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4살 딸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 거미야! 무서워~”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거미가 널 더 무서워 할 것 같은데? 네가 거미보다 몇 배는 더 크잖아”라고 말해주었다. 주변에 있던 아이의 친구들은 웃었고, 아이는 “그래도...”라며 무서움을 살짝 이겨낸 듯했다.
4살이었던 딸이 6살 정도 되었을 때였나? 시댁에 온 가족이 모인 날. 아이가 소파에서 뛰어내리며 놀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때 남편의 사촌형이 “아이고 괜찮아? 일어나봐. 방바닥 안 깨졌나”라고 말해 사람들은 웃고, 아이는 울다가 웃어버렸다. 사람이 아닌 것에 초점을 맞추니 재밌어진 상황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이런 생활 유머(?) 같은 시선을 담고 있다. 바로 탈(脫)사피엔스 화법. 그것이 이 책의 재미이자 의미다.
보통 역사서를 대할 때는 선사시대의 연대표 등장부터 질려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그 저술 배경은 또 얼마나 구구절절한가. 그런데 『사피엔스』는 다르다. 먼저 빅뱅 시기로 추정되는 135억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물리학, 화학, 생물학 그리고 역사라는 단 네 단어의 정의에 빗대어 간단하게 정리해버린다. 그것은 한 쪽도 안 되는 분량이다. 그리고 책의 주제인 인류 역사의 3가지 혁명, 바로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에 관한 설명도 6줄로 충분했다. 이렇게 간단명료한 도입부라니! 지금껏 접한 역사 책 중에서 첫 페이지에 매료당하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첫 장의 소제목부터 유발 하라리의 탈(脫)사피엔스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으니, 문제의 소제목은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며, 여기서 지칭하는 그 동물은 바로 호모 사피엔스다.
10만 년 전만해도 현재의 인류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를 ‘호모(인간)’로 시작하는 종은 최소 6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호모 종을 절멸시킨 형제살인범이자, 가는 곳마다 대형 포유류 대부분을 멸종시켜버린 연쇄살해범으로 군림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어째서 <호모 사피엔스>였을까.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다른 다섯 종에 비해 특별할 것도 없었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이었는데 말이다. 그 의문을 해결할 열쇠가 바로 <인지혁명>이다. 우리의 조상은 불을 사용하고, 직립보행하면서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언어’를 사용했다. 인지혁명의 정점에 있던 언어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게 만들었다. 즉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60쪽)
약 200속 가까이 되던 몸무게 45kg 이상의 대형동물이 절반으로 줄었을 무렵, 호모 사피엔스는 <농업혁명>으로 진입했다. 약 12,000년 전의 일이다. 인류는 더 이상 떠돌지 않아도 되었고, 맹수에 잡아먹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정치체계와 다양한 전문 영역이 발달하게 되었다. 인류 전체로 본다면 대단한 진보다. 하지만 인구 90% 이상을 차지하는 농부들은 오늘만 걱정했던 수렵채집인과 달리 내일의 날씨와 내년의 농사를 걱정하게 되었고, 수렵채집 시절보다 더 많이 일했지만 더 가난했으며, 한정된 작물과 가축 덕분에 수렵채집인보다 영양섭취가 나빴다. 게다가 잉여식량은 지배자와 엘리트에게 집중되었으니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의 해온 무엇이다.”(153쪽) 그렇게 보면 작가의 주장대로 <농업혁명>은 과연 역사상 최대의 사기다. 또 밀의 입장에서 사피엔스를 길들이는 과정(125쪽)을 보고 있자니, 탈(脫)사피엔스 화법의 신선한 역설에 실소가 터지다가도, 희대의 사기를 당한 내 조상에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약 600쪽 분량의 『사피엔스』가 가장 많이 할애한 부분은 <과학혁명>이다. 무려 40%나 된다. CCTV가 아닌 정찰위성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바라볼 때, 최근 500년은 눈 깜짝할 시간이지만 가장 극적인 변화가 짧은 주기로 일어났던 시기다. 심지어 그러한 대 변혁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무지의 인정에서 시작되었다. 인지혁명 이후 인류는 상상력을 동원해 국가, 신, 법, 교역 등을 발전시켰고. 그와 함께 “우리 VS 그들”로 진화한 이들은 화폐, 제국, 종교를 통해 지구적 비전을 가질 수 있었다. 초기 <과학혁명>은 제국주의와 공생했고, 자본주의를 공고히 했다. 과학혁명에 기댄 산업혁명은 시간표와 조립라인을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틀로 변화시켰고,(499쪽) 사회혁명은 가족과 지역 공동체가 붕괴하고 국가와 시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 사건이다.(502쪽)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약 450년 뒤 과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개발된 원자폭탄은 세계 종말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었고, 제국은 은퇴했다. 약탈도, 노예도, 제국과 함께 사라졌다. 우리 시대는 평화를 사랑하는 엘리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역사상 최초의 시대다.(528쪽) 하지만 작가는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를 사는 사피엔스여, 당신은 행복한가?”라고 질문하면서 지금껏 어떤 역사서에서도 묻지 않았던 인류의 안녕을 궁금해 한다. “대부분의 역사서는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 전사의 용맹, 성자의 자선, 예술가의 창의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책들은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짜이고 풀어지느냐에 대해서, 제국의 흥망에 대해서, 기술의 발견과 확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이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공백이다. 우리는 이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560쪽) 역사 속에서 개인의 행복과 고통을 발견하자는 제안이라니! 이렇게 『사피엔스』는 역사서의 새로운 모델을 정립했다.
작가는 앞서 역사의 ‘사후 깨달음의 원칙’에 대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야 말로 그 시대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다”(338쪽)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게 따지면 현재의 행복도 잘 모를지 모를 인류에게 작가는 미래의 안녕까지 염려해보자고 제안한다. 마지막장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은 생명공학과 유전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물 공학 등으로 인간의 한계 초월 분기점에 서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선택에 주목하고 있다. 그 시선에는 길가메시(불멸을 원했던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의 왕)의 어깨 위에 올라탄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향방에 대한 우려가 잔뜩 실려 있다. 그리고 과연 만족을 모르는 인류의 특성상 영생을 얻는다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그 향방에 우리가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경고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총·균·쇠』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뉴기니인 친구, 얄리의 “왜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총·균·쇠』를 저술했다면, 유발 하라리는 “21세기의 호모 사피엔스는 안녕한가?”라는, 역사서로서는 꽤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기 위해 『사피엔스』를 세상에 내 놓은 것이다. .
역사는 쉬워야 한다는 작가의 지론을 그대로 실현한데다, 신랄한 진단과 위트 넘치는 촌철살인으로 재미까지 더한 이 책을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어보고 싶다. 우리의 안녕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