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같은 ‘그 일’ 찾았나요?
<읽고 쓰며 함께 나아가는 길>
직업과 연결된 운명적 인물이라면 야구의 신,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이 떠오릅니다. 그는 일본과 한국에서 프로야구 감독을 맡아 많은 우승을 달성한 명장입니다. 반면 스몰야구, 이기는 야구를 한다는 비난도 꼬리표처럼 따랐습니다. 상반된 평가처럼 팬덤에서 호불호가 분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암수술을 받은 다음날 야구장에 나가 선수를 지도했던 김성근 감독은 체력이 전과 같지 않아 바로 등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야구를 해야겠다는 일념 때문입니다. 의사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무모한 짓이 아닌가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은 그 덕분에 빨리 회복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의 지독한 운명인 야구가 기적을 낳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현재 그는 은퇴한 선수들이 모인 팀의 감독을 맡아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프로구단은 떠났지만 야구장을 떠나진 못했습니다. 오늘도 팔순을 넘긴 몸으로 여전히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올려주고 있을 겁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바보가 성공한다”라고 했습니다. 요즘 말로 ‘00 밖에 모르는 바보’는 바로 본인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읽은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책에서는 말합니다. 일과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 적정한 거리를 두라고 말입니다. 특히 일과 나를 동일시하는 순간 ‘나’는 사라지고 인간관계를 비롯해 많은 번뇌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 자신을 보호해 삶을 안온하게 지속하려는 현실적인 조언으로 느껴집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생각합니다. 그간 내가 가졌던 ‘운명’의 뜻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추앙받을 만큼 대단한 열정과 업적이 협주하는 위인적 형태가 아니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쉽게 내 자신을 운명의 틀에 놓기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범인이 말하는 운명이란 시시하고 불손하게 받아들였나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에 중력과 같은 힘을 부여하고 싶어합니다. 발을 땅에 딛고 있어야 안정감이 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욕망의 실현이 박자를 맞추고 더 나아가 자아실현을 목표합니다. 근대화 이후로는 존재와 욕망, 자아실현의 도구가 직업으로 국한되었습니다. 한동안 <꿈=직업>이라는 공식을 깨려는 노력이 이루어진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직업에 묻혔던 ‘가치(관)’, ‘신념’과 같은 화두를 꺼내봅니다. 홍승완 작가가 책에서 말한 그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많은 이들이 삶의 어느 순간에든 꼭 마주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질문이 소명으로 가는 이정표일 것입니다. 나는 언제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했던가 추적해봅니다.
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 점 때문에 집단주의적 문화와 도제식 시스템이 뿌리박힌 학교나 직장에서의 생활이 녹록치 않았습니다. 우리 반에, 우리 회사에 해를 입히거나 반기를 드는 것도 아니었는데 단순히 밥을 같이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식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동료들에게 이방인 취급을 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나는 동학혁명과 민주화 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라크 전쟁 파병,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분개했습니다. 민족주의를 비롯한 집단 이기주의를 경계하며 개인과 다름을 인정하는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이념이나 학파보다 인간, 더 나아가 생명에 대한 존중은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가치입니다.
쓰고 보니 대단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 모두가 저마다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뿐입니다. 책을 통해 그런 세상을 깊이, 넓게 보며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더 나아가 주변인들과 함께 나아가고 싶은 바람을 가집니다.
이제는 그것을 나의 소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연단에 올라 세계사에 길이 남을 연설을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저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과 함께 더 인간적인 세상을 고민해 구체화하는 것, 우리라도 실천해볼 수 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을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운명’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그것은 고귀하고 경이로운 것이 아니라, 위인이나 영웅이 해낼 수 있는 과업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이라고 말입니다. 오늘도 책을 읽습니다. 혼자서 또 친구, 동료들과 함께요. 그리고 이야기 나눕니다. 더 좋은 세상,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선하고 견고한 가치를 위해서 희망 한 줌을 가져봅니다.