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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Dec 26. 2023

사월글방 - 마음편지 4

그대에게 ‘좋은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살아 있다는 실감>

며칠 전, 차로 왕복 한 시간 반 이상을 운전해야 하는 곳으로 수업을 갔습니다. 15분 전 쯤 도착했는데 모임 장소가 열려있지 않았습니다. 수업 시작 전에 보내야 할 문서가 있어서 조금 더 서둘렀던 분주함이 무색해지자 살짝 불편한 감정이 밀려들었습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니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결국 모임 장소에는 시작 전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참석자들이 대부분 늦는다고 하여 수업도 10여 분이 지나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늦게 도착한 모임 장소의 주인은 허겁지겁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 터였습니다. 독립한 아이들이 집에 오는 날이라 청소를 하느라 늦었다고 했습니다. 시작 시간 5분을 남겨두고 도착한 그였으니 완전히 늦었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 생각해보니 이전엔 내가 15분이나 일찍 온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의 입장에서는 늦은 게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무척 미안한 표정으로 문은 열려 있으니 다음부터는 먼저 들어와 있어도 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모임 담당자가 10분이나 늦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꼭 필요한 것을 챙기지 않아서 늦었다는 사정 역시 이해 못 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이 얼른 문서를 정리해 보내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과 한 달 간의 안부를 나누며 커피 한 잔과 식빵에 수제 딸기잼을 바른 토스트를 먹었습니다. 평소에는 수업 진행에 집중하느라 빵은 입에도 못 댔는데 따뜻하고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난 것입니다.

계획했던 일이 그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은 스트레스가 됩니다. 계획을 수정하거나 취소해야 하는 결정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과 같으면 앞서 말한 상황이 그날 전체의 기분을 좌우하는 꽤 심각한 일이 됐을 것입니다. 요즘 나는 좋지 않은 기분이나 상황에 나 혹은 나의 시간을 잡아먹히지 않도록 하는 일에 꽤 신경을 씁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화를 누르거나 어려운 일에 도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과 거기 놓인 ‘나’를 관찰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타의에 의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변수에 대해 그들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늘 실패했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런 지레짐작은 오히려 피로도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대신 ‘상황이 종료된 후의 나의 모습과 감정’을 상상해봅니다. 그 후에 대체로 모두에게 좋은 것으로 귀결되는 방향을 그려봅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는 유야무야와는 조금 다릅니다. 말했듯이 부정적인 감정을 무조건 참아내는 것은 나도 불편하고 상대에게 어떻게든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찰’하는 것입니다. 나를 3인칭으로 바라보며 마음의 부정적 불씨를 잠재우려고 노력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의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여러 감각을 관찰하면서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물론 여전히 분노, 억울함, 격정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후에 남는 것은 예외 없는 후회입니다. 부족하고 무지한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이유는 ‘살아있다는 실감’을 위해서입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나 평온을 위해 숙고하는 노력 등이 가져오는 삶의 원동력은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 찾아오는 우울감을 보기 좋게 물리칩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를 봅니다. 거울 없이, 기대 없이. 그리고 실망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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