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아들의 중간고사가 끝났다.

어떻게 살 것인가.

by 새이버링

아들의 첫 중간고사가 끝났다. 긴긴 명절 연휴 전에 끝난다는 점과 그래서 시험 범위가 비교적 적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일까 생각보다 중간고사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 아들도 나도.


시험을 마치고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를 부르는 톤이 낮은 걸 보니 희소식은 아닌 것 같다. 가끔 나를 놀리듯 장난으로 우울한 척하지만 이번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실수를 많이 해서 꽤 여러 개 틀렸다고. 그리고 너무 긴장해서 마킹 실수도 한 것 같다고.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아들은 중간고사를 처음 치른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립초를 나와서 4학년때부터 시험 보는 일에 훈련이 되어 있다고 자신했는데, 웬걸, 이건 내가 기대했던 결과는 아니었는데?


나는 (진짜 아들의 실력과 무관하게) 아들이 올백을 맞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었다고 해도 내 뇌를 아들의 백점에 디폴트세팅했다. 그래야 거기에 맞춰서 학습지도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벽주의자도 아니고 성적에 매우 집작 하는 극성 엄마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아이를 향한 그 믿음을 거울삼아 아이도 자신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더 열심히 공부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내가 선택한 육아 방식이기도 했다.


아들이 훌쩍이며 시험 결과를 안타까워할 때, 나는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점수의 높고 낮음을 떠나 지금이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는 걸. 위기는 곧 기회가 아닌가, 고사가 끝난 직후 아들이 느끼는 후회, 아쉬움, 뿌듯함 등의 갖가지 감정을 시간에 흘려보내지 않고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끄집어내고 이야기 나누고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역시, 나는 기록중독자 엄마가 맞다.)


남편은 시험이 끝났으니 야구장에 가자고 티켓을 예매했지만 저녁에 비도 올 것 같고, 이런 기분으로 야구장에서 신나게 경기를 관람하긴 싫었다. 뭔가 중요한 순간을 신나는 감정으로 덮어버리지 말아야 했다. 야구장은 취소를 했고, 나는 아들을 만나자마자 휴대폰을 압수(?)했다. 아들은 시험을 못 봐서 내가 자기 휴대폰을 뺏는다고 생각했는지 뾰로통했다.


“휴대폰을 잠시 뺏는 이유는, 내가 지금부터 너와 하려는 일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네 정신이 분산되는 걸 막으려는 의도야. 시험을 못 봤다고 느끼는 지금이 엄마는 너에게 기회라고 생각해. 어떤 아쉬움이 있는지, 원인은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일이 지금 이 순간 시험 후 마음껏 노는 일보다 앞서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너는 엄마와 1박 2일 동안 시험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는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게 될 거야. 네가 기대했던 점수와 부족했던 노력에 대해서, 그리고 비교적 잘했던 노력과 강화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자.”


내 말을 들은 아들은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일단 엄마가 화가 크게 난 것은 아니고, 휴대전화로 페널티를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엄마의 1박 2일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아들에게 감사했다. 짜증 내고 불쾌해했다면 어땠을까? 나도 화가 났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은 “그러니까 엄마는 위기는 곧 기회니까 시험에 대해 분석해 보고 개선해 보자는 말이지? 오케이.”라고 웃으며 끄덕였다. 여기서 나는 1차로 감동했다.


A4 용지를 나눠서 아들과 시험에 대한 분석을 차곡차곡 적어 나갔다. 뭔가 해명하려고 할 때 ‘말하지 말고, 거기다 적어!’하면서 떠오르는 후회나 아쉬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들에 대해 적도록 했다. A4는 어느새 꽉 찼다. 아들이 이런 작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을 텐데 잘 따라주어서 고마웠다. (사실 나도 처음이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온 가족이 쪽갈비를 먹으러 옆동네로 걸어 다녀왔다. 보슬비가 내렸고 나와 아들은 우산을 함께 썼다. 아까의 작업 덕분인지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 코인노래방이 보였다. 아빠의 적극적인 리드로 비좁은 코인 노래방에 우리 넷이 들어갔다.


마이크를 통해 듣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불러일으켰다. 사랑스럽다. 소중하다. 너무 감사하다는 느낌 말고는 들지 않았다.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들로 자랐구나. 외로운 세상에 음악과 벗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그게 어느 정도는 이루어진 것 같아서 감사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은준이가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언제 이런 노래를 알았을까? 제법 따라 부르는 아들을 빤히 쳐다봤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함께 우산을 나눠 쓰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약 2km)에 아들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 엄마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니까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고 기분이 엄청 좋아요.”

그 순간 아들의 표정은 한 편의 시였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떠서 집에 가는 내내 자기 이야기를 했다. 아직도 엄마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아들이 얼마나 고맙고 벅찼는지 모른다. (이때 2차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한참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 번씩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직 내 옆에 있구나...’를 반복해서 되뇌면서.


시험은 네 인생에 전부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구나. 네가 부른 노래의 제목처럼 화내며 과거를 되돌아보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그저 살아갈 뿐이구나. 오늘이 아주 중요한 날이라는 직감은 맞았다. 시험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고 아들의 감정을 존중하고 어루만져준 것이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성공은 완주가 아니다. 성공은 완주를 ‘추구하는 것’이다.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 우리는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곧 그 쾌감은 허탈감으로 이어지곤 한다. 우리가 가장 강력해지고 창조적 영감을 발휘하는 때는 ‘추구할 때’다.”

팀 페리스는 그의 저서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노력하는 이 순간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