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회고록
우리는 종종 경험을 통해 배우지만, 그 경험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때가 있다. 최근 한 뉴스레터의 인터뷰 요청을 받으며 이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유저 리서치와 관련된 질문에 답변을 제공하는 인터뷰였는데, 내 답변이 뉴스레터로 발행된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습관을 돌아보게 되었다.
답변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나는 정말 불친절하구나'였다. 물론 의도적으로 불친절하게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말은 다소 추상적이었고, 그로 인해 전달력이 떨어져보였다.
왜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기록의 부재에 있었다. 나는 이미 경험하고 무언가를 깨달으면, 그 경험은 사라지고 결과만 머릿속에 남는다. 그렇게 과정 자체를 세세하게 기록하지 않았기에, 막상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 할 때 애를 먹었다. 경험이 다르니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고, 이를 쉽게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요즘은 친구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 디자인이든 글이든, 본인의 경험을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고. 나 역시 최근 기록의 부재로 인해 깊은 후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유저 리서치를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였다. 내 답변과 다른 사람의 답변을 비교해 보았을 때,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다른 이의 답변:
유저 리서치는 ‘목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서 성패가 갈려요. 예전에 북마크 기능 개선을 위한 리서치를 할 때, 처음엔 단순히 “왜 북마크를 사용하지 않을까?”를 기준으로 질문을 설계했어요. 그런데 이건 너무 추상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시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쳤죠.
유저가 북마크를 처음 접할 때, 이해를 못 해서 안 쓰는 걸까? 필요는 하지만 귀찮아서 안 쓰는 걸까? 쓰긴 하는데 정리가 어려워서 포기하는 걸까?
이렇게 명확한 가설을 세우고 질문을 설계하니까, 유저들이 “이걸 저장해두고 싶은데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려요.” 같은 구체적인 피드백을 줬어요. 결국 북마크를 단순 저장 기능이 아니라 “일정 간격을 두고 보고 싶은 콘텐츠를 관리하는 공간”으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죠.
반면, 내가 한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내 답변: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단순한 전반적인 선호도를 조사하려는 것인지, 특정 사용자 페르소나를 도출하기 위한 리서치를 진행하려는 것인지, 신규 기능이 실제로 필요한지를 검증하려는 것인지, 혹은 기존 사용자의 페인포인트를 파악하려는 것인지부터 분명하게 정해야 해요.
목적이 명확해야만 정량적 조사가 적절한지, 정성적 조사가 필요한지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고, 조사 방식도 효과적으로 설계할 수 있어요. 또한, 목적이 분명할수록 질문을 보다 구체적이고 타당하게 구성할 수 있어, 최종적으로 더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내 답변은 논리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사례가 부족했다. 그저 개념적인 설명에 머물러 있었고, 듣는 사람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다른 이의 답변은 어떠한 문제에서 출발해, 구체적인 질문을 설정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인사이트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운 설명 방식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기록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경험은 단순한 결론으로 축약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록은 그 과정을 보존하고, 필요한 순간에 그 경험을 다시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경험들이 쌓여 직관이 되지만, 그 직관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때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하다. 기록이 없다면, 우리는 설득을 위하여 이미 사라진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다시 처음부터 추론을 해야 한다. 이는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왜곡된 기억으로 인해 잘못된 결론을 내릴 가능성도 높다.
그렇게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그리고 집에와 짧게 메모된 단어들, 레퍼런스들은 복기하며 정리한다. 경험을 단순히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구체적으로 문서화하여 언제든지 다시 꺼내 볼 수 있도록. 그래야만 나 스스로도 더 명확한 사고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서도 더욱 친절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가치 있게 만들고,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이제야 그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