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집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1
엄마는 방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도 떨어진 것을 못 보는 타입이다. 그야말로 무릎이 닳도록 쓸고 닦고를 반복한다. 나는 엄마를 조금도 닮지 못했다. 지저분한 건 유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지런을 떠는 성격이 아니다. 지나치게 깔끔한 엄마를 봐서도 엄마와 딴판인 나를 위해서도 집은 으리으리해서는 안 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 집이 한 번도 부러운 적이 없는 이유다.
나에게 응당 집이라면, 가족구성원의 힘만으로 청소 및 관리할 수 있는 규모에 떨어진 생필품을 채우거나 구급약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방과 방 사이가 멀지 않아야 한다. 건물은 남향으로 창은 전체 벽면의 1/3~1/4 정도, 단열은 확실해야 한다. 나이가 좀 들고 보니 주택이라면 단층, 그마저도 가급적 턱이 없고 층고 차이가 있더라도 램프(경사로)로 연결되면 좋을 것 같다. 아파트라면 10층 이하가 좋을 것이고.
그것이 내가 갖는 집에 대한 작은 로망이다. 아니, 현실이다. 나에게는 현실 이상이 중요하지 않았다. 도달할 수 없는 꿈은 꾸지 않고, 실패할 도전은 미리 포기한 적도 자주 있었다. 그게 내가 바로 서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의 집도 세웠다. 아주 현실적으로.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바람을 의심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간 나의 이력은 무척 허술했다. 그렇게 세운 집도 곧 무너질지 모르겠다.
전에 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룸에 가수 이효리가 인터뷰이로 나온 적이 있다. 이효리는 조용히 살고 싶지만 잊히기는 싫은 바람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에 손석희가 말했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이효리는 이루어질 수 있는 꿈만 꾸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고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손석희의 표정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현재까지도 그 짤은 유의미하게 돌아다닌다.
그렇게 보면 꿈이나 바람, 소망이라는 것은 그저 꾸는 것이고 그 실현여부 혹은 가능성의 우위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면 꿈의 집, 집에 대한 로망을 말할 때 으리으리하게 크고 멋진 집, 엄청나게 비싼 집, 집뿐만 아니라 온갖 것이 최고급인 집을 상상으로나마 살아보는 게 뭐 어떻냐는 것이다. 음... 아니, 그렇더라도 그런 집은 아니다. 어떤 상상과 로망, 그리고 가능성을 갖다 대도 나는. 반나절이면 온 가족이 모여 대청소가 가능한, 방과 방 사이가 가까운 집을 택하겠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나에게 집은 로망을 덧씌울 필요가 없다는 걸 빙빙 돌려 실토한 것 같다. 이미 그 바람에 유사한 집에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