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달 april moon Dec 30. 2019

수많은 물음표 가운데

페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오~ 병약한 미하엘. 그는 지배당했다. 열다섯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구토를 하던 중 도움 받았던 어머니뻘의 여자 한나로부터. 그 지배는 그녀를 향한 연민이기도, 죄책감이기도, 그리움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의 평생에 걸쳐 뿌리내린 그림자였다.



열다섯 남자와 서른여섯 여자는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랑에 빠졌다. 목욕을 하고, 사랑을 나누고, 누워있기를 하던 그들은 의식 맨 앞에 하나를 추가했다. 바로 책 읽기. 한나는 미하엘에게 목소리가 예쁘다며 책을 읽어주길 부탁했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두 사람의 관계를 적절히 포장하는 장치처럼 보였다.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행에서 한나는 음식을 주문할 때도,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던 미하엘에게 화를 퍼부었을 때도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기이한 행동은 문맹을 감추고 싶었던 자격지심의 일부임이 나중에 밝혀졌고 그것은 그녀의 삶을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한나가 떠난 지 8년 후. 법대생인 미하엘이 세미나로 참석한 재판에서 둘은 재회한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과거 청산 과정에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열다섯의 미하엘을 만나기 전 강제수용소에서 감시자로 일했던 이력 때문이다. 미하엘은 한나와 관련된 모든 재판에 참석하면서 그녀가 강제수용소에서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나가 종신형을 받는 모습을 지켜본다.

한나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중략) 그 때문에 그녀는 필적감정사와의 대면을 피하기 위해서 보고서를 본인이 작성했다고 시인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재판과정에서 사생결단을 하듯이 진술했던 것인가? (중략) 그러나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한나의 수치심이 법정과 수용소에서 보여준 그녀의 행동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 범죄자의 정체를 드러낸다고?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두려워 범죄를 저지른다고?
나는 당시에 그리고 그 후로도 이와 똑같은 질문들을 나 스스로에게 얼마나 자주 던졌던가. (168~169쪽)

둘의 재회 이후 미하엘에게는 수많은 물음표만 남았다.


그 뒤 수 년 간 자신의 삶에 충실한 듯 보였던 미하엘은 이혼 후 진로 결정을 앞두고 마주한 <오딧세이아>를 통해 다시금 한나와 연결된다. 다시 한 번 책 읽어주는 남자 미하엘. 그가 낭독 테이프를 보내던 시간 한나는 감옥에서 글을 깨우쳤다. 그녀는 미하엘이 미처 읽어주지 않은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다른 책을 읽으며 자신이 통과한 역사의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사면권을 얻어 출소하기 전 날 스스로 세상을 버리는 선택을 한다. 한나가 죽음을 택한 이유는 정확히 서술되어 있지 않다. 누구는 죄책감 때문에, 누구는 수치심 때문에, 누구는 사랑을 잃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모두일 수도 있다.

한나는 글을 알기 전 오히려 떳떳했고 당당했다. 자신의 죄를 묻는 판사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냐며 되물을 정도로. 하지만 그녀는 알게 되었다. 다른 세상을. 자신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전 재산을 희생자에게 주고 싶다는 유서를 쓰게 된 게 아닐까. 한나는 더 이상 글을 알기 전으로, 글을 알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글을 알기 전에는 문맹이라는 수치심이 자존심 짓눌렀고, 글을 알고 난 후에는 타인의 생과 사에 무지하게 관여했던 수치심이 삶을 짓눌렀던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가 죽음을 택한 이유는 수치심과 죄책감에 비중이 실린다. 하지만 과연 그녀가 사면되지 않았다면 죽음을 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어찌됐거나 그녀의 죽음은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을 것 같다. 때문에 또 다시 그녀가 이전에 가벼이 여겼을지 모를 타인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적어도 한나의 죽음은 속죄의 일부라고 본다. 한나가 그런 속죄를 택했다면 미하엘은 어떨까. 미하엘은 괴로웠다. 수영장에서 그녀를 외면했던 배반 때문에. 법정에서 그녀를 굳이 아는 체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리고 수감된 그녀에게 낭독 테이프를 보내며 단 한 번도 사적인 이야기를 담지 않은 것에 대해. 미하엘은 한나에게 사랑한다고 먼저 고백했으나, 그녀로부터 줄곧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미하엘이 가진 죄책감의 대상은 한나 뿐이 아니었다. 아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었던 미안함도, 이혼을 선택한 후 딸에게 빚 진 미안함도 그를 충분히 괴롭혔다. 미하엘은 미안함에 휩싸인 자신의 인생을 이겨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얼핏 한 남자의 성장 과정을 담은 이야기 같다. 하지만 자꾸만 질문이 등장한다. 사랑인지 아닌지, 행복인지 아닌지, 옳은 일인지 아닌지, 용서해야 하는지 단죄해야 하는지. 그렇게 역사적 시대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과연 미하엘은 그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한 걸까?


아, 책을 덮는 나에게도 자꾸만 물음표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스무 살 차이의 사랑에 대한 도덕성에 대해, 두 번째는 강제수용소와 죽음에 대한 사회적 분노 그리고 감시자들의 개인적 선택의 납득에 대해, 세 번째는 종신형 수감자의 자기반성에 대한 감화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하엘에게 고개를 돌려본다. 미하엘에게 한나는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일까, 애써 봉인해야 할 추억일까. 못내 그것이 궁금한 나는 누구보다도 미하엘에게 애잔한 연민을 느낀다.


함께 한 음악

- 거울 속의 거울 Spiegel im Spiegel

매거진의 이전글 탈(脫)사피엔스 화법으로 사피엔스의 안녕을 묻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