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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희곡, 연극 <고목>

연극 <고목>

함세덕 작, 전인철 연출


1944년에 <마을은 쾌청>으로 발표되고 1947년 이 작품을 개작 무대에 올려진 작품이다. 무대에 올려질 당시 국내는 이념 대립이 극심하던 때다. 극작가 함세덕은 1915년생으로 40년부터 44년 사이 친일극단인 현대극단에서 활동하다 해방 후 태도를 바꿨고 47년 월북해 50년 전쟁 중 사망했다. 사망 전 10년 동안 24편의 장단막극을 번안 창작해 발표했다. 문득 그가 월북하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어떤 작품을 발표했을까 궁금해졌다. 80년 전 작품이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희곡이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상징과 유머 거기에 다양한 이념 대립 속에서 표현되는 인간의 심리까지 빠지는 게 없었다.


해방직후 한 마을, 긴 폭우로 마을은 난리통이다. 이 와중에 오 각하(이승만)가 마을에 연설을 온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줄을 대기 위해 법석이고 이런 사람들 중 박거복도 있다. 거복은 3대째 부를 축적해 마을 지주로 행사하지만 자린고비다. 그의 마당엔 500년 된 고목(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거복은 이 나무를 자신의 부와 명예에 어떻게든 사용하려 한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두 개의 작은 언덕과 한 대의 마이크가 전부인 무대에서 웅변적으로 연기된다. 십여 명의 코러스는 2층 객석에서 오 각하 연설 현장의 환호와 갈채를 만들어 내어 객석에선 그 장면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연기를 하는 배우는 무대에 그렇지 않은 배우는 무대 뒤와 객석 1열에 앉아 대기하거나 연기를 한다. 그만큼 무대를 다각도에서 크게 사용했다.


연극을 보며 이 극이 입체 낭독극과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했다. 배우들은 열연했지만 그 연기는 공허했고 넓은 무대의 쓰임을 발견하지 못했다. 지속적인 토론과 웅변식의 극 진행은 따분했다. 참 두 <코리아의 통일>에 이어 이진경 배우를 두 번째 보는데 무대에서 참 매력적이다. 조어진 배우도 눈에 띄었다.


뭔가 허전한 느낌으로 극이 끝나고 너무 궁금해 연극 관계자인 지인에게 물었다. 원래 이 극단 스타일이 이런가요? 그렇단다.  연출 스타일도. 극이 끝나고 로비엔 연극계 인사들로 보이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나는 잘 모르지만 ‘재현하기와 재현하지 않기’를 고민하고 표현한다는 전인철 연출은 연극계의 메인 스트림인 모양이다.


연극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지 고작 3년이다. 여전히 연극이 재미있고 연극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영감을 얻는다. 그런데 이런 연극을 보면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희곡의 가치는 알겠는데 연출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이런 연극 말이다. 이런 연극이야 말로 남편과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아쉽게 혼자 보았다.


아무튼 나는 보는 동안 일어나 나오고 싶도록 진행되는 연출의 극은 좋아하지 않는다. 낭독극으로 보았다면 더 만족했을 것 같다.


함세덕 작

전인철 연출

극단 돌파구 제작

김정호 이진경 김은희 김민하 윤미경

조명규 조어진

김영노 안병식 황성현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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