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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 Apr 27. 2020

(L-Life) 한 번쯤 할 수 있는 고민

꼭 나를 한 가지로 정의해야 하나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삶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나가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고민



많은 사람들이 익명의 힘을 빌려 또는 힘겹게 털어놓는 질문들이 있다. 


"저는 이성을 좋아했는데, 유독 특정 동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동성애자인가요 아님 양성애자인가요?" 


"이성에게 딱히 호감이 생기지 않아요, 저는 동성애자일까요?"




나 또한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흔하게 들어왔던 질문들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힘겹게 나에게 이 질문을 한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고, 찾아가야 하는 문제 같아요. 
또한,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가 아니니 걱정 말아요. 
그리고 당신이 만약 그렇다 할지라도 괜찮아요.







어쩌면 많은 레즈비언들 사이에서 나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내 성 정체성을 확립해오기까지 나는 많은 고민을 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었다. 


내가 처음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처음으로 친구가 나에게 커밍아웃을 해왔었다. 자기는 레즈비언이라며, 여자를 좋아한다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여자가 어떻게 여자를 좋아할 수 있어? 이상해... 무서워...
솔직히 내가 처음 했던 생각이었다.

그 친구는 나를 믿고 말해준 것일 텐데 난 그 친구를 예전처럼 대할 수없었다. 중학교 2학년, 세상의 기준이 나에겐 전부였고, 다름을 인정하기엔 아직 너무 어렸다. 나는 그 친구를 서서히 멀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단짝 친구와 멀어졌다. 



그 후 중학교 3학년, 나는 전학을 갔다. 새로운 학기 새로운 마음가짐을 위해서 길었던 머리도 과감히 잘랐다. 학교에 두발자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어정쩡한 머리 길이를 감당한 자신이 없었다.

전학을 간 학교는 조금 특이했다, 머리가 짧고 흔히 말하는 보이쉬한 친구들이 참 많은 학교였다. 나 같은 애들이 많은 학교구나 이 정도로 생각했고, 우연히 그 친구들과 친해졌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내가 속해있는 그룹은 레즈비언애들이었다는 걸. 그들 또한 내가 머리가 짧아서 레즈비언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머리가 짧고 큰 옷을 입고 다니면 레즈비언이라고 단정 짓던 시절이었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정말 소중했던 단짝 친구가 레즈비언이라고 무섭다며 멀리했는데. 두 번째 들었던 커밍아웃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두번째여서였을까? 아니면 그 친구들이 그냥 좋아서였을까? 서로의 오해를 풀었지만, 그래도 난 그 그룹에 계속 속해있었다. 어쨌든 그 안에서도 나는 특별한 아이였다. 다들 나를 바이(BiSexual)라 칭했다. 

그렇게 지내면서 나는 남자도 만났고 여자도 만나봤다. 남자 친구를 만날 때의 설렘과 여자 친구를 만날 때의 설렘은 비슷했다. 여자를 만나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내가 여자를 만나는 것 또한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다들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를, 나는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받아들였던 것이다. 


어린 나의 생각으로는,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야 또는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야. 

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가벼운 고민으로 지나갔다. 



아마 이게 내가 살면서 해본 첫 정체성의 고민이 아녔을까?
내 첫 성 정체성의 고민은 정말 너무나 가볍게 지나갔다. 







나는 교육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관련 직종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의 소속감은 어릴 적부터 아주 중요하게 다뤄진다.
소속감은, 그 사람의 자아형성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자존감, 자신감을 높여준다.
그래서일까 모두가 한 군데에 자신을 정의 내리는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성 정체성 또한 그렇게 하나로 딱 나를 정의 내려야 하는 걸까? 



사람들마다 성 정체성의 대한 생각은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꼭 한 가지로 정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애쓰지 않아도, 흘러가다 보면, 겪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 스스로 내 정체성을 알게 되는 날이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어릴 적부터 자기가 동성애자임을 확신하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이성애자임을 확신하다 아주 뒤늦게 동성애자인걸 자각하는 사람 또한 있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성별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가만히 스스로의 감정에 집중해보자.



흘러가는 감정과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감정, 
사랑이라는 감정과, 조금 특별한 우정의 감정은 분명 다른 감정일 테니.. 
만약 그 차이를 아직 못 찾겠다면, 조금 흘러가게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스스로 내 성 정체성을 완벽히 정의하는 데까지는 1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지금 당장 하나로 정의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 천천히 나 스스로를 알아가고 살펴가는 과정을 먼저 거쳐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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