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리터닝 프로젝트의 마무리는 ‘머묾’이다
여행을 할 때 무엇을 볼 것인가 보다 어디에 머물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머무는 곳에 따라 여행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번 군산 여행은 다른 요소 없이 리터닝 프로젝트의 완결 ‘호텔 인그리드’ 투숙이 목표였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걷는 시간보다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호텔 인그리드는 그런 선택에 대한 하나의 답처럼 보였다.
’ 호텔 인그리드‘가 자리 잡은 군산 영화동 월명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이 우리 쌀을 더 편하게 수탈하기 위해 항에서 도심까지 반듯한 격자 모양으로 설계된 지역이다. 이런 도시의 역사성을 부여하여 호텔 이름을 ‘in Grid’라고 지었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새 호텔이 분명한데 시간이 지나간 흔적 위에 조심스럽게 현재가 얹어진 기분이었다.
내가 사용한 객실은 3층의 트윈 룸이었다. 바닥과 벽 하단부 돌 마감은 온돌 시스템으로 맨발로 디디니 기분이 좋았다. 변기와 목욕실은 분리되었으며 큰 욕조에선 그대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천정이 투명했다. 책상대신 작은 화장대와 낮은 테이블도 휴식에 맞춤했다. 내가 좋아하는 의자 에곤 아이어만의 와일드 스피어스가 화장대용 의자로 놓여있어 기분이 좋았다(공간 이곳저곳에 놓인 빈티지 의자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발코니로 나가는 문은 커튼 대신 나무 덧문을 달아 공간이 전체적으로 따듯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조도그 다소 낮은듯한 조명이 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천정에 둥근달처럼 매달린 조명도 좋았지만 욕실과 화장실 벽 하단의 동전만 한 센서 등은 이용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라 여겨졌다.
호텔은 객실뿐만 아니라 부대시설이 중요하다. 1층 로비엔 카페테리아 트레비아가 자리 잡고 있어 커피와 차 그리고 와플 등을 즐길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여기서 터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바로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자바, 스시 전문점, 젤라토 숍 노베오와 위스키 바, 재즈 클럽까지 부대시설로 이용할 수 있다. 이 공간들 역시 음악과 조명이 좋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서비스가 편하게 느껴졌다.
서울 서교동에 있던 ‘몽로’의 문현숙 지배인을 이곳 호텔 프런트에서 만나서 깜짝 놀랐는데 호텔의 매니저로 3개월 전부터 근무 중이라고 했다.
밤이 되자 공간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낮에는 조용히 시간을 품고 있던 건물들이, 밤에는 사람과 소리로 채워진다. 잔잔한 음악과 웃음, 잔이 부딪히는 소리들이 골목을 따라 번지며 도시의 온도를 조금씩 높인다. 관광지에서 흔히 느끼는 ‘보고 지나감’이 아니라, 그 안에 섞여 있는 감각. 그것이 이곳이 가진 힘이었다.
욕실의 천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생각보다 가까웠고, 실내에 있으면서도 바깥의 시간과 이어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엔 비가 내렸다. 덕분에 또 다른 정서를 느꼈다. 머문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경험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곳은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군산의 원도심은 한때 멈춰 있던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체류를 통해 다시 움직이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머물며 느끼는 여행. 그 변화의 중심에서 나는 비로소 알게 된다. 여행의 깊이는 이동의 거리보다, 머문 시간의 밀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그래서 이곳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숙박이 아니라, 한 도시를 천천히 읽어내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방식은, 아마 오래 기억될 것이다.
총객실은 24실이며 9개 스타일이 있다고 한다. 현재 가오픈 중이고 4월 10일경에 전 객실의 예약이 열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