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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트렌디함은 이런 것, 연극 <유령들

양손프로젝트의 헨리크 입센 3부작 중 첫 작품

by 소행성 쌔비Savvy


공연 시작 안내가 끝나면 암전 없이 배우 셋이 성큼성큼 무대로 들어온다. 무대엔 팔걸이의자 하나, 스툴 하나, 벤치 하나만 있고 객석은 무대를 향해 사방에 배치되었다.


배우들은 매우 멋스럽고 트렌디한 검은 의상을 입었다. 양종욱 배우가 먼저 극을 설명한다. “이 작품은 헨리크 입센의 희곡이다. ‘유령’의 노르웨이어 원제는 ‘Gengangere’로, 뜻은 ‘다시 걷는 자(again-walker)’이다. ‘망령’, ‘유령’, 또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오는 사람이나 그러한 현상’을 뜻한다.”

이어서 손상규 배우는 허공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이곳은 어마어마한 대저택이고 저택 밖엔 고아원, 교회 등이 있다. 양조아 배우는 알랑 부인이라 소개한다. 양조아 배우는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하고 관객들은 당연하다는 듯 박수를 친다. 매우 신선한 시작이었다. 종종 이런 형식의 연극을 보았지만 이처럼 자연스럽고 임팩트가 있진 않았다.


이야기는 1881년 어느 날 알랑 부인의 대저택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하루 동안 알랑 부인의 30년 가까운 결혼 생활의 전말이 낱낱이 밝혀지는데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다.


알랑 부인은 주위의 시선, 귀족이 갖춰야 할 각종 금기에 갇혀 자신의 불행과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굳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되는 시선이나 관습에 갇혀 반복되는 불행은 유령이며 이런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에 순응하는 우리는 곧 유령들이 아닌가?


양손 프로젝트는 박지혜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 네 명으로 이루어진 창작 공동체이다. 이 작품은 박지혜가 연출을 맡고 각색은 넷이 같이 워크숍을 하듯 만들었다고 한다. 여럿이 같이 19세기 작품을 현재로 끌고 왔고 현재에 대입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로 선보였다.


고전을 다시 무대에 올릴 땐 이랬으면 한다. 이야기의 핵심은 지키되 진부하지 않고, 배우들은 작품을 점령하여 친철하고 매력적으로 관객을 설득해야 한다. <유령들>은 그랬다.


양종욱 배우의 소심한 듯 친절한 연기, 손상규의 거칠고 동시에 슬픈 눈빛 연기, 양조아 배우의 당당한 듯 소심한 동작 연기 등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유령은 실체가 없고,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어둠을 두려워한다.’는 극단의 설명처럼 배우들은 자신의 배역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연기를 했는데 이 자체가 연극에 빠져들되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양손프로젝트는 <유령들>을 시작으로 헨리크 입센 3부작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란다. 벌써 내년 이들이 선보일 새로운 입센이 기대된다.


박지혜 연출

헨리크 입센 원작

양손 프로젝트 각색

손상규 영조아 양종욱 출연

제작 LG아트센터 @lgartscenter , 양손프로젝트@yangson.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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