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에도 공식이 있다.
딸아이 학원을 바래다주는 길이었다.
겨우 차 한 대 정도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에 천천히 들어섰는데 갑자기 반대편에서 차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분명 이 골목은 내가 먼저 진입했고, 비좁은 길에서는 먼저 진입한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매너이거늘, 검은색 구형 그랜저는 나를 향해 밑도 끝도 없이 돌진해 왔다. 나는 황당해서 “아, 뭐야... 갑자기 오면 어떡하라고...”하고 탄식을 했다. 그때 뒤에 앉아 이 상황을 지켜보던 민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엄마, 초보자니까 우리가 비켜주자.”
“응?”
순간, 내 뒤통수가 멍해졌다. 민하는 되묻는 나를 향해 ‘초보자인 것 같으니까’도 아니고 ‘초보자니까 비켜주자’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아... 초보자... 초보자니까 저렇게 오는 거겠지, 어휴 그래. 우리가 비켜주자.“
나는 들어온 길로 다시 한참을 후진하면서 민하가 한 말을 곱씹었다. 블랙 그랜저에 탄 운전자가 보이지는 않지만 (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분명 이런 상황에 밑도 끝도 없이 돌진하는 사람은 무개념 운전자 아니면 운전이 서툰 사람, 초보자가 맞다. 전자의 경우라면 열받고 화가 났겠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선배 운전자로서 양보해 줄 마음이 있다. (꽉 막힌 길이라면 운전을 더 잘하는 쪽이 양보하는 게 아름답지 않은가?) 상대가 어느 쪽인지 판단하기 전까지 나는 내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화를 낼 참이었다. 그런데 민하가 시의적절하게 상대방을 ’ 초보자‘라고 정의해 준 것이다.
진짜 상대를 초보자라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초보자라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워 그렇게 말한 건지 민하에게 묻지 못했지만, 분명한 건 적어도 화를 낼뻔한 그 순간, 민하가 나보다 현명했다는 사실이다.
때로 난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혹은 잘 아는 지인까지도 오해할 때가 있다. 또 누군가는 나를 오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오해를 하든지 받든지 간에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어떤 오해가 나의 정신건강에 더 좋을까? 처음에 검은색 그랜저가 나를 향해 돌진할 때 나를 무시한 거라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날 뻔했다.) 그러나 민하가 ‘저 사람은 초보자’라고 정의를 내려주니 거짓말처럼 화난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크게 화내지 않았고 내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며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에 글감을 얻는 수확이 있었다.
결국 태도다. 진실을 모를 때 오해가 시작된다. 나는 오늘 딸에게 잘 오해하는 태도를 배웠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같은 너그러운 오해와 ’나를 만만하게 보다니!‘라고 납작한 오해를 하는 것. 둘 중에 무엇이 내게 이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