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를 주름잡았던 것은 흔히들 말하는 '세기말 감성'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1997년 7월 지구 멸망 예언부터 시작해서, 밀레니엄 버그를 비롯한 각종 인류 종말론이 성행했습니다. 태동하기 시작한 정보화 사회를 바탕으로 다양한 불안 정서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습니다. 실제로도 여러 국가의 경제 위기나 사이비 종교의 활개, 냉전 종식 이후의 혼란 등 다양한 요소가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을 유발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창작물은 흔히 인류의 멸망이나 그 이후, 나아가서는 좀 더 본질적인 불안을 다루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문화적으로 가장 찬란한 시기였던 1900년대와의 결별이 내심 아쉬웠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세기말 창작물의 음울한 정서는 서브컬처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은 인류가 한 번 멸망에 가까운 시련을 겪고 간신히 살아남은 세상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속 전개와 인물의 정서도 사람의 내면 속 우울을 건드립니다. '카우보이 비밥'(1998)은 펑키한 분위기로 중화를 했다지만, 역시 그 바탕은 달이 파괴되고 그 파편이 지구로 추락해 엉망이 된 세상입니다. 게임으로 넘어가자면 '파이널 판타지 7'(1997)을 들 수 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여신전생 시리즈' 또한 세기말 감성의 대표주자입니다.
이들을 단순히 '세기말적 음울한 정서'로 요약하는 것은 명백한 실례입니다. 당시 풍조에 편승하는 성격으로, 혹은 작품의 메시지 전달을 위해 그런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그 끝에는 인간의 성장 내지는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세기말 창작물도 많이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예시로 든 작품들은 모두 그렇습니다.
유독 길고 어두웠던 세기말의 밤을 지나 도래한 새천년의 아침은 예상보다 더 밝았습니다. 멸망이나 인류 근간을 뒤흔드는 대사건도 없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나날이 혁신을 이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삶도 풍부해졌습니다. 멸망에 대한 공포와 사회 혼란이 사그라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서브컬처도 자연스럽게 음울한 정서에서 탈피하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가볍고 상업성 짙은 애니메이션, 신세대 오타쿠들의 니즈를 잘 충족하는 애니메이션이 등장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세기말과 새천년의 도래, 그리고 그에 따른 서브컬처의 분위기 전환을 잘 나타내는 것이 오늘 소개할 작품인 프리크리(2000)입니다. 애니메이션 판에 엄청난 충격을 준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그 아성은 2020년대 서브컬처에 있어 가장 핫한 두 남자가 프리크리의 열렬한 팬이라는 점에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켄시와, 공중부양의 달인이며 체인소 맨 등의 만화를 겸업하는 후지모토 타츠키입니다.
요네즈 켄시는 프리크리의 팬이라, 프리크리의 감독인 츠루마키 카즈야의 신작 '기동전사 건담 GQuuuuuuX'의 OST에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후지모토 타츠키는 본인을 세계적인 만화가로 만든 히트작 '체인소 맨'에 대해 이야기하며 '체인소 맨은 사악한 프리크리'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체인소 맨과 프리크리 사이의 유사성과 오마주는 제법 많은 편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체인소 맨을 리뷰하며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프리크리에 대해 알고 나면 왜 요네즈 켄시와 후지모토 타츠키가 프리크리의 열렬한 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이 엄청나게 뛰어나다는 의미도 물론 있지만, 역시 '이 사람들이 참 좋아할 것 같은 만화다'라는 쪽에 좀 더 치우쳐 있습니다.
프리크리는 어찌 보면 과도기적 작품이기도 하고, 또 다른 시선으로 보면 어지간한 정성으로는 감히 이해할 수 없는 비범한 영역에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세히 생각해 보면, 공개가 2000년이었으니 세기말부터 작업을 한, 세기말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결국 2000년대 애니메이션을 여는 훌륭한 포문 중 하나가 되었으므로 그런 고민은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세계의 운명이 걸린 심각한 논제에서 개인의 고민으로, 또 그 개인의 고민이야말로 세상의 운명을 가르는 모든 것이라는 청춘 역설(力說). 함께 알아봅시다.
OVA(Original Video Animation)는 TV 방영이나 영화관 상영 등을 하지 않고 비디오나 DVD 등의 매체로만 판매되는 애니메이션을 말합니다. 이는 애니메이션 구매에 있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매니아들을 대상으로 전개하는 사업입니다. TV나 영화관에 올려 상영하는 것에 비해 수익 구조가 빠르고 직관적이라는 것이 강점입니다.
애니메이션 오타쿠들에게 OVA의 특징을 꼽으라고 한다면 뛰어난 작화를 꼽을 것 같습니다. 물론 실력 있는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하고 적잖은 자금이 투입됐다는 점도 퀄리티의 근거이긴 합니다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비디오나 DVD로만 발매하다 보니 TV나 영화관처럼 마감일에 쫓겨 제작할 필요가 없는 OVA는, 긴 시간을 들여 높은 퀄리티로 제작되었습니다.
이건 애니메이션의 시장 구조와도 상통합니다. TV 애니메이션은 방송 자체의 수익보다는 그것을 통한 부가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메인입니다. 이를테면 스폰서 회사에서 다루는 장난감이나 피규어 등이 있습니다. 반면 OVA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가 사업을 뛰어난 완성도로 커버하여 장사를 해야 했습니다. OVA의 작화나 스토리가 TVA보다 훌륭한 이유입니다. 스폰서와 방송사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우니 내용이 자극적이라는 점도 OVA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OVA 산업이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심야 애니메이션 시스템의 등장 이후입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방영되는, 어른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열풍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심야 애니메이션은, 성인들이 대상인 만큼 규제에서 제법 자유로웠습니다. 구매력 높은 층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은 OVA의 성격과도 일치했으니, OVA는 그 매력을 심야 애니메이션에게 바톤 터치하게 됩니다. 한편 여전히 '기동전사 건담 UC'같은 작품들이 OVA식 제작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가이낙스 제작의 OVA, 프리크리는 이름 있는 애니메이터가 많이 참여했습니다. 제작사 가이낙스의 인력은 물론이고, 스튜디오 지브리나 곤 사토시 작품의 작화를 담당하던 오오츠카 신지를 비롯해 현 Production I. G, MAPPA, 트리거 등에서 일하는 유명 애니메이터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곧 당대 가이낙스의 핵심 인력이기도 했으며, 이들 외에도 가이낙스의 많은 애니메이터가 프리크리의 세상을 그렸습니다.
명 애니메이터들이 많이 참여한 OVA답게, 작화가 매우 뛰어납니다. 스토리가 난해한 것과는 별개로 감상자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작화입니다. 인물 묘사와 움직임의 부드러움, 액션 신을 비롯한 각종 장면의 구도와 이를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할 수 있게 묶는 연출 등 '영상물'로서의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최고 수준입니다. 초창기 디지털 애니메이션과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 두 가지 향취를 전부 느낄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수려한 작화만으로도 볼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레트로가 유행하는 요즘에 딱 맞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화 외에도 도전적인 연출과 그 패기 또한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입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마치 '촬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라거나, 미국 애니메이션(사우스 파크)처럼 작화가 변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화면을 아예 만화책으로 대체하여, 만화책을 소리 내 읽는 것처럼 진행되는 구간도 있는 등 실험성 다분한 연출이 많습니다. 또 주목할 점은 카메라 워크입니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엄청나게 다채롭고 역동적입니다. 물론 작품의 모토 자체가 '경쾌한 애니메이션'인 만큼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단순히 즐긴다면 그걸로 OK이기도 합니다. 이 '실험적 연출' 구간은 작품의 메시지나 메인 스토리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구간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차분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정신 사납다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역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게 본 목적인 애니메이션답게 '재밌을 법한 건 다 고봉밥으로 꾹꾹 눌러담은' 느낌입니다. 프리크리가 OVA인 만큼 제작에 있어 크게 눈치 볼 구석도 없었을 테니, 제작에 참여한 인원들이 노동의 강도와는 별개로 정말 재밌고 만족스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앉아서 감상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감회는 천지 차이로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 애니메이터가 즐겁게 작업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이 작품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은 실제로 어떠했는지와는 관계 없이 자신의 작품에 긍지를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프리크리를 논할 때는 역시 감독인 '츠루마키 카즈야'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이낙스 시절부터 안노 히데아키 감독과 함께하여, 지금은 안노의 스튜디오 카라에 이사로 있는 사람입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부감독부터 시작하여 신극장판까지 모든 에반게리온 메인 시리즈에 참여했으며, 감독을 맡아 제작한 주요 작품은 '프리크리', '톱을 노려라 2!', 그리고 2025년 1월 현 시점의 뜨거운 감자인 '기동전사 Gundam GQuuuuuuX'가 있습니다. 이 경력만 놓고 봐도 그의 뛰어난 역량은 증명이 된 셈입니다.
그가 베스파(이탈리아 스쿠터 브랜드), 미소녀(특히 안경), 걸그룹의 광팬이라는 건 인터넷을 통해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미소녀 취향이 확고하며 그 중에서도 왈가닥 소녀 캐릭터의 제작과 연출에 있어 엄청 뛰어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에반게리온' 속 미소녀 작화는 대부분 이 사람의 손을 거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특히 '에반게리온' 속 엄청난 인기 캐릭터인 '아스카'는 츠루마키 카즈야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스카가 첫 등장하는 8화의 작화감독과 연출을 도맡았으며, 이후로도 아스카가 주역을 맡는 에피소드의 콘티를 비롯해 여러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8화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속 어떤 에피소드와 비교해도 남다른 연출과 유쾌함을 지녔습니다. 프리크리를 보고 난 뒤 해당 에피소드를 보면 감회가 새로울 수도 있겠습니다. 좌우지간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아스카'의 성격이나 행동 등 수많은 부분은 그의 손끝에서 빚어진 것입니다. 더해서 신극장판에서 추가된 '마키나미 마리' 또한 츠루마키 카즈야가 창조한 캐릭터라고 합니다. 성격 독특한 안경 미소녀, 역시 츠루마키 카즈야라는 느낌입니다. 프리크리 속에서 등장하는 미소녀 또한 '에반게리온' 속 두 캐릭터처럼 통통 튀는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베스파를 좋아하고, 너무나도 확고한 미소녀관 등 색깔이 확실한 감독입니다. 그가 감독을 맡은 프리크리는 그 색채가 여과 없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즐거움을 잃지 않는 연출, 속도감 넘치는 스쿠터 질주, 작품 전체에 깔린 펑키함 등으로 츠루마키 카즈야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독특한 센스는 이어서 소개할 작품의 OST 선정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일러스트를 보면 알 수 있듯, 프리크리의 핵심 사물 중 하나는 기타입니다. 지겨울 만큼 기타와 함께하는 프리크리입니다. 기타 하면 청춘, 청춘 하면 기타라고 작품 전체를 통해 말하는 느낌이 들 지경입니다. 그에 따라 작품 OST의 전반은 펑키한 로큰롤 사운드입니다. 기타 리프나 록 연주, 밴드 'the pillows'의 곡으로 가득합니다. 프리크리는 'the pillows'의 뮤직비디오라는 의견이 많이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프리크리는 작품 내내 걸쳐 기타와 로큰롤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입니다. 특히 'the pillows'의 곡을 사용하는 결정은 대성공으로, 서구권에서는 프리크리로 인해 필로우즈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필로우즈는 이 인기를 등에 업고 샌디에고 코믹콘에서 라이브까지 했습니다. 엔딩으로 사용된 'Ride on shooting star'나 클라이맥스에 늘 등장하는 'LITTLE BUSTERS'를 비롯한 여러 곡들이 프리크리의 세계관에 완벽히 녹아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삽입곡으로 보컬 곡을 사용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아예 한 밴드의 노래를 통째로 몇 곡이나 가져다 쓰는 건 지금도 프리크리가 유일할 것 같습니다.
상술한 것처럼 기타는 청춘의 상징입니다. 핵심적인 주제로 청춘을 다루고 있는 프리크리에 있어, 록 음악 OST는 단순히 감독의 취향이나 실험적 시도를 넘어 작품 그 자체를 표현하는 훌륭한 방식 중 하나입니다. 언제나 얼렁뚱땅, 얼기설기 정신없게 엮인 것 같은 프리크리지만, 다이나믹한 카메라 워크나 격한 움직임의 작화, 로큰롤 사운드 등 그 시끄럽고 난잡한 모든 요소들이 촘촘하게 하나의 작품으로 짜여 있다는 점이야말로 프리크리의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프리크리의 스토리 외적 요소에 대해 살폈습니다. 펑키함을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오타쿠라면, 고양이가 생선 앞을 못 지나치는 것처럼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게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화와 음악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스토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정신 사나운 연출과 합쳐져서 정말 난해하게도 꼬여 있습니다만, 오늘날을 사는 청춘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내용입니다.
프리크리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6학년인 난다바 나오타입니다. 그 무렵의 소년답게 사춘기의 초입을 밟고 있습니다. 약간 시니컬한 태도, 또래 친구들에 비해 조숙한 사고를 칭칭 두르고 있는 전형적인 사춘기 소년입니다. 특히 어른을 혐오하는 한편으로 연상자에게 끌리는 사춘기 특유의 모순이 잘 드러나는 캐릭터입니다. 또래와 어울리는 것보다는 연상과 어울리고 싶지만, 어른이라는 존재는 바보 같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나오타는 사메지마 마미미와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사메지마 마미미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입니다. 본래 나오타의 형인 난다바 타스쿠의 연인이었으나, 타스쿠가 야구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간 현재는 나오타에게 그 애정을 대신 쏟아붓고 있습니다. 작중 나오타에게 들러붙지 않으면 터져버리고 말 것이라고 말하거나, 나오타의 형이 미국에서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들었다는 사실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걸 보면, 순수한 마음으로 나오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이 됩니다. 한편 마미미는 또래 친구들로부터 이지메를 당하고 있습니다. 나오타나 마미미나, 또래와는 거리가 먼 청춘을 보내는 중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형의 애인인 걸 알면서도 마미미의 애정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 나오타, 단순히 타스쿠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나오타에게 들러붙는 마미미. 결핍과 모순으로 점철된 두 사람의 관계는 작품 속에서 때로는 태연하게, 때로는 애절하게 표현됩니다. 청춘의 가장 복잡하고 어두운 면을 시사하는 두 사람입니다.
끝나지 않는 환상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하루하라 하루코의 등장으로 바뀌게 됩니다. 베스파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의 머리를 기타로 후려치고 다니는 이상한 여자. 나오타가 싫어하는 유형인 '내면이 성장하지 않은 바보 같은 어른'입니다. 하루코는 베스파로 나오타를 들이받은 후 자신의 기타로 머리에 풀 스윙을 날립니다. 그 순간부터 나오타의 삶은 변하게 됩니다. 기타로 얻어맞은 부위인 이마 사이에서 수시로 이상한 것들이 자라나기 시작하며, 그 징조를 본 하루코는 나오타에게 흥미를 느껴 그의 집에 가사 도우미라는 명목으로 눌러앉습니다.
나오타의 머리에 난 혹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점점 커지기만 합니다. 끝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더니, 아예 이마에서 로봇이 튀어나오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 로봇 중 하나가 사진 속 TV 모양 머리를 하고 있는 칸치입니다. 나오타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다른 로봇들은 칸치를 붙잡기 위해 공격을 퍼붓고, 나오타와 하루코가 칸치를 도와 이를 저지하는 것이 작품의 초반 전개입니다. 칸치 또한 하루코처럼 나오타의 집에 얹혀살게 됩니다.
다리미처럼 생긴 의료기기 공장, 메디컬 메카니카는 마을에 들어선 뒤부터 매일 정해진 시각에 연기를 뿜습니다. 마을을 뒤덮는 그 연기는 마치 저주처럼 느껴집니다. '대단한 일 따위 없고, 당연한 일밖에 일어나지 않는' 이 마을 속에서, 나오타와 하루코, 칸치 셋은 점차 '대단한 일'과 마주하게 됩니다.
한편 나오타의 방에서 동거하게 된 하루코는 나오타를 향한 스킨십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런 어프로치에 나오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서로 핏대 세우고 으르렁대던 사이였던 두 사람입니다. 하지만 '당연한 일밖에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 익숙해진' 나오타는 어느새 하루코의 존재를 통해 '바깥에도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하루코가 며칠 동안 없어진 것만으로도 울음을 터뜨릴 만큼, 하루코를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하루코의 '모든 것 버리고 자신과 함께 가겠냐'는 물음에 나오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오타는 하루코를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네 머리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라는 말 따위로 나오타를 설레게 했던 하루코 쪽은 진심으로 나오타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따옴표 안의 말은 진심이 맞습니다만, 그건 하루코가 나오타의 능력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마 사이에서 영문 모를 것이 튀어나오는 능력. 설정 상으로는 N.O.라 불리는 그 힘을 하루코는 원하고 있었습니다. 좌뇌와 우뇌 사이의 공간을 통해 물질을 전송하는 이 힘은 본디 우주의 해적왕 '아토무스크'의 능력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주인인 하루코는, N.O. 능력을 노린 메디컬 메카니카에 붙잡힌 아토무스크를 쫓아 지구로 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되는 대로 사람의 머리를 기타로 후려쳐 아토무스크의 능력이 강하게 발현되는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오타였던 것입니다.
메디컬 메카니카는 단순한 의료 기기 공장이 아니었습니다. 그 정체는 거대한 다리미의 형상으로 별을 밀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작품 종반, 메디컬 메카니카의 터미널 코어는 아토무스크의 능력을 강하게 품고 있었던 칸치를 집어삼켜 완전한 기동을 준비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나오타 또한 삼켜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메디컬 메카니카의 기동을 막고자 하는 아마라오 관리관은 필사적으로 나오타를 포섭하려 합니다. 반면 지구의 운명은 알 바 아니고, 단지 메디컬 메카니카 안에 붙들린 아토무스크와 그의 힘을 만나고 싶을 뿐인 하루코는 나오타를 메디컬 메카니카의 안으로 던지려 합니다.
이 대치 속에서 나오타가 선택한 것은 하루코였습니다. 지구의 운명,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주변 사람들 등 '모든 것을 버리고' 나오타는 하루코에게로 다가갑니다. 하루코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힘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그런 하루코의 손에 의해 메디컬 메카니카로 던져진 나오타가 해적왕 아토무스크의 힘을 각성하며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로 치닫습니다. 중요한 건 아토무스크가 현신하는 게 아니라 나오타가 아토무스크의 힘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나오타가 빼앗았다고 느낀 하루코는 나오타와 한바탕 싸움을 벌입니다. 하지만 해적왕의 힘을 사용하는 나오타는 하루코로서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후의 일격을 앞둔 상태에서 나오타는 아토무스크의 힘을 거뒀습니다. 그리고는 하루코에게 '좋아해', 하고 마음을 전한 뒤 입을 맞춥니다. 이후 나오타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아토무스크로 인해 메디컬 메카니카의 기동은 정지됩니다. 하지만 하루코의 갈증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끝내 하루코는 튀어나온 아토무스크를 쫓아 새로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함께 갈 거냐고 물어보는 하루코에게 나오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잠시간의 침묵 뒤 '역시 안 돼, 탓군은 아직 어린애니까'라는 자문자답을 마지막으로 하루코는 나오타의 곁을 떠납니다. 홀로 남은 나오타는 하루코가 두고 간 기타를 들고 그녀가 떠나간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 모습을 마미미가 촬영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화면이 암전됩니다. 이후 마미미는 나오타를 떠나 카메라맨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나오타는 중학생이 되는 것으로 프리크리는 끝을 맺습니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프리크리의 스토리를 요약했습니다만, 요약이 아니라 만화 자체를 다 보더라도 프리크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물론 꼭 작품 속 함의를 찾아내고 그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뛰어난 영상미로 눈이 즐겁고, the pillows의 음악으로 귀가 즐거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작품은 프리즘과 같은 것으로, 독자에 따라 분광한다는 것입니다. 분광하는 빛의 색이 각기 다양한 것처럼, 독자의 종류와 그에 따른 감상 또한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 감상을 바탕으로 완결이 존재하는 작품의 세계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건 독자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작품에 불멸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 해석도 결국 수많은 감상 중 일부일 뿐이며, 작품을 조금 더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것에서 그쳤으면 합니다. 정론도 아니거니와 그 이상 가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청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안노 히데아키의 대답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면 프리크리는 나의 대답.
감독인 츠루마키 카즈야가 말한 그대로 프리크리는 청춘에 대한 그 나름의 해답입니다. 프리크리를 유쾌한 에반게리온으로 지칭하는 등, 제작사가 같고 참여 스탭이 비슷한 걸 넘어 프리크리와 에반게리온은 작품 의미의 측면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에반게리온은 험난한 청춘을 보내는 소년 이카리 신지의 성장극입니다. 프리크리 또한 사춘기 소년 난다바 나오타의 성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 속 요소들을 분석해 보며 프리크리가 말하는 어른과 아이, 청춘과 성장에 대해 알아봅시다.
아이 같은 어른, 어른 같은 아이
여러분들이 어릴 때는 어떤 아이였나요? 어른이 되고 난 후에는 어린 시절이 좋았다고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우리는 대부분 어른이 되고 싶어 했을 겁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의 문화를 동경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청불 영화나 18세 이용가 게임, 나이 제한이 걸려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 등, 특히나 요즘 세대의 어린 시절은 어른을 향한 갈증과 뗄 수 없습니다. 프리크리 속 나오타의 경우는 어른을 향한 복잡한 심정을 갖고 있습니다.
하루코에게 베스파로 치이고 기타로 얻어맞은 나오타는 위 사진과 같이 말합니다. 나오타의 시선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하루코는 내면이 성장하지 않은 바보 같은 어른처럼 보입니다. 늘 경박하고 욕구에 충실하며 성숙한 모습은 어지간해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루코가 이 작품 속에서 대표적으로 묘사되는 어른인 만큼, 제작진들이 생각하는 어른이라는 존재의 일면을 하루코라는 캐릭터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루코 이외에도 어른의 바보 같은 점은 작품 곳곳에 등장합니다.
마미미는 고등학생이긴 하지만 엄청나게 신 주스를 마십니다. 나오타의 가족들은 어른의 맛이랍시고 엄청나게 매운 카레를 먹어댑니다. 나오타의 아버지 또한 하루코처럼 얼빠진 행동만 일삼는 어른입니다. 목욕을 하는 나오타의 학급 친구에게 샴푸 햇을 주는 한편, 가십 거리와 음모론으로 가득한 잡지를 찍어내 구멍가게에 판다든가, 만화와 관련된 개그를 쉴 새도 없이 떠들어댑니다. 나오타의 담임 선생님은 열심히 하려는 노력이 학생들에게 제대로 통하지 않으며, 그녀의 자동차는 늘 부서지고 마는 역할입니다. 이후 나오타에게 접근하는 아마라오 관리관 또한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이는 것 같다가도 붙이고 있던 눈썹이 떨어지면 한없이 초라해지고 맙니다.
때문에 나오타는 1화에서 마미미가 권한 시큼한 주스를(받아 마시면 마미미와의 간접 키스가 됨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던져버립니다. 언제나 시니컬한 시선으로 어른들을 바라보며 냉소와 비판을 아끼지 않습니다. 즉, 나오타가 어른에게 품고 있는 감정의 근간은 혐오입니다. 정확히는 바보 같은 어른을 향해서 말입니다. '절대 저렇게는 되지 않겠다'는 나오타의 의지는 작품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타는 하루코와의 교류를 통해 점차 변하게 됩니다. '머릿속이 텅 빈 채'하는 스쿠터 드라이브, 대뜸 떠나는 것, 맛없는 라면을 먹어 보는 것. 나오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든 행동들의 이유는 하루코의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뭔가 재밌잖아',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대답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프리크리 속 어른들은 단순히 바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등 감정을 일체 숨기지 않습니다. 나오타의 '나오'는 솔직하다는 한자인 直이라고 하지만, 그와 상반되게 나오타는 솔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솔직함은 아이의 미덕이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면 다양한 사정에 얽혀 자신의 마음을 속이게 되는 반면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그럴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프리크리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아이처럼 순진하고 솔직합니다. 반면 아이인 나오타야말로 솔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오타의 성장은 최후반부, 가장 바보 같은 어른이었던 나오타의 아버지를 통해 암시됩니다. 하루코와 떠나는 바람에 등교하지 않는 나오타로 인해 담임 선생님이 가정에 방문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오타의 아버지는 자신이 초등학생 시절 자신이 관리 담당을 맡아 학급에서 기르던 햄스터 이야기만 합니다. 나오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담임 선생님에게 나오타의 아버지는 괜찮다고 말하며, '햄스터와는 다르게 멋대로 성장해버리니까요'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그의 말대로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나오타는 성장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에 들어가는 한자처럼 솔직하게 살 수 있게 됐습니다.
하루코를 향해 솔직하게 좋아한다며 자신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작품 속 사건이 종료되고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억지로 어른스러워 보이기 위해 엄청나게 매운 주스를 마시지 않습니다. 1화 마지막에 시큼한 주스를 억지로 마시거나, 3화에서 매운 카레를 억지로 먹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솔직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프리크리 속 어른들이 지닌 미덕입니다. 이것은 나오타가 어른의 문턱을 밟았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매운 주스를 거부하는 나오타를 두고 학급 친구인 니나모리는 여전히 어린애라고 합니다. 사춘기 소년 나오타의 안에는 아이와 어른의 성질이 혼재한다는 걸까요? 인간 성장의 가장 큰 길목이 사춘기라는 것을 두고 생각해 보면 그것도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결국 어른이나 아이나 별반 다를 것은 없다, 어른이든 아이든 본질적으로 같다는 해석 쪽이 저는 좀 더 마음에 듭니다. 둘 중 한 쪽을 견제하느라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했던 나오타의 성장을 통해 프리크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어른의 성숙함에 다가서고자 하며, 어른은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되찾고자 합니다. 이것은 비단 특정 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만, 어른이 되는 건 시험을 치고 자격증을 받는 것처럼 명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에 쫓기다 와중 어느 순간 어른이 되어 있고, 되돌아오지 않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그 순수함과 솔직함의 회복을 원하게 됩니다. 이 고뇌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떠안고 있는 마음의 짐일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다 성장한 것도 아니고, 몸만 커버린 상태에서 정신은 어린아이처럼 미성숙합니다. 번듯한 삶을 사는 다른 어른들이나 주변과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움 속에 놓이곤 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은 '몸만 커버린 채 정신은 어린아이'로서 어른과 아이의 성질이 혼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리크리는 어른과 아이의 벽 자체를 허물었습니다. 그런 것보다도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오타를 통해 강조합니다. 솔직한 삶 속에서 연마된 정신은 언젠가 단단하게, 뭇 젊은이이 동경하는 어른의 정신으로 기능할 것입니다. 그 무렵이 되면 어른과 아이의 간극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단지 성숙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되고 싶은 나 자신이 될 수 있을까? I think I can
나오타가 진심으로 동경하는 연상자는 단 한 명, 자신의 형인 난다바 타스쿠뿐입니다. 나오타는 그 연장선으로 형이 사용하는 침대는 누구도 사용하지 못하게 합니다.(물론 하루코에게 어쩔 수 없이 내주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야구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으므로 작품 속에서는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습니다. 형에 대한 동경심은 나오타가 배트를 휘두를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그런 나오타의 이상은 칸치를 통해 나타납니다.
칸치는 청소와 빨래, 요리 등 각종 가사에도 능하며 위기 상황에 나오타를 구해 주기도 합니다. 말을 하지 않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순박하고 착하며 나오타를 걱정하는 칸치는 나오타의 형과 같은 존재로 비춰집니다. 칸치가 나오타의 이상과 연결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칸치가 나오타의 머릿속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칸치가 나오타의 머릿속에서 제조된 로봇은 아닙니다만, 단순히 이마 속에서 나오는 연출만을 통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작품 속의 중요한 키워드였던 N.O. 능력이란 결국 무한한 소년 시절의 가능성과 그 의지의 표상입니다. 무엇이든 꿈꿀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사춘기 시절 머릿속은 유독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고민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많습니다. 그것이 나오타의 이마로부터 튀어나와 무차별적 공격을 자행하는 적대적 로봇으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칸치 또한 나오타가 머릿속으로 그린, 형과 같이 듬직하고 어른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의 실체화입니다. 작품 속에서도 위기 상황에 놓인 나오타가 형을 생각하자 칸치가 반응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나오타를 적대 로봇으로부터 구해 주는 칸치는 언제나 당당하게 맞서 싸웁니다. 그 마무리는 늘 위 사진과 같이 캐논 형태로 변하여 커다란 한 방을 먹이는 것입니다. 단 한 발만 쏠 수 있지만, 그 한 발로 모든 것이 끝납니다. 이 어마어마한 위력의 포탄은 난다바 나오타입니다. 칸치는 나오타를 탄환으로 써서 적대 로봇을 쓰러뜨립니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 은유에 대한 해석도 간단합니다. 소년, 나아가 청춘이 지닌 힘과 가능성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리고 탄환이 나오타 본인인 것은 그 힘의 주체가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이라는 총에 자기 자신을 장전해 그 무엇이든 꿰뚫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청춘을, 프리크리는 칸치와 나오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힘과 가능성에 대한 은유는 4화에서 좀 더 본격적으로 다뤄집니다. 나오타가 기타를 배트 삼아 휘둘러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으로부터 마을을 구하는 화입니다. 작중 나오타는 배트를 지니고 다니는 것과 별개로 야구와 친하지 않습니다. 배트를 휘두르는 법을 마미미에게 배우고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마미미는 나오타를 진심으로 생각해서 도와준 것이 아니라, 야구를 잘했던 나오타의 형을 나오타에게 투영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 가르침 속에서 나오타가 배울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루코는 달랐습니다. 나오타는 하루코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다 보고 나서 생각해 보면 하루코도 마미미처럼 나오타를 진심으로 아껴서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만, 둘 중 한 쪽이라도 호감을 갖는 관계였기에 마미미의 경우와 다를 수 있었습니다.
하여간 하루코에게 배운 스윙을 이용하여 나오타는 떨어지는 거대 폭탄을 자신의 기타로 멋지게 맞받아칩니다. 이때 나오타의 이마에는 아토무스크의 문양이 나타나는데, 이 문양은 자세히 보면 일본어로 어른(大人)을 비틀어 놓은 것입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배트를 휘두르는 순간, 청춘에게는 그 어떤 볼도 멋지게 홈런으로 쳐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나오타는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큰 싱킹 패스트볼을 멋지게 쳐내 대기권이라는 담장을 넘겼습니다. 세상을 사는 모든 젊은이들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I think I can'처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되고 싶은 자신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형처럼 멋진 스윙을 해낸 나오타처럼 말입니다.
하루코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 나오타를 향해 '배트를 휘두르지 않으면 뭐든 시작도 안 된다'고 합니다. 나오타에게 휘두르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한편 아마라오 관리관은 '어차피 실전에서 배트를 휘두를 만한 녀석은 그리 없다'며 나오타에게 비관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어찌 됐든 기어이 배트를 휘두른 나오타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일단 배트를 휘두르기만 하면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배트는 무엇인가요? 어떤 '나'를 목표로 하고 있나요? 고민이 주렁주렁 열리는 젊음이지만, 배트를 힘껏 휘두르는 순간, 경쾌한 타격음과 손이 짜릿해지는 감각이 우리에게 고합니다. 청춘이 지닌 활력과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힘에 대해서요. 그 타구가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우리 자신이라는 곳을 향해 시원하게 뻗어갈 것이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습니다.
즐거움을 잃지 않고서
프리크리의 매력은 다양한 요소의 병렬 배치입니다. 위의 배트 스윙 장면이 나오는 4화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만화 속 스토리를 놓고 본다면 하루코가 나오타를 이용하기 위해 성장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 만화의 중대한 스포일러를 모두 안 채로 나오타가 스윙을 성공한 뒤 돌아가는 길에 미친 듯이 웃는 하루코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한편 만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놓고 본다면 청춘이 갖고 있는 힘의 실현과 그 위력, 그리고 시작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메타포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회차입니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제작진이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를 하는 회차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즐거움이 녹아 있습니다. 4화 초반의 야구 신은 반전 스토리와 만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 그리고 제작진의 매니악한 즐거움 추구라는 세 개의 요소가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각자 흐릅니다. 저는 바로 이런 점이 프리크리의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돌리면 즐거움이 있고, 또 고개를 돌리면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기서 제작진의 매니악한 즐거움 추구란, 제작진이 만화 전체에 걸쳐 내보이는 매니아적 요소입니다. 위에서 다룬 실험적이고 개성 있는 연출들도 당연히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우스 파크의 작화를 가져오는 것이 패러디나 리스펙트의 의미를 넘어 '덕질'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프리크리를 살펴보면 재밌는 부분이 많습니다.
감독이 베스파의 매니아이기에 하루코는 베스파를 타고 질주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아마라오 관리관도 스쿠터를 타는데, 그는 정장 위에 파카를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영국의 모드족(mods)과 닮았습니다. 모드족은 주로 노동자 계층이지만 테일러링 양복을 입고 상류 문화를 향유했습니다. 스쿠터를 타고 달릴 때 비싼 양복을 보호하기 위해 군용 파카를 껴입는 것은 그들의 유명한 특징입니다. 다방면으로 빈곤하고 팍팍했던 노동자들이 과시를 추구하던 모드족처럼, 아마라오 관리관도 자신의 부족한 내면을 감추려 김으로 된 눈썹을 덧붙입니다.
칸치의 ma-1 자켓 또한 눈에 띕니다. ma-1은 미국의 군용 자켓으로, 일상에도 널리 보급되어 가장 많은 매니아층을 갖고 있는 군수품 중 하나입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미국이 전쟁 당시 제조하던 ma-1을 그대로 복각하는 의류 업체가 여럿 있습니다. 더해서 우라하라를 필두로 한 일본 스트리트 패션에서 끊임없이 활용되는 것이 ma-1입니다. 굳이 로봇에게 이 자켓을 입힌 이유 역시 제작진의 취향과 매니아적 성향이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외에도 프리크리를 보다 보면 레트로한 분위기가 잘 묻어나는 패션이 여럿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즐기는 것또한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다.
4화는 회차 전체가 은유라고는 하지만 야구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5화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시작하여 한 회차 가득 총기 액션을 눌러담았습니다. 취미가 사진 촬영인 마미미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올림푸스의 XA2로, 실제 존재하는 모델입니다. 뿐만 아니라 칸치에게서 나온 기타의(아토무스크의 것이라 반응이 격했던 것이지만) 모델 명까지 하루코의 입을 빌려 줄줄 읊는 것을 보면 제작진 역시 즐거움을 바탕으로 만화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메시지가 이러쿵 저러쿵 분석하며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Fooly하고 Coolly하게 그저 즐기면서 감상하는 것도 프리크리를 시청하는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 프리크리의 제작진들과 같은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청춘에 대한 해답의 새로운 시각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만화는 끝날 때까지 프리크리가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재미있었으면 된 거죠.
프리크리에 대한 리뷰를 준비하며 '왜 일본 만화는 만날 어른이 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평을 봤습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왜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작품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요? 물론 소년의 성장극은 다른 나라에도 차고 넘칠 것 같습니다. 일본 만화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니 우리 눈에 더 자주 들 뿐이겠죠. 아니면 결국 만화라는 건 '소년 소녀에게 읽히기 위하여'라는 목적성이 강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읽어서 도움이 되는 말,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핵심 메시지가 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프리크리에 대한 생각을 전부 늘어놓은 지금 드는 생각은 확고합니다. 적어도 프리크리는 '왜 만날 어른이 되라고 하느냐'에 대한 대답이라는 감상입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리크리는 어른인지 아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진정으로 알아야만 하는 것을 시청자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에반게리온이든 프리크리든, 사춘기와 어른에 관한 해답을 제시하는 맥락은 비슷합니다. 이런 만화를 내 소년 시절에 봤다면 느낌이 조금 달랐을까, 하는 상념입니다. 하지만 재고해 보니 정말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소년 소녀가 이런 만화를 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 어린 시절에 대고 상상해 보면 그 무렵에 이런 만화를 좋아할 것 같다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습니다. 만일 보더라도 메시지보다는 메신저에 집중하지 않았을까요? 미소녀나 로봇 같은 것 말입니다. 결국 사춘기는 한참 지나고 성인이 되어서야 프리크리나 에반게리온 같은 만화가 눈에 들어오고 맙니다. 거기에 심취해서 지나간 자신의 유년기를 회상하며 아련해지는 기분을 안고 매니아가 됩니다. 어쩌면 이런 게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로봇 애니메이션이지만, 로봇을 보며 진정으로 마음 깊이 열광하는 이들은 다 큰 어른들인 것처럼요. 요즘은 오히려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유아적인 자세로 서브컬처적 요소에 매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시기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걸 즐길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는 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오타쿠적 요소는 그것대로 좋아하고, 작품의 심오한 메시지는 그것대로 또 좋아하고. 한가득 만끽한다면 그것이 곧 행복과 직결되지 않을까요? 그 외의 고민은 Fooly합니다. 남은 건 내가 사랑하는 가치를 Coolly하게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길었던 프리크리 리뷰도 끝났습니다. 메타포 리뷰를 쓴 뒤 혼자 다시 읽어 보며 '이렇게 많이 써도 좋을 것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눈을 돌려 스크롤을 보니 또 이렇게나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프리크리를 마음 깊이 즐겼다는 증명이기도 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v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