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aks Perth Hotel
왼쪽에는 HOT, 오른쪽은 COLD라고 적힌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다. 두 개의 수도꼭지를 번갈아 돌려야 알맞은 온도의 물이 나올 것이다. 본능적으로 COLD를 먼저 돌렸더니 물이 나오지 않았다. 더 세게 돌렸다. 찬물이 찔끔 나오더니 거울 뒤 벽에서 마치 드릴로 구멍을 뚫는 듯한 소리가 난다. 1초간 인상이 찌푸려졌다. 서둘러 HOT수도꼭지를 돌렸다. 잠깐 손 씻는데 그리 많은 물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뜨거운 물을 만나진 못했다.
나는 이미 이 숙소에 캐리어를 풀었다. 3일간 우리의 보금자리가 될 이 방을 찬물을 트는 수도꼭지 하나 때문에 바꾸느라 노력과 시간을 쓰기 싫었다. 게다가 지금은 새벽 한 시가 넘었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자정에 호주 퍼스 공항에 도착했다. 일단 자고 내일 방을 바꿔달라고 요청해볼까 하다가 말았다. 다시 짐을 싸고 프런트에 요청하고...그건 생각만 해도 귀찮다.
신기한 것은 3일 동안 가족 누구도 찬물 수도꼭지에 대한 불편함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때때로 드릴로 벽을 뚫는 소리가 들렸지만 화장실을 나올 때 누구도 수도꼭지가 이상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세면대는 고작해야 양치를 하거나 손을 씻는 용도로만 사용됐다. 가족 모두가 나 같았을 것이다. 사실 난 그 소리가 싫어서 조용히 칫솔에 치약을 묻힌 뒤 부엌 개수대에서 양치를 했다.(내가 묵은 숙소는 취사가능한 호텔이었다.)
3박 4일의 숙박이 끝나고 오전에 체크아웃을 했다. 프런트의 여직원은 친절하게 내게 물었다.
“How was your stay?"
"It was perfect."
나는 새삼스럽게 숙박이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짧게 그녀의 밝은 표정을 확인한 뒤 뒤이어 말했다.
“except for...”
찬물 수도꼭지를 틀면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꼭 그것을 고치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소가 아주 좋았다고 한번 더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예의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호텔문을 나서면서 나 자신이 참 쿨하다고 생각하는 사치를 부렸다.
남편은 여행 중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가 예약한 이 호텔에 대해 서너 번 정도 만족스러운 의사를 표했다. 찬물 수도꼭지를 틀면 소음이 들리고, 그릇과 접시 세트가 충분하지 않았으며, 실내화도 없고, 조명은 어두웠으며 식탁에 의자가 두 개 밖에 없었고, 창밖에 뷰라고는 꽉 막힌 건물밖에 없고, 스테이크를 구운 뒤 창문이 열리지 않아 환기도 잘 되지 않았던 그 숙소가 아주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는 겸손한 여행자였다. 서호주는 숙소를 불평할 겨를도 없이 완벽하게 멋진 여행지였다. 마트는 사워도우와 납작복숭아를 비롯해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들로 가득했고, 골목을 돌면 온통 플랫화이트와 바나나브레드를 파는 카페 천지였다. 찬물 수도꼭지 따위는 완벽한 내 여행에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마음에 드는 점이 확실하면 숙소에 관대하다. 뷰와 위치가 끝내주면 매트리스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거나 생수를 제공하지 않는 등의 자잘한 불만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 매트리스가 안 움직이게 주의하고, 로비로 내려가 생수병에 물을 채우거나 마트에서 대용량 물을 사오면 될 일이다. 방법은 찾으면 있고 숙소는 내 몸이 편할수록 비싸다. 숙소에 큰 비용을 들일 생각이 없는데 불편을 감수할 의지도 없는 여행자는 불만으로 똘똘 뭉쳐 불행으로 내던져질 것이다. 한도 끝도 없을 단점을 찾느라 한정된 여행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내 여행에는 불만이 앉을 좌석이 없다.
불평을 가볍게 넘기는 재주는 초능력이다. 여행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내준다. 받을 준비가 된 이의 그릇만큼 내준다. 여행에서 담아갈 만족감이 100g일때, 수도꼭지와 먼지를 불평하는 일로 1g씩 덜어내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여행포대에 1000g이라도 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의 승패는 태도에서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