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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을 위한 화장실

한국에는 없지만 호주에는 있는 것

by 새이버링



더들리페이지에 잠시 들러 사방이 탁 트인 뷰를 보고 가려다, 쉬가 마려워 참을 수 없다는 딸.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여행에서 가장 어려운 엄마의 일 중 하나는 화장실이다. 포트스테판 패키지여행에서 화장실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가이드님의 말마따나, 여행에서 기록적인 찰나의 순간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화장실이다. 그동안 둘째의 ‘쉬 마려워..’는 난감한 순간들을 수도 없이 연출했다. 과거 베트남 여행 중 산 지 일주일 된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발을 동동 구를 때에도 아이는 쉬가 급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도, 피곤한 여행의 막바지에도, 어른들의 어떤 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여자아이의 쉬 알림’ 때문에 엄마들은 괴롭다.


걱정과는 달리 시드니에는 제법 화장실이 많았다. 특히 시티의 공용화장실은 깨끗하고 찾기도 쉬웠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포토존으로 유명한 더들리페이지는 그냥 동네 한복판이다. 화장실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상가나 건물이 없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가정집뿐이었다. 아무 집이라도 벨을 눌러볼까.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하며 화장실을 이용해도 좋다는 호주사람들을 상상했다. 그건 영화에나 나올 법 한 장면이었다. 얼굴이 두꺼운 엄마지만 고작 어린아이의 ‘쉬 알림’ 하나에 남의 집 벨을 누를 순 없었다. 참을 수 없다며 허벅지를 비비 꼬는 딸내미의 손을 잡고 으슥한 곳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눈앞에 전혀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있었다.


“이게 화장실이라고?”


주택 공사현장 구석에 놓인, 커다란 드럼통을 세워놓은 듯한 간이 화장실은 디자인마저 호주스러웠다. 호주에서는 현장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단 한 명이라도 일하는 공사현장에 간이화장실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단 한 명의 노동자를 위한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일반인들을 위해 개방된 화장실은 아니라 공사를 쉬는 동안에는 잠겨있는 것이 맞으나, 혹시나 하고 문을 당겨봤는데 열리는 것이었다. 실내는 놀랍게도 깔끔했고 핸드워시에 손소독제까지 갖춰져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냄새가 고약한 화장실에 발도 딛지 않던 딸내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급한 일을 해결하고 나왔다.


“엄마, 엄청 깨끗하고 냄새도 안 나.”


최근에 본 뉴스기사가 생각났다. 건설노동자들의 ‘용변을 볼 권리’가 보장되지 않아 건설 현장 곳곳에 일을 봐서 완공된 뒤 악취가 나 문제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건물에 살게 될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일하는 사람에게도 처참한 일이다. 빌딩의 건설 현장 높은 층에서 일하는 사람이 용변을 보려면 1층에 내려가야 한다는데 그것이 허용되지 않을 만큼 과중한 업무라면, 누구라도 1층까지 가지 못하고 작업 중인 층에서 용변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간이화장실이 층마다 없으면 최악의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동하고 설치하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겠으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하고 배려하면 챙길 수 있는 것들인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내 가족이라면 어떨까.

호주에서는 와이파이가 느리지만 이런 약속은 철저하게 지킨다고 한다. 단 한 명의 노동자를 위해 설치한 간이 화장실. 와이파이 잘 터지라고 여기저기 안테나는 설치하면서, 화장실 복지에 투자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건설현장이 대조됐다. 돈 되는 것이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나서서 할 텐데. 세금을 많이 내는 호주라서 그런 걸까. 동일한 자원을 어디에 더 집중해 쓰는지로 나라의 국력과 수준을 논해도 될까. 아이들과 간이화장실 하나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얘들아, 성인이 되어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자리에 선다면,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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