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라는 장르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요? 최근 서브컬처 속 판타지는 옛날과 비교해서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입니다. 소위 말하는 '이세계물'의 범람이 가장 큰 이유인 듯싶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주인공이 이세계, 주로 판타지 세계로 전이해서 벌어지는 활극을 다룬 작품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 속 판타지 세상은 '새로운 세계상의 제시'였으며 '극복해나가야 하는 별세계와 그 시련'이나, '현실의 은유'였습니다. 현실 속 우리 세상과 전혀 다른 세계상을 제시하는 것으로,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것을 즐기는 인간 본연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배경 속에 몰입하며 독자들의 감각은 첨예해집니다.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감성을 곤두세운 상태에서는, 상투적인 메시지라도 더욱 인상깊게 다가오게 됩니다. 익숙한 붕어빵이라도 편의점에서 파는 것과, 우리 동네에서 처음 보는 노점에서 파는 붕어빵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판타지가 갖는 힘이었습니다. RPG 속 세상을 구하는 모험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든가, 판타지 세상 속 남녀의 절절한 사랑을 통해 메마른 감성을 적신다든가, 좀 더 깊이 나아가자면 발명의 원천이 되기도 했습니다. 환상은 현실과 터무니없이 먼 세상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람들의 힘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판타지는 환상을 통해 우리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환상을 통해 힘을 얻는다는 것이 점점 단순하고 원초적인 방식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된 모험의 길보다는, 애초부터 특정 지위를 갖고 있거나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다는 설정을 채택합니다. 열심히 수련하고 동료들과 힘을 모으는 것보다는 스테이터스 창을 켜 능력치를 올립니다. 유튜브 등지로 가면 두 시간짜리 영화를 십 분 내외로 압축해서 얼른 볼 수 있도록 하는 채널이 성행하는 모양입니다만, 그와 유사하게 판타지도 간소화되고 좀 더 많은 즐거움을 주는 형식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이고깽'(이세계로 간 고등학생이 깽판을 친다)라는 말이 있기도 했는데, 요즘은 아예 '도피형 이세계물'이 범람하는 추세입니다. 아니면 소위 말하는 '슬로우 라이프'의 형태로 이세계에 정착하는 형태도 늘고 있습니다. 환상을 통해 힘을 얻는 것을 넘어, 환상 그 자체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를 환상을 통한 대리 만족 내지는 현실 세계로부터의 도피라고 해석하는 의견이 자주 보입니다. 젊은이들의 삶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으니 '트럭에 치이면 이세계로 전생한다' 같은 농담도 주고받는 것이겠죠. 주인공의 연령층이 소년에서 청년, 중년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면 나이를 먹는 독자에 맞춰 판타지도 나이를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간편하고 손쉬운 즐거움, 괴로운 일로부터의 도피는 요즘 유행하는 '도파민 충전'과도 상통합니다. 답답한 전개는 '고구마'라며 싫증을 내고 '사이다'처럼 통쾌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환호하는 것을 보면, 왜 근래의 판타지 장르가 단순하고 원초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게 되었는지, 특정 형태로 고착화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작품들을 비판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고착화된 기존의 판타지 작품을 깨트리는 신선한 작품 양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예전의 왕도적인 판타지도 지금의 이세계물처럼, 굳어진 하나의 클리셰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많은 창작 속에서 기존의 틀은 결국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조각이 쌓여 다시 틀이 되고, 무언가를 계기로 다시 깨지는 것을 반복하는 게 창작의 흐름일 것입니다. 한편 모든 것은 시장 논리로 작동하는 만큼, 독자의 수요가 향하는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날의 판타지는 현대 독자의 니즈를 충분히 반영한 결과물입니다. 그런 작품들이 현대 독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작품이라면 그 자체로 하나하나 의미가 있고 소중한 작품입니다. 사람들의 삶이 그만큼 팍팍하다는 것의 증명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안타깝긴 합니다만.
이번에 리뷰할 메타포: 리판타지오(이하 메타포)의 감상과도 직결되는 제 관점이라 주절주절 말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한 판타지 작품은 무엇인가요? 그 작품은 어떤 점이 아름다웠으며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자 했나요? 어떤 형태로 여러분의 힘이 되었나요? 이제는 ATLUS와 메타포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합시다.
ATLUS는 일본의 게임 개발사로, 다크 판타지 '진 여신전생' 시리즈와 더불어 주브나일 RPG '페르소나' 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회사입니다. 특히 '진 여신전생'은 여전히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일본 3대 RPG 논쟁(두 자리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고, 남은 한자리에 들어갈 게임이 무엇인가)에서 최우선으로 언급되는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줄곧 이야기한 판타지는 주로 '중세풍의 이세계 배경'의 의미었습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판타지를 생각해 본다면 다크 판타지 내지는 어반 판타지도 얼마든지 판타지의 범주에 들 수 있습니다. 상술한 ATLUS의 두 주력 RPG도 훌륭한 판타지입니다만, ATLUS는 2010년대 중후반에 돌연 중세 판타지 작품을 예고했습니다. 이때 당시의 명칭은 PROJECT Re FANTASY였습니다. 페르소나 3를 대성공으로 이끈 중추 개발진 3인인 하시노 카츠라(프로듀서), 메구로 쇼지(음악), 소에지마 시게노리(캐릭터 디자인)가 뭉쳐 만드는 게임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대를 모으기엔 충분했습니다.
2010년대부터 개발을 시작했으나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였던 탓인지 개발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개발 초기 단계 트레일러 영상을 보면 정말 센스를 알 수 없는 감성이 일품입니다. 게임의 팬이라면 한 번쯤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하여간 메타포는 결국 ATLUS가 35주년이 되는 해인 2024년에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메타포와는 별개로 ATLUS의 2024년 행적은 훌륭했습니다. 상반기엔 페르소나 3 리로드, 하반기에는 진 여신전생 5 V를 연달아 성공시켰습니다. 멀티 플랫폼 출시가 유효했던 점, 두 게임의 작품성, ATLUS의 단단한 팬층이 어우러져 만든 결과였습니다. 두 게임으로 팬들의 기대치가 올라간 상황에서, 메타포는 차후 ATLUS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드는 결정타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메타포가 성공한다면 ATLUS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패한다면 한계를 보이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페르소나 3 리로드는, 물론 언젠가 리뷰할 것이지만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게임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기존 작품의 후광 덕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게임이라는 생각입니다. 진 여신전생 5 벤전스는 기존 작품 자체가 심각하게 아쉬운 작품이었지만, 보완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철저하게 보완해 진 여신전생 5라는 세계를 완성시켰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는 리메이크에 하나는 기존 작품의 확장판이니 참으로 ATLUS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좌우지간 두 작품의 흥행은 메타포의 기대치를 높이는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게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 그래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이 받쳐 주지 못하면 게임이 크게 휘청거리는 까닭입니다. 그 결점이 캐릭터 디자인이든, 배경이든, UI든 말입니다. 특히 이세계 판타지의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세계관과 배경, 등장인물 등 모든 시각적 요소의 퀄리티가 곧 설득력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탄탄하고 섬세한 그래픽 구성을 통해 이세계는 생명력을 얻습니다. 정말 다른 우주에 존재할 법한 세상이라는 감상을 주게 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래픽이 받쳐 주지 못하는 이세계 판타지는 조잡하다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메타포는 시각적 요소에 있어 총력을 기울인 한편,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로도 시각적 요소를 들 수 있습니다.
게임의 얼굴이 되는 캐릭터 디자인부터 살펴보도록 합시다. 메타포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건 페르소나 3부터 ATLUS의 핵심 인재로 자리매김한 소에지마 시게노리입니다. 소에지마 이전 ATLUS 아트의 중추였던 카네코 카즈마(그의 그림은 여전히 ATLUS 게임을 이루고 있습니다)의 후배로 차근차근 성장하여 페르소나 3를 기점으로 만개했습니다. 이후 페르소나 4와 5가 연달아 흥행하며 그의 캐릭터 디자인은 업계 검증을 충분히 마쳤습니다.
선배였던 카네코 카즈마의 무기질적이고 메탈릭한 화풍을 넘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된 소에지마의 캐릭터 디자인은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인물의 생김새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소에지마의 아트워크 자체는 훌륭합니다. 주요 캐릭터들의 디자인은 빼어나며, 저는 옷에 특히 관심이 많은지라 주인공 일행의 패션을 유심하게 봤습니다. 스웨덴 군 모터사이클 재킷을 연상시키는 겉옷을 입은 주인공이나, 귀족의 느낌을 슬림하게 살린 스트롤의 의상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주인공의 패션은 영국 모드족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예로부터 등장인물의 패션에 신경을 쓰던 ATLUS다운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특히 카네코 카즈마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은, 디자이너 본인이 멋들어진 사람이었던 만큼 패션이 개성적입니다.) 호불호를 유발하는 특정 캐릭터의 디자인 또한 이들이 이세계의 주민이라는 점을 두고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흰 피부에 금발 머리 엘프' 같은 식상한 형식에서 벗어나는 것부터가 메타포만의 독자적 세계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세계관 구축과 차별화입니다.
컨셉 아트나 작품 속 경관을 두고 생각해 보면 ATLUS 작품 치고는 배경 구성에도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ATLUS의 주요 작품인 '진 여신전생'과 '페르소나'는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설득력 있는 배경을 만들고자 한다면 현실의 장소를 그대로 옮겨 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진 여신전생 시리즈 같은 경우는 멸망한 세계를 다루지만, 결국 그마저도 멸망한 도쿄입니다. 특히 완전히 붕괴해 이세계나 다름없는 배경인 3의 황야는 미니멀리즘의 극치라고 좋게 평가할 수도 있지만,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시각 또한 존재할 수 있습니다. 3의 오마주라 할 수 있는 5에 가서 보완이 되었지만 그마저도 조금 난해하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세계를 그리는 메타포의 경우는 다릅니다. 작품의 설득력과 생명력을 위해서는 플레이어 입장에서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세상을 그려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메타포의 배경과 맵 디자인 자체는 기준점을 넘었다는 생각입니다. 스카이림 같은 완전한 판타지 세상과는 한참 멀고,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 등 명 JRPG에 비하기도 아쉬운 수준입니다. 하지만 플레이하는 내내 이질감이 들지 않는, ATLUS가 그릴 수 있는 최대한의 판타지 세상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특히 마음에 든 건 위 일러스트에도 나오는 '하늘의 거안'입니다. 주인공의 여행 내내 하늘을 올려다 보면 하늘의 거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 중압감 넘치고 그로테스크한 디자인은 그야말로 ATLUS스럽다고 느껴집니다. 외에도 일부 던전 등의 그래픽적 요소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전부 플레이하고 나서, 여운이 모두 가신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조금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물의 디자인이라든가, 중요하지 않은 맵의 배경 그래픽 자체는 역시 부족합니다. JRPG나 ATLUS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라면 맵 디자인에 지루함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ATLUS가 보완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괴물, '인간'의 디자인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디자인은 중세 네덜란드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을 참고했습니다. 주요 IP가 신화 속 신과 악마를 묘사하는 여신전생 시리즈와 페르소나 시리즈인 만큼, 비인간 디자인에 두각을 보이는 ATLUS입니다. 무생물적인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괴물'로서 기능하게 만든 ATLUS의 센스는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하지만 인간 이외의 몬스터는 팔레트 스왑이 대부분에 종류도 한정적이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것 또한 ATLUS의 전통이라면 전통이지만 말입니다.
한편 UI는 정말 잘 만들어졌습니다. '스테이터스 창'이라는 느낌으로 굳어진 RPG의 UI를 멋지게 표현해냈습니다. 메뉴 창을 여는 동안 지루할 일이 없습니다. 공들인 아트워크와 연출로 메뉴 창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설렙니다. 페르소나 5부터 시작하여 페르소나 3 리로드에 걸쳐 호평을 받은 부분을 더욱 다듬어 완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제작진 인터뷰에서도 UI 표현이 가장 힘들었으며, 몇 번이나 갈아엎었다고 합니다. 과연 정성을 들인 만큼 훌륭한 퀄리티입니다. 이마저도 사람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난해하다며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으나, 기존 게임의 심심한 UI에 비하면 메타포만의 독보적인 매력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메뉴 창 못지 않게 전투 시의 인터페이스도 개성적입니다. 후술하겠지만, 부족한 게임 자체 3D 그래픽을 UI로 어떻게든 보완하려고 했다는 느낌입니다. 공격이나 스킬 사용 등의 메인 연출은 ATLUS 게임의 심심한 연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스킬이나, 협동기인 진테제 사용 버튼을 누르면 이어지는 화면 전환 구성과 연출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재밌는 건, 턴제 게임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전투 다시 하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 시스템의 연출은 위의 하늘의 거안과 연결되는데, 시계 혹은 태양처럼 중앙에 걸린 채 주인공의 전투를 지켜보는 거안과, 시간을 되감는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피해를 입지 않고 전투가 끝나면 거안의 눈을 통해 주인공을 비춰 주는 연출로 이어지는데, 이런 디테일이 좋았습니다.
한편 우측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전투 중 폰트와 UI 사용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내성인 공격을 받을 때는 주변으로 프로텍트 이펙트가 나타나는 등의 형식으로 말입니다. 한글판의 경우 대화 창 글꼴 문제로 많은 지적을 받았습니다만, 그런 문제 이전에 폰트와 UI 사용은 훌륭합니다. 역시 태성적으로 부족한 그래픽의 한계를 보충하기 위해 UI로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입니다.
화면 전환 및 로딩의 연출에 많은 공을 들인 것도 주목할 점 중 하나입니다. 심볼 인카운터(필드에 적 심볼이 돌아다니고, 부딪히는 등 상호작용을 통해 전투 돌입) 등의 방식을 채택하는 JPRG는 로딩으로 인해 루즈해지는 게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드에서 적 조우 -> 적을 향해 공격 -> 로딩 -> 턴제 전투 진입 > 전투 종료 후 로딩을 거쳐 필드 복귀 일반적인 턴제 RPG의 방식은 이러합니다.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를 추구하는 요즘 게이머들에게는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턴제 RPG의 거장 중 거장인 '포켓몬스터'의 최신작은 이런 문제를 간결한 필드 전투 및 별도의 장면 전환 없이 필드 그 자체에서 턴제 전투로 진입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메타포의 경우 약한 적과는 간결한 필드 배틀을 채택했습니다. 턴제 전투의 로딩에는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암전 등 불필요한 화면 효과 없이 전투로 매끄럽게 진행되게끔 만들었습니다. 더불어 상술한 전투 종료 후 결과 화면으로 넘어가는 화면 전환도 매끄럽습니다. 적어도 던전 진행 등 재미있어야 하는 구간에서 로딩을 통해 흐름을 끊는 일을 막기 위해 애쓴 느낌입니다. 유려한 화면 전환과 로딩 진입 연출 등은 그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역시 메인 그래픽인 3D 그래픽은 아쉽습니다. 캐릭터의 얼굴이라든가 자세, 사물이나 의복 표현 등이 2024년의 다른 최신 게임과 비교하면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개발에 착수한 것이 2010년대 중후반이라는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찾은 바로는 페르소나 5와 같은 엔진을 통해 개발했다고 하는데, 페르소나 5 또한 당대 게임들에 비해 뛰어난 3D 그래픽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메타포의 3D 그래픽 아쉬움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한 가지 기대되는 점은, ATLUS의 다른 작품인 진 여신전생 5에서는 언리얼 엔진을 통해 괜찮은 그래픽을 선보였다는 점입니다. 이마저도 엄청나게 좋은 그래픽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좌측과 우측 사진을 비교해 보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알 수 있습니다. 차후 ATLUS에서는 메타포의 UI와 진 여신전생 5의 그래픽을 기대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례적인 점은 2D 애니메이션 컷신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강 어림잡아 생각해 봐도 게임 전체를 걸쳐 나오는 애니메이션 컷신의 분량은 TV 애니메이션 1화 분량(20분 내외)일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오타쿠스러운 요소를 꺼려하는 플레이어에게는 아쉬운 점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오타쿠이기에 좋았습니다. 특히 전작인 페르소나 3 리로드 같은 경우는 중요한 장면임에도 3D 그래픽 컷신으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개인의 취향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저는 부족한 3D 그래픽으로 컷신을 만드는 것보다 2D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만들어 TVA와 비슷한 호소력을 갖는 쪽이 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메타포는 부족한 세계관과 배경을 2D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여주는 느낌이 강했기에, 2D 애니메이션 컷신 사용은 좋은 선택이었다는 감상입니다.
한편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전체적으로 중전기 엘가임(1984)의 오마주가 많습니다. 당장 적을 수 있는 것들만 추려도 다음과 같습니다.
1. 황야를 달리는 기계의 존재(엘가임의 헤비메탈, 메타포의 장갑 전차)
2. 주요 등장인물 구성(주인공과 절친한 남자 동료, 적발 벽안의 여성 동료, 당찬 성격의 여성 연예인 동료 등이 흡사)
3. 엘가임의 메카 디자이너 나가노 마모루가 연재하는 파이브 스타 스토리 속 메카닉과 주인공의 아키타이프 디자인이 유사
4. 몰살당한 주인공의 일족
5. 중단발을 한 시골뜨기 주인공이 입대하기 위해 상경하는 여행을 떠나는 초반부 스토리(와중 도적에게 습격당해 고생하는 것도 흡사)
6. 그런 주인공을 돕는 요정의 존재
그리고 작품을 꿰뚫는 아주 중대한 스포일러 또한 엘가임의 것과 같습니다. 게임을 모두 플레이하신 분이라면 엘가임의 주인공인 '다바 마이로드'에 대해 알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신전생 시리즈에서 주인공의 든든한 파트너로 이미지가 굳어진 픽시는 '성전사 단바인'(1983) 속 요정 참 화우가 모티브입니다. 주인공의 곁에서 여행을 함께하며 도움을 주는 동료입니다. 거기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여신전생의 픽시는 비슷한 바디 수트를 입고 있으며, 주인공에게 도움을 준다는 점을 계승했습니다.
진 여신전생 3을 셀프 오마주한 진 여신전생 5에서도 주인공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작은 악마, 아마노자코가 등장합니다. 여러모로 픽시와 많이 닮았으며, 다분히 의도하고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걸 쉽사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메타포 속 갈리카는 이러한 자사 게임의 셀프 오마주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성전사 단바인의 감독 차기작인 중전기 엘가임 속 리리스 화우에 대한 오마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상술한 유사성을 염두하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이들은 든든한 주인공의 버팀목이 되며, 특히 갈리카의 경우 플레이 하는 내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줍니다.
이렇게 메타포의 비주얼적 요소를 살폈습니다.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35주년 기념작인 만큼, 자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는 느낌입니다. 못하는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잘하는 부분(UI, 캐릭터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35주년 기념작답게 자사 작품에 대한 오마주(픽시와 아마노자코에서 갈리카로 이어지는 주인공의 동반자 등) 또한 충실하게 가져갔습니다. ATLUS의 팬이라면 충분히 만족하며 즐길 만한 그래픽입니다. ATLUS의 팬이 아니라도 서브컬처 마니아라면 기꺼이 즐길 수 있는 그래픽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서브컬처에 흥미가 없거나 평소 타 AAA급 게임을 주로 플레이하는 유저에게는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에 있어 사운드는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게임을 자주 플레이하시는 분들이라면 그 영향력을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인물의 마음을 대변하며 상황을 표현합니다. 이는 비단 게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영상 매체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 보면 ATLUS 사운드 팀은 연봉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수준급의 음악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운드 팀의 노고는 메타포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난 마법은 음악이야!
게임을 시작하고 5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갈리카가 주인공에게 하는 격려입니다. 이전까지는 바람 소리만 들리는 황무지에 덩그러니 서 있던 두 사람이지만, 음악이 깔리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 메마른 땅은 황폐함과 두려움의 상징에서, 저 멀리 보이는 왕도를 향한 여행길이 됩니다. 여태껏 못 본 세상을 향해 달음박질을 하고 싶게 만듭니다. 음악의 가장 원초적인 힘을 강조하는 것으로 모험이 시작됩니다.
https://youtu.be/0uGoRTbcJp0?si=z89g4KG7bRwjcp1O
OST 트랙의 3번 곡, '황야를 가는 자'입니다. 갈리카가 주인공에게 마법을 걸어 들려주는 음악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사정이 괜찮다면 한 번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게임을 하지 않으신 분이라면 이 게임의 분위기를 알 수 있고, 이미 게임을 하신 분이라면 그 순간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하며 가장 많이 들을 전투 BGM을 비롯해 여러 음악에는 '염불'과도 같은 랩이 깔려 있습니다. 이 노랫말은 플레이어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한 것 같습니다. 반복 사용이 질린다는 의견이나, 애초에 염불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메구로 쇼지를 비롯한 사운드 팀의 천재적인 센스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메타포 속에 등장하는 언어는 에스페란토입니다. 에스페란토는 폴란드의 안과 의사 자멘호프가 국제적 소통을 목적으로 만든 인공어입니다. 즉 전 세계 플레이어 그 누구의 모국어도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게임의 주제가 되는 환상 또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사람이 만들어낸 말인 에스페란토로 읊는 염불은 참으로 적절한 선택입니다. 그 누구도 모르는 환상 속 세계를 묘사하는 데 이보다도 좋은 방식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한편 자사 작품의 오마주적 성격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도산 위기에 놓인 ATLUS를 구해내고 대흥행의 길로 인도한 작품 '페르소나 3'는 다양한 호평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RPG이면서도 캐주얼한 분위기의 랩 뮤직을 전투 BGM으로 채택했다는 것도 있습니다. 이후 센스 있는 랩 뮤직은 페르소나 시리즈 OST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페르소나 시리즈의 음악을 총괄한 메구로 쇼지가 본인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멋들어지게 해낸 점은 고무적입니다.
한편 ATLUS는 종종 게임의 흥행과 액막이를 위해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묘에다 고사를 지내는 등 종교적 활동과도 친한 기업입니다. 페르소나 3의 랩 뮤직 또한 방문하던 절의 주지가 엄청 큰 소리로 독경하는 것이 마치 랩 같다는 인상이 남아 유래된 것이라는 설도 본 적 있습니다. 메구로 쇼지 왈, 메타포의 음악은 '종교 음악'이라는 이미지를 두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게임 전체에 걸쳐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 깊게 얽혀 있으니, 메타포 속 세상을 표현하는 데 있어 참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염불과 종교색 등 독특한 매력으로 점철된 메타포의 OST는,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결코 낮은 수준의 음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게임 내내 귀가 즐거웠기에 엄청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메타포는 가장 중요한 전투 시스템으로 '프레스 턴'을 채택했습니다. 아군과 적 모두 일정 갯수의 턴을 갖고 있고, 이 턴의 수만큼 행동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약점을 공격하거나, 공격당하면 턴이 반 개 늘어나고, 공격이 무효화되면 턴을 잃습니다. 실제로는 좀 더 복잡한 시스템이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진 여신전생 3부터 시작하여 4편과 5편에도 모두 적용된 이 프레스 턴 시스템은,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 한 대, 너 한 대로 요약되는 진부한 턴제 RPG 전투에 다양한 전략적 요소를 더해 지루함을 덜었다는 평이 많습니다.
이 프레스 턴 시스템은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걸 증명하듯 ATLUS는 진 여신전생 시리즈 이외의 작품에는 프레스 턴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작품에서 상성은 유지하되 프레스 턴 시스템을 전부 가져오지 않고, 조금씩 변형하여 적용했습니다. 페르소나 시리즈에서는 적의 약점 상성을 공격하면 한 번의 추가 행동 기회를 얻는 '원 모어 시스템'으로, 데빌 서바이버 시리즈에서는 약점을 공격하면 적과 아군의 모든 행동 차례가 끝난 뒤 한 번의 추가 행동 기회를 얻는 '엑스트라 턴' 시스템으로 대체되는 식입니다. 프레스 턴은 매니악한 요소가 많습니다. 깊게 파고들면 끝이 없으며, 다양한 전략이 존재할 수 있는 만큼 강적의 경우 머리 아픈 전투가 강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게임의 매력으로 생각하고 즐기는 진 여신전생 팬들에게는 프레스 턴이 최고의 전투 시스템이겠지만, 캐주얼한 RPG를 표방하는 페르소나에 적용되기에는 너무 복잡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좌우지간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상징이었던 프레스 턴을 메타포는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ATLUS의 온전한 신작 RPG인 만큼 진 여신전생과 페르소나 양측 팬들이 모두 유입될 것을 상정하고도 프레스 턴을 채택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제 생각은 역시 '프레스 턴은 ATLUS의 전매특허 무기'라는 겁니다. 처음 겪어 보면 조금 복잡하지만, 적응하면 이만큼 재미있는 전투 방식이 또 없습니다. ATLUS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에 총력을 기울인 것이 이번 작품, 메타포인 만큼 본인들의 장기를 내보인 것 같습니다.
프레스 턴의 진입장벽과 복잡함에 대해서는 동료들과의 협동 기술인 진테제와 다양한 아이템, 후원자의 부과 효과 등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 있습니다. 진 여신전생 팬들에게는 새로운 요소들과 함께 즐기는 프레스 턴을, 페르소나 시리즈 팬들에게는 어려운 전투를 여러 인물들의 도움으로 이겨나가는 익숙한 구도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저처럼 둘 다 좋아하는 팬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습니다.
주인공보다 약한 소위 '잡몹' 전투 구간을 필드 배틀로 넘길 수 있도록 디자인한 건 좋은 수였습니다. 모든 문화 컨텐츠가 그렇지만, 특히 게임 같은 경우는 더욱 빠른 진행을 추구하는 이용자가 늘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턴제 게임의 전투 방식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듭니다. 앞서 말했듯 포켓몬스터의 신작은 이런 문제점을 시원하게 해결했습니다. 턴제 전투를 과감히 생략하는 것입니다. 메타포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중요하지 않은 배틀을 빠르게 넘길 수 있도록 만들어, 턴제 RPG 특유의 루즈함을 덜어냈습니다.
별개로 던전 진행이나 맵 구성은 아쉽습니다. 경치를 감상할 만큼 공들인 맵은 한두 군데 정도고, 나머지 던전은 제법 칙칙하며 진행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메인 던전도 인상 깊은 맵이 되지 못했지만, 서브 던전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합니다. 썩 재밌지 않은 길찾기, 다 비슷비슷한 배경, 언제나 같은 BGM, 팔레트 스왑의 연속인 몬스터의 사박자가 들어맞아 좋지 않은 평을 듣고 있습니다. 기존 ATLUS 게임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거나, 약과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타포는 ATLUS의 새로운 도약의 효시인 만큼 이러한 부분도 신경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본작의 핵심 요소인 아키타이프입니다. 주인공 일행이 전투 시 변신하게 되는 영웅적 존재입니다. 주인공이 소환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인공이 직접 변신한다는 점에서 ATLUS의 과거 작품인 '디지털 데빌 사가: 아바탈 튜너'를 떠오르게 합니다. 아키타이프는 주인공의 레벨과는 별개로 랭크가 존재하여 따로 육성하게 됩니다. 상위 아키타이프의 습득을 위해서는, 적개는 한 개에서 많게는 세 개 정도의 하위 아키타이프를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다양한 아키타이프를 육성하게 됩니다. 육성을 하며 한 번이라도 습득한 스킬은 '스킬 계승' 기능을 통해 다른 아키타이프에 자유롭게 계승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시스템에서 탈피해 새로운 방식을 채택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자세히 놓고 보면 어딘가 아쉽기는 합니다. 특정 아키타이프의 사용이 권장되지 않는 던전이 존재하는 것처럼, 다양한 아키타이프를 육성하는 것을 게임 자체에서 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육성한 아키타이프로 나만의 전투 방식을 만든다기보다는 '최고 효율을 내는 아키타이프를 만들기 위하여, 특정 스킬의 계승을 하고자 아키타이프를 육성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결국 많은 플레이어들이 최강, 최고 효율 등에 매달리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몇몇 아키타이프의 낮은 활용도는 ATLUS가 기껏 잘 만들어 놓고 활용을 아쉽게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악마 합체를 그리워하는 기존 팬들의 목소리를 생각해 보면, 좀 더 커스터마이즈 요소를 넣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전투 외의 일상 부분은 후원자 시스템이 주 컨텐츠입니다. 후원자 시스템은 페르소나 시리즈의 커뮤 시스템을 계승한 것으로, 주인공이 맺는 인연과 그 깊이가 주인공의 힘이 된다는 것을 '후원자'라는 단어 사용을 통해 좀 더 직접적으로 나타냅니다. 후원자와의 관계가 깊어질 때마다 도움이 되는 능력이 해금되며, 후원자와의 관계가 진전될 수 있도록 주인공의 인격적 스테이터스인 왕의 자질을 기르게 됩니다. 전투 외의 일상은 후원자와의 교류, 왕의 자질 연마, 그리고 앞선 둘과 무관한 요리와 청소 등이 있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동료와 교류하는 것, 그들과 같이 단련하며 왕의 자질을 기르는 것을 놓고 보면 여전히 동료와의 유대 의식을 강조하는 페르소나 시리즈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페르소나 시리즈의 흔적은 또 다른 부분에서 찾을 수 있는데, 날짜와 기간 제한 시스템입니다. 게임 속 날짜가 분명히 존재하며, 플레이어는 이를 의식하여 기간 제한이 있는 작전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것을 골자로 남는 시간에는 후원자 교류 및 그를 위한 왕의 자질 연마라는 진행 방식은 페르소나 시리즈와 무척이나 유사합니다.
진 여신전생 시리즈에서 호평받는 프레스 턴 시스템을 가져왔다면, 페르소나에서는 커뮤 시스템을 가져왔다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나 본인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을 가져온 만큼 취향에 맞다면 십분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요소들입니다. 특히 페르소나의 커뮤 시스템을 형태만 바꿔 가져온 것이나 다름없음에도 그 난이도는 대폭 낮췄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페르소나 시리즈 속 커뮤는 엔딩을 보기 전까지 모든 커뮤를 최고 랭크까지 달성하는, 소위 올커뮤를 위해서 짜여진 대로 행동해야만 하는 정도였습니다. 일정이 굉장히 타이트하며, 선택지를 잘못 골라도 걸림돌이 됩니다. 호감도가 부족한 날에는 커뮤 상대와 만나도 별다른 진전 없이 시간만 흐릅니다. 이런 방식이 플레이어에게 일종의 피로감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는데, 메타포에서는 그 점을 개선했습니다. 후원자는 일단 같이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무조건 이야기가 진전되고, 전체적인 일정 자체도 상당히 느슨하여 별다른 공략 없이도 엔딩 전까지 모든 후원자의 랭크를 최대로 올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적 장점들은 역시 최대한 많은 플레이어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기존 시리즈의 기념이기도 하지만, 기존 시리즈의 탈피이기도 한 메타포에서 기존 시리즈의 단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면 낭패이기 때문입니다. 근래는 엔딩 이후 N회차 플레이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렇다면 엔딩을 보기 전까지 ATLUS가 준비한 요소들을 가득 즐길 수 있도록 게임을 디자인하는 것이 마땅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게임 본편 외적인 내용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제가 ATLUS의 열렬한 팬이다 보니 주절주절 말이 길었습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이제 첫 발을 내딛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메타포는 즐거운 기억도, 할 말도 많은 게임이니 본편 내용을 포함하는 리뷰도 제법 길어질 것 같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그들이 꿈꾸던 세계였다
위 문장은 메타포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는 당연한 것이 판타지 속 세계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클리셰는 매우 흔합니다. 보통 그 '당연한 것'은 과학 기술이나 문화로 시작하여 근래의 이세계 판타지에서는 상식 수준까지 내려온 상황입니다. 이 클리셰는 현실 세계와 판타지 세계의 대비를 통해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미묘한 만족감을 주게 됩니다. 또 그 '당연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 작품의 주제와 직결되기도 하며, 나아가 주인공의 이세계 여행에서 큰 이점 내지는 무기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클리셰는 메타포에서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메타포는 이세계 전이물이 아닙니다. 게임 속 등장인물은 모두 메타포 세계 속의 주민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실 세계 속 관념이 메타포 속 세계에 등장하여 충격을 주느냐? 에 대한 물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답은 게임 초반 나타납니다. 그리고 게임 전체의 스토리와 직결되며, 유저에게는 생각할 여지를 주게 됩니다.
메타포의 세상에 현실 세상의 관념을 끌고 오는 것은 '하늘에 떠오른 왕의 얼굴'(하늘의 거안)입니다. 메타포는 게임의 배경이 되는 유크로니아 연합왕국의 왕이 젊은 군벌인 루이 귀아베른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후 다가온 왕의 장례식 날, 돌연 왕궁이 하늘로 솟구치게 됩니다. 그렇게 떠오른 왕궁의 밑면에는 죽은 왕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왕국의 왕만이 다룰 수 있는, 천재지변급 마법인 '왕의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사후에 왕의 마법이 발동되도록 설계한 왕은, 왕의 마법을 통해 국민들에게 다음 왕을 지명하는 방식에 대해 고지합니다.
나는 선언한다. 국민의 신임을 가장 많이 모은 자가 다음 왕이 될 자격을 얻는다.
종족과 신분의 귀천이 있는 세상에서,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국민의 신임을 가장 많이 모은 자가 다음 왕이 된다는 충격적인 선언으로 국가는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하늘에 떠오른 왕의 눈은 모든 국민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그들이 가슴 깊이 신뢰하는 인물을 파악합니다. 집계된 왕의 후보는 하늘의 거안의 오른쪽 눈과, 왕국 곳곳에 나타난 비석에 얼굴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지지도가 높을수록 커다랗게 말입니다.
선대 왕이 유크로니아 왕국에 끌고 온 것은 다름아닌 선거, 나아가 민주주의였습니다. 국민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권리를 쥐고 있으며, 이를 선거 과정을 통해 행사한다는 것은 현실 속 민주주의 형태입니다. 최근 민감한 주제인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된 요소입니다. 게임에 정치가 엮이는 것은 호불호가 명확합니다. 특히 어느 정치적 성향을 강요하는 게임을 탐탁잖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메타포의 경우는 선거의 형태를 가지고 온 것뿐, 어느 정치적 이념을 표방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몫입니다.
메타포의 디렉터, 하시노 카츠라는 페르소나 시리즈 때부터 게임에 자신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게이머에게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시노는 '게이머들은 메시지를 느끼고 싶어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니 각자 원하는 대로 느끼면 되고, 게임을 즐겁게 즐기고 덤으로 플레이어들이 뭔가 얻어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이 의견에 깊이 공감하며, 앞으로의 게임이 나아가야 할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즐기는 것에 치중해 메시지를 잃는다면 예술로서 아쉬운 일이고, 메시지에 너무 치중한 반면 즐길거리가 부족하다면 게임으로서의 본질을 위협받게 됩니다. 그 사이에서 충돌을 최소화하는 형태는 '플레이어가 직접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메타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충분히 곱씹으며 고민해 봤다면, 게임을 마칠 쯤에는 주인공의 레벨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 본인의 의식 또한 성장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 선거 마법의 개시로 누구나 왕위를 노릴 수 있게 되며 혼돈에 빠진 유크로니아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간 부정부패를 일삼던 관료들은 처세에 대해 고민하고, 하루아침에 국왕 선출의 권리를 쥐게 된 시민들 또한 고민합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왕위를 노리는 후보자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유크로니아 왕국의 국교인 신성교가 주관하여, 왕위를 노리는 후보자들이 자신의 실력을 보이는 왕권경기회가 개최되는 것이 게임의 메인 스토리입니다. 왕권경기회에는 다양한 야심가들이 입후보하게 되는데, 이들의 사상 또한 전부 현실 속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국가 단결을 위해 군사력 향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나아가 특정 종족으로만 구성된 단일 국가를 수립하고자 하는 후보는 현실 속 어느 인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청년들에게 세금을 더 걷고 이를 그간 왕국을 위해 이바지한 노인들에게 연금으로 지급하자는 후보도 있습니다. 반면 세금을 면제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도 있으며, 부자들을 처단하여 부의 재분배를 실현하고자 하는 후보도 있습니다. 외에도 동물 보호 및 고차원 존재로의 진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후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후보 등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상을 설파합니다.
선거. '현실 세계에서는 당연하지만 판타지 세상에서는 없는 것'이라는 클리셰 안에서도 참으로 파격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에 있어 필수적인 선거라는 요소는, 단순히 파격적인 것을 넘어 메타포라는 환상 세계에다 현실 세계를 끌어당기게 됩니다. 선거 마법의 선언으로 현실 세계에나 있을 법한 이념들(노인 복지, 부의 재분배 등)이 환상 세계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주인공도 왕권경기회에 입후보한 이상, 다른 후보자들과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은 명백한 판타지 세계 속 싸움이지만, 타 후보자들의 이상과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는 현실 속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됩니다. 이세계 주민들의 입을 빌려 말하는 우리 현실 속 문제들은, 뉴스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검과 사상끼리 충돌하는 것이 이상 세계를 향한 고찰의 시발점이 됩니다. 적어도 어딘가 극단적인 타 후보자들의 사상을 부정하는 형태로부터 시작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메타포를 12월에 플레이했는데, 우리나라가 한바탕 시끄러운 와중 선거를 주제로 삼은 게임을 한다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고, 매사를 정치와 엮는 건 썩 좋은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세상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에게 적잖은 의미를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디렉터인 하시노 카츠라가 공인하길, 메타포의 테마는 불안과 마주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느끼는 불안, 그리고 그것과 마주하는 모습은 게임의 시작부터 끝에 걸쳐 계속 나타납니다. 메타포 속 세상의 마법은 불안과 맞서고자 발현되는 힘입니다. '지금부터는 두려움도, 불안도, 그대의 빛', 아키타이프를 각성할 때마다 들려오는 수수께끼의 목소리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한편 페르소나 시리즈 속 페르소나는 곤경에 맞서기 위한 인격의 가면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미지의 존재로 변신, 내지는 소환하여 싸운다는 형식은 비슷하지만, 그 개념을 놓고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테마를 심플하게 가져가고 싶었다.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감정 중 하나가 불안이다. 사람이 가장 불안하면 심장이 마구 떨리고 힘들지 않나. 그때 스스로의 심장을 꺼내서 자신에게 '떨지 마'라고 하는 느낌을 모토로 했다. 불안할 때 남의 힘을 빌려서 극복하지 않고, 자신의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변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영웅상을 꺼내고자 했다. 여러분도 불안할 때 오히려 더 용감한 내가 나타나기도 하지 않나. 그런 느낌으로 아키타이프를 만들고자 했다.
https://inven.co.kr/webzine/news/?news=299660 인벤 하시노 카츠라 인터뷰 中
메타포는 마력이나 정령 같은 보편적인 판타지 관념을 사용하지 않고 이능(異能)을 잘 묘사했습니다.(힘의 원천에 대해서는 마그라라는 에너지원을 사용해 표현했습니다만, 이는 후술하겠습니다.) 주인공과 그 동료들은 각자가 가진 불안과 맞서며 아키타이프를 각성합니다. 불안을 극복하는 것으로 성장하는 인물상을 보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불안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은 그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불안은 사람을 각성시키기보다는, 좀먹는 끝에 파멸하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형태의 불안, 그 부정적 면모 또한 게임에서 잘 표현됩니다. 주인공 일행의 불안과 맞서는 힘, 아키타이프와 대립하는 형태로 말입니다.
스토리의 근간이 되는 왕의 마법의 실상은 제법 비극적인 것이었습니다. 불안은 마그라라는 에너지원을 촉발시키고, 그 마그라를 온전히 다뤄 사용하는 것이 마법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체제에 억압되는 국민들은 불안을 누군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국민들의 불안과 그 마그라를 한데 모으는 것이 왕홀입니다. 그 어마어마한 양의 마그라를 다뤄 발동하는 마법이 천재지변급 마법인, 왕의 마법이었던 것입니다. 왕위는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국민들의 불안을 떠맡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종족 차별, 신분 제도와 같은 저항할 수 없는 사회의 폐단 속에서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한 채 안주한다면 사람은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불안과 맞설 수 없다는 슬픈 증명이 되고 맙니다. 주인공 일행은 이 현실 속을 아키타이프와 함께 헤쳐나가며 사람이 지닌 본연의 힘을 세상에 내보입니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괴물인 인간 또한 그 불안의 희생양이었습니다. 게임 후반부, 루이는 주인공의 마그라를 폭주시켜 주인공을 인간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 사건을 해결하며 드러나는 실상은 제법 충격적입니다. 몸속의 마그라가 폭주하여 생겨난 게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마그라는 불안에서 나타나는 힘의 원천입니다. 자신의 불안에 집어삼켜진 사람의 모습. 주인공 일행은 그것과 싸워 오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메타포는 불안이라는 주제를 판타지 세상 속에 훌륭하게 녹여냈습니다. 불안에 집어삼켜지거나,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의 삶이라는 것만 놓고 본다면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 형태를 마법과 아키타이프, 인간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로 강조한 것뿐입니다. 게임을 꿰뚫는 핵심 요소들에 걸쳐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은 훌륭했습니다. 화면 밖의 플레이어도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법한 내용을 던진다는 점을 놓고 보면, 역시 메타포는 제목 그대로 현실과 환상에 걸쳐 은유를 하고 있습니다.
게임 제목인 메타포, 즉 현실과 환상 사이의 은유 또한 게임 전체에 걸쳐 꾸준히 나타납니다. 주된 표현 수단은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환상 소설입니다. 작품 속 수수께끼의 등장인물인 모어가 어느 세상을 여행하며 쓴 견문록 형태의 소설, 그 내용은 이상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향이라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종족으로 인한 차별이 없으며,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모두의 의견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현대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과 함께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은 이상향을 꿈꿉니다. 게임 속 캐치프레이즈 그대로, 우리의 현실이 그들의 이상향인 셈입니다.
하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이상향을 꿈꾸고 동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설 속 내용되로 된다면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폐단을 짚는 사람도 있으며, 위 사진처럼 냉소적이고 통렬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사는 현실 사회와 판타지 속 세상, 둘의 거듭된 비교와 강조를 통해 게임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두 세상 모두 완전한 이상향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두 세상은 서로를 끊임없이 동경하지만, 결국 그 어느 쪽도 완전한 이상향이나 도피처가 될 수 없습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진정한 이상 세계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고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 또한 무조건적인 이상향이 아니라는 점을 제시하는 일환으로, 게임 후반부 충격적인 반전이 드러납니다.
메타포 속 세상은 오늘날의 현대 사회가 멸망한 뒤의 세상이며, 모두가 꿈꾸던 환상 소설 속 이야기는 멸망 전 세상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환상 소설 속 이상향을 만들어 봤자 멸망한 구세계를 답습하는 것이 될 뿐입니다. 이 연출을 통해 메타포는 우리가 사는 현실과 판타지 세계를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두 세상을 넘어선 이상 세계에 대해 고민하게끔 플레이어를 유도합니다. 그리고 게임 종반부, 기어이 두 세계는 특정한 지점으로 맞물리게 됩니다.
모어가 쓴 환상 소설은 여행을 하고 쓴 견문록이 아니었습니다. 멸망한 구세계의 기록을 소설의 형태로 쓴 것이었습니다. 숙적 루이에게 패배해 죽기 직전이었던 주인공을 아카데메이아로 끌고 온 모어는 주인공과 자신이 현실과 환상의 틈새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제껏 살아온 판타지 세상은 환상이며, 자신이 집필한 소설 속 세계야말로 현실임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이 현실의 주민이 될 것을 권유합니다.
판타지 세상에 현실 세상을 끌어당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어이 맞물리게 만들었습니다. 이제껏 게임 속에서 나타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의 종착점입니다.(선거 마법 이후 현대 사회의 이념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판타지 세상, 판타지 세상이 현대 사회의 멸망 이후 세계라는 점) 최근 종종 보이는 '제 4의 벽'을 넘나드는 연출입니다. 여타 판타지의 속 편한 '이세계'라는 설정에서 탈각해 플레이어가 한층 더 몰입할 수 있게 만듭니다.
주인공은 그 현실과 환상의 경계 사이에서 걸음을 내딛는 것을 거부합니다. 환상 속 세계를 현실로 삼아 도피하지 않고, 바꿀 수 없을 것만 같은 자신의 현실에 맞서고자 합니다. 실패를 겪어 이상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가 된, 자신의 아버지 모어와 충돌하면서 말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처음 태어난 마법이 들려오는 것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여행이 환상이 아니었다고 깨닫게 됩니다. 게임의 시작과 끝에 갈리카의 음악 마법이라는 동일한 연출을 사용하는 것은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괴롭고 슬픈 현실을 살면서도, 환상 소설을 통해 힘을 얻은 주인공은 자신의 이상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겠다고 선언합니다.
진정한 이상은 그 어느 세계도 아닌, 끊임없이 탐구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 그 과정에 있어 환상은 사람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다는 것을 시사한 주인공은 마지막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숙적 루이를 무찌르고 왕위에 올라,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기 직전, 모어의 목소리를 통해 진정한 왕의 마법이 밝혀지게 됩니다. 왕의 마법의 목적은 그저 인도를 받는 것이었으며, 하늘로 떠오른 왕궁이나 선거의 마법 등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미덕을 잃은 유크로니아에서 다시 한번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탐구자'인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해, 위대한 탐구자의 인도를 받는 것. 왕의 마법의 기획이란 이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갑자기 왕의 머리에 불현듯 이세계의 말과 이름들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왕은 그것들을 왕의 마법의 설계도인 두루마리에다 필사적으로 써 내려갔습니다. 환상 세계의 입장에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의 말과 이름으로 가득한 설계도. 중요한 건 게임을 해 보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만, 그 두루마리의 마지막에는 'The Great Seeker'(위대한 탐구자)의 이름으로 게임 시작 시 입력한 플레이어의 이름(주인공의 이름과는 별개)이 적혀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겠습니다.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에도 '위대한 탐구자'의 그림과 이름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엔딩 크레딧은 왕의 마법의 술식이 적힌 두루마리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두루마리의 끝부분에 무수히 많은 이세계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마지막은 위대한 탐구자인 플레이어의 이름으로 장식되었다는 것. 왕의 마법은 위대한 탐구자인 플레이어의 인도를 받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왕의 마법은 메타포: 리판타지오라는 게임 그 자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크레딧에 올라오는 개발자들의 이름은 왕의 마법이 발동(=게임이 성립)하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이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마법을 통해 환상 속 세상으로 온 플레이어는 주인공(왕자)을 이끄는 인도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메타포 세상 속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게 있어 환상이었던 플레이어와 그의 사회가 주인공을 인도하고 이상향에 대해 꿈꿀 수 있는 힘을 줬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환상에게 힘을 줬듯, 환상 속 세상인 게임도 우리에게 어떠한 힘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꿈꿀 수 있는 원동력, 혹은 그 이상의 힘을 말입니다. 게임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며, 이를 위해 현실과 환상을 끊임없이 대비하고 넘나들다 최후에는 제 4의 벽을 부수게 되었습니다. 환상은 단순히 무력한 허구가 아니며,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는 사실. 하늘을 나는 꿈에서 비행기를 만드는 등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진리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게임은 끝나게 됩니다. 환상이라는 소재를 갖고 이만한 스토리텔링을 해낸다는 것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디렉터는 메타포의 또다른 핵심으로 여행을 강조했습니다. 판타지 세상이 배경인 작품이라면 으레 여행을 하게 되지만, 메타포에서 다루는 여행은 좀 더 본격적입니다. 특히 현대인에게 정말 여행을 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시간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각 장소를 이동하는 데에 일정 시간이 걸리고, 여행하는 동안 낮과 밤에 걸쳐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게임으로서 탐험적 요소 자체는 부족하지만, 각 장소의 이동 중 다양한 경관을 삽입하여 동료들과 감상을 주고받게 하는 것으로 정말 여행을 한다는 느낌을 낼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여행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여행 도중 생각지도 못한 일에 맞닥뜨리기도 하며, 밤이 되면 안전이 불분명한 야영을 하게 됩니다. 요리와 청소, 빨래, 목욕이나 독서 등 여행을 하며 할 수 있는 컨텐츠는 정말 많습니다.
전차를 타고 여행하는 시간이 긴 만큼, 그 여행 속에서 주인공은 많이 성장하게 됩니다. 동료와 경치를 구경하며 견식을 쌓기도 하고, 달리는 전차 위에서 무기를 손질하며 담력을 기르기도 합니다. 조우한 적과 싸워 이겨 기량을 늘리기도 하는 한편, 각자의 이상을 가진 후보자와 부딪히는 것은 오직 장갑 전차를 타고 하는 여행 도중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상술한 디렉터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달리는 전차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 많은 일이 있는 것은 의도된 사항입니다. 특히 장갑 전차가 동물의 다리 형태를 하고 있어 직접 대지를 달린다는 점이 인상깊습니다. 두 발로 직접 달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큰 단락으로 다루지는 못했지만, 정치 외에도 메타포는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여행과 여행 속 후원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여러 논제가 드러납니다. 지방 자치, 부정부패, 신분제, 차별 등 현실 세상에도 만연한 문제점을 메타포 세상 속 일들을 통해 고찰할 수 있습니다. 제가 특히 눈길이 갔던 건 종교였습니다. 종교는 게임의 메인 스토리와 보다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국교인 신성교가 타 종교를 탄압하면서 그로 인해 고통받는 종족의 존재, 타락한 종교가 이권을 쥐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등 게임 속 종교는 많은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자연스레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으로 유도됩니다만, 게임은 후반부에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 속 부패한 종교만 마주하다 보니 잊고 만 종교의 순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며, 역시 이상적인 세상이란 그 어느 극단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세상이어야 함을 상기했습니다. 굳이 이 부분이 아니더라도 플레이어는 여행 속에서 많은 논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거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순간, 여행을 통해 성장하는 것은 주인공 일행만이 아니게 됩니다. 플레이어 또한 성장하는 것입니다. 모든 게임 속 여행은 플레이어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지만, 메타포에서 유독 이 느낌이 심하게 드는 이유는 아마 현실 세상의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또한 환상과 현실의 적절한 은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을 통해 성장하고, 끝내 그 여행 속 요소들이 주인공에게 힘이 된다'라는 왕도적 구성은 흔한 결말입니다. 하지만 메타포는 이 흔한 결말이 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데, 그 이유는 역시 리얼한 여행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에 신경쓰며 다양한 곳을 둘러보고, 그 견문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 현실의 여행과 흡사합니다. 플레이어는 왕도를 나와 여러 지역을 거쳐 끝내 왕도로 돌아오는 긴 여행에 진정으로 함께한 것입니다. 주인공이 성장한 만큼 플레이어 또한 성장했기에 메타포 속 여행이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기존 ATLUS 게임과는 다르게, 메타포는 주인공이 말을 합니다. 이를 통해 분명한 성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디폴트 네임 또한 없습니다. 이제껏 플레이어의 분신으로 기능할 수 있게끔 과묵한 주인공을 주로 만들어 왔지만, 이번 메타포에서는 플레이어와 주인공을 철저히 분리했습니다. 이는 현실의 플레이어가 주인공의 인도자 역할이었기 때문이며, 현실이 환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적으로는 현실과 환상 사이 은유라는 게임 제목에 걸맞게, 두 세상이 서로 가까워지는 것을 통해 스토리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판타지 세상을 통해 풀어낸 현실 세상의 문제도, 불안과 맞선다는 게임의 핵심 주제도 어색하지 않게 잘 녹아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왕도적 스토리를 취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점 투성이인 주인공이 여행을 하며 성장하여 영웅이 된다는 건 시대를 막론하고 감동을 줍니다만, 자세히 놓고 보면 아쉬운 점들도 있습니다. 이제껏 스토리에 대한 칭찬을 엄청 했으니 약간 아쉬운 점 위주로 이야기를 해 보며 총평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선 모든 인물들의 성장이 주인공과의 교류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 작위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 주인공이 끼어들지 않은 인물 간의 관계나 상호작용, 나아가 그것을 통한 성장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모든 사건과 인물은 경직되어 있다가 주인공으로 인해 변화하고 나아가게 됩니다. 물론 주인공을 강조하고 인연을 강조하는 ATLUS 게임의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런 내용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ATLUS의 팬이며 오랜 플레이어라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ATLUS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라면 이런 스토리 구성이 조금 아쉽게 느껴질 것도 같습니다. 특히 미천한 종족인 줄 알았던 주인공이 왕자나 다름없는 존재였다는 핵심 반전이 호불호가 명확한 듯합니다. 스토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의견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기껏 신분과 종족에 관계 없이 왕을 선정한다고 해 놓은 상황에서, 주인공이 왕자인 점을 앞세우게 되면 왕의 마법의 의미가 퇴색되는 느낌입니다. 게임 속 NPC들의 대화에서 '결국 혈연으로 왕을 뽑는 거냐'며 투덜거리는 내용이 있는 걸로 보아 ATLUS 또한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한편 후반부에 들어 급전개가 된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은 전개의 충격과 고양감으로 인해 느끼기 어려웠습니다만, 게임을 플레이하고 제법 시간이 지나 리뷰를 작성하는 지금 생각해 보니 아쉽긴 합니다. ATLUS 특유의 스토리 뒷심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르소나 5에서는 특히 이 부분으로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알타베리로 진입하면서부터 순식간에 진행되는 주요 인물들의 사망, 왕자로 각성하는 주인공 등 스토리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메타포의 스토리는 결코 용두사미라고 할 수 없는 스토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의 급전개는 분량이 한정된 작품에 있어 필연적인 것이며, 메타포는 그 와중에도 연출과 메시지가 퇴색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스토리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는 데에는 역시 연출적 장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2D 애니메이션 컷신과 3D 컷신을 적절하게 활용하였으며, 중요한 부분에서의 연출 또한 좋았습니다.(모어가 현실 세상으로 주인공을 데려갈 때 주변의 벽이 무너지고 교차로가 나오는 연출 등) 아키타이프 각성 장면의 연출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저는 역시 호입니다. 게임 곳곳에서 가극 느낌이 나는 장면이 있는데, 아키타이프 각성 장면도 그러합니다(외에는 주나의 공연이나 조안나를 향한 하이자메의 호소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배경이나 대화 방식으로 인해 뮤지컬과도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마치 제 4의 벽 너머에 있는 플레이어를 관중으로 의식하고 진행되는 것 같아 신선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훌륭한 스토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이고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와 여운도 좋습니다. 앞서 말한 단점들은 결국 ATLUS의 게임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것들이기에, 앞으로 극복해나가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 편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스토리에서도 ATLUS는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량을 보였다는 게 저의 감상입니다. 플레이하는 동안은 몰입이 깨지거나 집중이 흐려지는 부분 없이 환상 속 세계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ATLUS 게임을 해본 적이 있으시거나, 서브컬처 스토리에 익숙한 플레이어라면 즐겁게 진행할 수 있는 스토리입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들이라면 아마 메타포를 전부 플레이하셨을 것 같습니다. 메타포는 ATLUS 35주년 기념 작품으로, 자사 작품의 수많은 오마주가 들어 있습니다. 그 오마주를 이 시점에서 기억나는 것들 위주로 가볍게 서술하고자 합니다. 업로드한 후에도 생각나는 게 있다면 내용을 추가할 테니, 여러분들도 제가 놓친 것이 있다면 댓글로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작품의 메인 빌런, 루이 귀아베른에 대해서입니다. 게임 속에서는 귀아베른을 생략하고 '루이'라는 이름으로 지겹게 불립니다. 거기서 저는 ATLUS의 특정 캐릭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작 여신전생 시리즈에 등장하는 루시퍼입니다. 루시퍼가 사람의 형태로 변신하여 나타날 때마다 꼬박꼬박 '루이 사이퍼'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것은 여신전생 시리즈의 전통입니다. 새하얀 피부에 백금발이라는 점도 루이 사이퍼와 닮아 있습니다.
최후반부 아키타이프를 각성한 루이의 모습은 여신전생 시리즈의 악마 '루시펠'과 닮아 있습니다. 루시펠이 루시퍼의 이전 모습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결국 루이의 모티브는 자사 게임의 루시퍼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카리스마가 종극에는 모조리 무너졌다는 점에서 역시 루시퍼를 따라잡기엔 한참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더해서 포든과 루이,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삼자 대립 구도는 여신전생 시리즈의 로우, 카오스, 뉴트럴의 삼자 대립 구도를 연상시킵니다. 여신전생 시리즈에서도 로우는 주로 굳건한 종교적 세력, 카오스는 힘을 추구하는 신진 세력, 뉴트럴은 그 어느 쪽에도 구애받지 않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입니다.
용궁 신전 지하의 유적, 신주쿠노미야코는 그 자체로 오마주입니다. 신 세계수의 미궁에 등장하는 신주쿠노미야코의 맵을 그대로 재현해 놨습니다. 지도를 열어 던전 구도를 보면 완벽히 똑같습니다. 한편 '던전을 내려가자 미지의 도시가 펼쳐진다'는 점에서는 진 여신전생 4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데빌 서머너와 페르소나 마스터 또한 그 자체로 오마주 성격이 강합니다. 이 두 아키타이프는 각각 '가면'과 '소환 매개체'를 만들어 스킬을 해금합니다. 이 가면과 소환 매개체 제조에 들어가는 아이템들은 페르소나 시리즈와 여신전생 시리즈를 해 본 플레이어라면 익숙한 이름들을 하고 있습니다. 가면 제작에 들어가는 아이템인 '백면' 앞에 붙는 수식어는 페르소나 시리즈 속 아르카나입니다.(운명의 백면, 연인의 백면 등) 소환 매개체 제작에 들어가는 아이템인 '부적' 앞에 붙는 수식어는 여신전생 시리즈 속 악마의 종족입니다.(군신의 부적, 천사의 부적 등)
소환사 아키타이프의 상위 아키타이프는 데빌 서머너입니다. 이름 그대로 여신전생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마들을 소환하여 싸웁니다. 상위 아키타이프인 로얄 서머너 이수를 위해서는 '데빌 서머너'와 '소울 해커'를 육성 완료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사 게임 중 '데빌 서머너 소울 해커즈'의 오마주입니다.
데빌 서머너 소울 해커즈의 오마주는 또 있습니다. 우선 MAG라는 화폐 단위의 사용입니다. 구작 여신전생에서는 MAG가 '마그네타이트'의 약자로서 악마들을 현실에 소환하는 데 필요한 물질이라는 설정이었습니다. 본 작품의 MAG는 마그라의 약자이므로 둘 사이 관련은 없지만 같은 약자를 표기하는 것만으로 ATLUS 팬들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특히 MAG를 돈으로 환급하는 시스템의 존재가 큽니다. 실제로 데빌 서머너 소울 해커즈에서는 MAG를 돈으로 바꾸는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피델리오와 바질리오는 페르소나 3의 아마다와 아라가키의 관계성과 닮아 있습니다. 피델리오 쪽은 아마다와 성우가 동일합니다. 바질리오는 부츠컷 바지와 뾰족한 구두, 긴 머리라는 외관부터 시작해서 도끼를 사용하며 요리를 좋아한다는 점이 같습니다. 둘 중 한 명이 죽은 뒤 남는 한 쪽이 성장한다는 전개 또한 흡사합니다.
서술할 만한 건 대충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자사 오마주는 외에도 많지만, 너무 명료해 알아보기 쉬운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ATLUS의 최신작, 메타포는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우선 여신전생과 페르소나라는 거대 시리즈에서 벗어나 ATLUS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환상을 대리 만족이나 도피처로 생각하는 풍조가 짙어진 근래의 서브컬처 판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오기 충분한 작품입니다. 여는 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점점 판타지가 일종의 도피처처럼 되어 가는 와중에, 환상을 통해 현실을 은유하며 두 세상의 빛과 그림자를 보였습니다.
좋아하는 판타지가 있고, 거기서 활력을 얻어 본 적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대한 탐구자'로서 메타포의 세상 속으로 초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힘들 때나 즐거울 때, 어릴 적과 나이가 들어서도. 어느 순간에든 여러분들이 탐구한 환상이 여러분들의 현실을 떠받치는 힘이 된다는 것. 그것을 바탕으로 각자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라'
메타포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근본적인 말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제 4의 벽을 넘나드는 미래적인 연출을 통해 고전적인 메시지를 전했다는 점이 더욱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저는 결국 메타포를 플레이하는 것으로 감명을 받아 이렇게 또 하나의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아 글이 엄청 길어졌고, 그만큼 내용도 아쉬운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우선 썼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자 합니다. 이 또한 메타포에서 말하는 '환상이 현실에 힘을 주는' 경우입니다. 환상 속 세상을 여행하며 얻은 에너지와 감상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됐으니까 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도, 각자가 좋아하는 환상을 마음 깊이 즐기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환상은 분명히 삶을 떠받드는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여러분들이 원하는 이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면, 언젠가 분명히 이 세상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리라 믿습니다. 고작 게임 하나를 플레이하고 하는 말이니 허황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메타포 속 주인공의 여행 또한 한 권의 환상 소설만을 안고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차근차근 할 수 있을 겁니다. '환상이란 무력한 허구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멋지게 해내는 우리가 됩시다.
게임적 측면으로 놓고 보자면, ATLUS의 열렬한 팬인 저는 플레이하는 내내 만족했으며 어느 요소 하나 버릴 것 없이 알뜰하게 즐겼습니다. ATLUS의 팬이 아니더라도 코드만 맞는다면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1회차에 100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게임 본연이 주는 즐거움을 이만큼 만끽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돌아보면 2024년은 ATLUS 덕에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어찌됐건 한 해를 삼등분해 ATLUS 게임을 하며 보냈으니까요. 메타포는 ATLUS 기술의 집대성이라는 의견에 한치의 이견도 없습니다. ATLUS라서 재밌는 부분, ATLUS라서 아쉬운 부분이 혼재합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끔 만드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에도 이견이 없습니다. TGA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만큼 선전했다는 감상입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길었던 메타포 리뷰가 마무리됐습니다. 2024년 한 게임 중 가장 인상 깊었고 생각도 많이 한 게임이다 보니 이렇게 긴 글이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만족스럽습니다. 게임을 하며 느꼈던 대부분의 감상을 이 글 안에 표현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멋진 경험을 하게 해 준 ATLUS와 환상 속 친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v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