뷰한 부분 이외에도 재밌는 점이 참 많은 만화입니다. 반과 윌리엄 윌 우의 싸움에서 나타난 '버리는 사랑'과 '버리지 않는 사랑'이라든가, 여러 조연 캐릭터의 매력까지 놓고 보자면 할 말이 더 생깁니다. 더불어 만화 전체에 걸쳐 복선이 깔려 있으며, 끝에 가서는 이 복선들을 모두 회수하며 마무리됩니다. 치밀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주인공의 행적이 모두 유기적으로 이어져 이야기의 마무리를 장식한다는 왕도적 구성을 정말 좋아합니다. 모쪼록 직접 관람하실 때 유심히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두서 없이 쓴 리뷰지만 여기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v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