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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동물의 친구 Jan 29. 2020

그물에 걸린 큰고니 구조 작전!

소방서와 함께 한 호수 중앙에 고립된 큰고니 구조 작전

"큰고니가 큰 호수 중간 모래톱에서 이상한 자세로 꼼짝을 못 하고 있어요. 아마 무언가에 몸이 얽혀있는 것 같아요."

신고자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여있었습니다. 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신고자에게 사진을 촬영해 보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사진을 확인하고 직원들은 큰 고민에 잠겼습니다. 큰고니가 고립된 위치는 배를 타지 않고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그 정도 규모의 호수 중앙까지 접근할 수 있는 배가 없으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요. 그렇다고 마냥 고민만 하며 지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서산소방서에 협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무언가에 얽힌 채 간월호 중앙에 고립되어 있는 큰고니. 그 앞으로 그물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조난당한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일을 소방서에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2017년 기준 전국 소방서의 구조출동건수 80만 5,194건 중 동물포획이 12만 5,423건으로 전체 29.8%를 차지했습니다. 결코 낮은 빈도가 아니지요. 동물을 구조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동물을 구조하는 동안에 발생하는 다른 긴박한 상황, 특히 인명피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소방청은 지난 2018년에 '생활안전 출동 거절 기준'을 마련해 동물구조에서 소방서의 역할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동물구조 업무를 아예 수행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구조해 현장을 수습하지 않을 시 2차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거나 동물이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즉시 구조 활동을 수행합니다.

소방서 관계자의 협조 아래 차량과 충돌한 고라니를 구조하는 모습.


어쨌든 큰고니의 안타까운 상황과 구조센터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니 소방서 측에서 무척이나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는 답변을 주었고, 관계자들과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확인한 큰고니는 확실히 무언가에 몸이 얽힌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지켜보는 동안에도 심하게 몸부림치면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수차례 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상황을 살핀 후 소방서 관계자들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를 상의하였고 모터보트를 띄우기에 이르렀습니다.

보트를 타고 현장으로 접근하는 모습.


보트를 타고 접근하는 동안에 이 호수의 문제점을 여실히 확실할 수 있었습니다. 각종 어구가 호수 이곳저곳에 어지럽게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찢긴 그물이 물결을 따라 나부끼는 모습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배의 하단부가 그물과 부딪히면서 얽히는 문제가 발생해 막대기로 이를 제거하며 접근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 중 하나인 '천수만 평야'. 그곳을 가로지르는 '간월호'는 수많은 철새와 야생동물에게 젖줄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어획활동과 낚시객들로 인해 버려진 그물과 낚시쓰레기를 매우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어구는 야생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덫이 되어버렸죠.

과거 낚싯줄이 부리와 혀에 감겨 구조되었던 다른 큰고니.


큰고니는 우리나라 전역의 호수나 강가에서 월동하는 겨울철새입니다. 약 10~11월경 우리나라에 찾아와 2월 말, 3월 초가 되면 번식을 위해 북상합니다. 보통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면서 여러 수생생물, 특히 수초와 그 뿌리를 뜯어먹는 것을 즐깁니다. 그러한 습성 때문에 강이나 호숫가에 버려지는 어구, 낚시쓰레기에 신체가 얽히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물가에 서식하면서 수초를 먹는 특성에 낚시쓰레기나 버려진 그물에 얽히는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물가에 서식하면서 수초를 먹는 특성에 낚시쓰레기나 버려진 그물에 얽히는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구조한 큰고니의 몸통에도 그물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보통 그물에 얽히면 빠져나가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부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빠르게 구조한 덕분에 그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었습니다. 약간의 탈진 정도만 있었으니까요. 구조센터로 이송되어 온 큰고니는 약 이틀간 체력을 회복한 후 다행히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물에 얽힌 채 심하게 몸부림을 쳤던 녀석은 많이 지쳐있었다.


소방서에서 동물구조 업무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고, 그 이유와 정당성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소방서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과 죄송함을 느낍니다. 제한된 인력과 시간으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예방하고 수습해야 하는 그들에게 동물구조 업무까지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나 많은 야생동물이 위험에 처하고 있고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선 기존에 소방서에서 수행하던 동물구조 업무를 다른 전문기관에서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동반해야 함은 당연하겠지요. 그러한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소방서의 동물구조 업무 부담을 완전히 덜기란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쨌든 현재의 야생동물구조센터를 비롯한 여러 민간구조협회는 소방서에 비해 적은 인력이 배치되어 있고 여러 기구의 사용에 제한이 따르는 상황이니 극한의 상황에서는 종종 소방서의 도움을 요구할 수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큰고니의 구조를 위해 무척이나 흔쾌히 도움을 나눠주신 서산소방서 관계자 여러분과 지금 이 시간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계실 구조대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소방서 관계자분들의 도움으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큰고니. 녀석이 잘 살아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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