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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May 13. 2024

여섯글자글감 <엄마라서 그래>

엄마가 되고 보니,

[광주송정행 SRT열차 5호차 4D]


알파벳이 'D'면 창가자리다. '창 밖 보며 에어팟 끼고 스텔라장 노래 들으면 딱이겠군.' 생각하며 5호차에 올라탔다. 내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는 걸 보고 조금 놀랐다. 두어 살 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며 앉아 있었다. 내 자리와 그 옆자리에 앉은 여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여자는 그제야 나를 발견하고는 통사정하듯 말했다.


"정말 죄송한데요. 아이 자리가 여긴(복도 반대편)데, 아이가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해서... 자리 좀 바꿔 앉아주시면 안 될까요?"

"네. 괜찮아요."


나는 아이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제없다는 듯 복도 왼편 좌석에 앉았다. 복도를 지나가는 승객들의 가방에 어깨를 부딪히고, 시야는 콩나물시루 같은 좌석뿐이었지만 창가석이 무슨 권력도 아니고, 아이를 위해 양보하는 게 당연한 도리였다. 피곤하니 잠이나 자자 생각하며 에어팟을 귀에 꽂고 세상과의 단절을 시도했다. 그런데 사단이 났다.


5D좌석에 앉은 아이가 큰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녀석의 발성이 우렁찼다. 여자가 민망해할까 봐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힐긋 보니 아이는 엄마 몸을 정글짐 타듯 오르고 있었다.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 조용히 하라는 엄마의 말에 딴지를 걸고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아빠는 언제 와 등등... 끝없는 요구를 하며 마치 엄마를 못살게 굴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나는 열차에 타 있는 1시간 30분 동안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민폐를 끼쳐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여자에게 '내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어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를 소리 없이 보여주어 그녀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진실은, 에어팟의 혁신적인 기능인 '노이즈캔슬링'에도 불구하고 아이 목소리는 전혀 캔슬링 되지 않았다.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아이의 목소리가 뒤섞여 정신 사나운 노이즈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둘 중 하나만 듣는 게 낫겠다 싶어 조용히 음악을 껐다. 여자는 계속해서 '조용히' 하라고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어째서 내 등에서도 식은땀이 났을까. 지금 이 순간 여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이기 때문 아닐까? 내 아이들이 저만큼 어릴 때, 나도 아이들과 비행기도 타고 버스도 탔다. 아무리 조용히 하라고 말해도 내 말이 먹히지 않는 아이, 입이라도 틀어막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빠르게 움직이는 열차를 멈추게 할 수도, 내릴 수도 없어 상황을 벗어날 도리가 없는 신세. 동영상을 아무리 보여줘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아이의 요구...과거에 경험한 적 있는 상황이었다.


한 시간 반 내내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여자와, 앞만 보고 눈을 감은 나는 같은 마음이었다. 사람들이 핀잔을 주고 째려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한 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주위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설마 '저렇게 어린아이를 데리고 왜 SRT를 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기를, '엄마가 돼 가지고 아이 하나도 조용히 못 시키는 거야?'라고 원망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랐다. 내 왼편 좌석에 앉은 아저씨가 이어폰을 꽂고 보는 영상이 교회 예배 영상인 것을 보고 조그맣게 안도했다. 아이의 괴성이 들리는 거리의 모든 승객들이 내 마음과 같기를 바랐다.


내릴 때가 임박해 아이는 아빠를 만날 기대감에 목소리가 더욱 고조됐지만 엄마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나는 알아봤다. 빨래처럼 너덜너덜해졌을 엄마의 마음을. 남편을 만나면 하소연과 짜증을 잔뜩 쏟아붓겠지. 아니면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아이를 크게 혼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기진맥진한 그녀에게 텔레파시를 보내고 싶었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얼마나 고생하셨나요. 이제 곧 내리니까 마음 놓으세요. 아이는 곧 자랄 거예요. 이런 시기도 지나갈 거예요. 그러니 조금만 참아요.'


집에 도착해 하루 종일 떨어져 있었던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쇼핑백을 내밀었다. 노티드 도넛과 초콜릿이었다. 아이들은 반가운 표정으로 감탄하며 하루종일 일어난 일과 먹은 음식에 대해 내 앞에서 쉼 없이 떠들었다. 피곤한 나는 영혼도 없이 그 말을 듣다가 갑자기 들린 단어 하나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 오늘 이모가 나한테 네 잎 클로버를 줬거든? 그런데 클로버가 너무 바삭해서 잎이 하나 떨어져 버렸어. 그래서 속상해..."

"뭐라고? 잎이 바삭하다고? 하하하..."


엄마가 왜 웃는지 영문도 모른 채 엄마가 웃으니 따라 웃는 천진한 아이의 얼굴을 본다. 내 마음속에서 도넛처럼 폭신한 사랑이 한 보따리 샘솟았다. 사랑하는 마음, 엄마의 사랑은 피곤한 것도 잊고 샘솟는 화수분이구나. 마른 잎을 '바삭하다'고 표현하는 아이의 언어가 너무 신랄하고 솔직해서, 흠잡을 데 없는 그 순수함이 너무 좋아서 아이를 꼭 안아줬다. 그 순간 열차에서 본 그 여자가 머릿속에 떠오른 건 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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